흥보 마누라가 이혼 소송에다 실명까지 밝힌다고?…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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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대부분 잘 아는 '흥보'란 사람은 이렇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_세실에서 개막한 창극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은 그 이유를 낱낱이 보여준다.
부자가 된 흥보는 이혼소송을 제기한 마누라를 향해 어이없다는 투로 앉아 있고, 몸값이 비싼 듯한 변호사는 자기에게 맡기라며 승소를 자신한다.
국립정동극장의 올해 '창작ing' 사업의 두 번째 작품인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은 판소리 '흥보가'의 대목을 활용해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이혼이라는 소재로 현대적 감각을 결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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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대부분 잘 아는 ’흥보’란 사람은 이렇다. 미련할 정도로 착해서 욕심 많고 ‘심술보’까지 달려 못된 형 ‘놀보’ 부부에게 구박당하거나 매 맞는 남자. 부부 금실은 좋아서 가난하지만 자녀도 많이 낳고, 마음이 따뜻해서 다리 부러진 제비도 정성껏 돌봐주는 남자. 그 덕에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벼락부자가 돼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남자.
관객 중 일부가 배심원이 돼 무대로 올라가 배심원석에 앉고, 극 중 기자들이 “흥보 마누라씨, 이혼 소송을 한다는데 정말입니까?”라고 한바탕 수선을 떤 다음 본격적인 법정 드라마가 펼쳐진다. 부자가 된 흥보는 이혼소송을 제기한 마누라를 향해 어이없다는 투로 앉아 있고, 몸값이 비싼 듯한 변호사는 자기에게 맡기라며 승소를 자신한다. 흥보 마누라씨로 불리는 여자는 혼자여도 당당한 모습이다. 재판관이 “왜 변호사 없이 혼자 왔냐”고 못마땅한 투로 묻자 그는 “조선 천지에 흥보 마누라 변호를 맡아줄 남정네 변호사는 없고, 여자 변호사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며 스스로 변론하겠다고 말한다. 어차피 자신보다 흥보의 실상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면서. 정말로 여자는 ‘흥보의 과거 생활 동영상’과 판소리 ‘흥보가’에서 빠져 있는 뒷이야기 등 알찬 증거물과 설득력 있는 의견 제시로 배심원들의 지지를 끌어낸다. 편파적인 재판관이나 변호인마저 더 이상 흥보를 감싸고 돌기 어려울 만큼.
결국 여자는 더는 ‘박흥보’의 마누라가 아니라 ‘강옥진’이란 이름을 가진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제 목소리를 토한다.
국립정동극장의 올해 ‘창작ing’ 사업의 두 번째 작품인 ‘흥보 마누라 이혼소송 사건’은 판소리 ‘흥보가’의 대목을 활용해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이혼이라는 소재로 현대적 감각을 결합했다. 20여년간 소리꾼이자 판소리 극작가로 활동해온 소리꾼 최용석이 작·연출을 맡았다. 창극 ‘메디아’, ‘오프레전’ 등 음악에 참여한 황호준이 작곡했다.
남편이 다른 여자들과 바람 나 낳은 자녀도 수십 명에 달한다는 등 흥보의 실상을 까발리는 흥보 마누라씨 역에는 작창가로도 참여한 소리꾼 김율희가 맡았다. 조선시대 전형적인 한량 양반으로 체면만 따지며 아내를 고생시키는 흥보 역은 한진수, 흥보의 변론을 돕는 변호사 ‘황변’ 역은 전태원, 재판관과 ‘놀보’ 역은 이재현, ‘법정 경위’와 ‘놀보 마누라’, ‘제비 반비’ 역은 김보람이 각각 맡아 열연한다.
이들 다섯 명 배우는 모두 중앙대학교 동문 소리꾼으로 소리와 연기 호흡이 척척 맞는다. 특히, 모든 배우가 무대를 휘저으며 소리하고 춤추는 제비 노정가는 최고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제비 반비 역 김보람은 빼어난 소리와 연기력으로 육아로 인한 공백기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동시대적 메시지, 탄탄한 스토리, 동서양 음악의 조화, 소리꾼 배우들의 열연 등이 합쳐진 아주 괜찮은 소극장 창극이다. 공연 기간이 19일까지로 짧은 게 아쉬울 정도. 다만, 작품성과 관객 호응도 모두 만족스러운 수준이라 다시 만나 볼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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