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10%만 동의하면 후보지 신청…‘공공재개발’의 함정

류인하 기자 2023. 4. 16. 22: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뜨거워진 ‘광명 3구역’
16일 경기 광명시 광명동 광명3구역 공공재개발 후보지에 포함된 대로변 상가건물 곳곳에 공공재개발 구역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류인하 기자
대상부지에 포함된 22개 상가건물
상가 주인 “동의서 본 적도 없어”
민간재개발 원하는 주민과도 갈등
‘지정’은 3분의 2 이상 동의 필수
LH “불안 알아…의견 취합할 것”

경기 광명시 광명사거리에서 23년째 페인트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여인성씨는 자신의 대리점이 광명3구역 공공재개발 후보 사업지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공공재개발사업을 추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고, 어떤 동의서조차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후보지로 선정됐다니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 11월8일 광명3구역을 공공재개발사업 후보지로 선정했다. 대상지는 서울지하철7호선 광명사거리역 6번출구 대로변을 중심으로 목감천을 품고 있는 광명동 144-1 일대 9만4691㎡(획지면적 6만7871.99㎡)다. 해당 지역은 공공재개발을 통해 기존 1882가구에서 지하 2층 지상 최대 42층 2126가구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한다. 용적률 436%, 건폐율 29%가 적용됐다.

건설계획에 따르면 광명로 대로변을 끼고 있는 다른 상가건물들은 모두 공공재개발사업대상지에서 제외된 반면 광명사회종합복지관 옆 건물에서부터 LPG주유소 바로 옆 건물까지 총 22개 상가건물만 공공재개발 대상부지에 속하게 됐다.

LH가 주민설명회에서 제시한 단지 배치도에 따르면 여씨의 페인트 대리점을 비롯해 대로변 22개 상가건물이 있는 자리에는 아파트 2개동과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이 짜여지는 동안 상가소유주들의 의견은 단 한 차례도 반영되지 않았다. 해당 건물들은 3~5층짜리 단층 상가건물로 소유주들은 대부분 자신의 건물에서 장사하면서 나머지 공간에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80만원 안팎의 월세수익을 얻어 살아가는 고령의 영세 임대인들이다.

정복림씨(79)는 “이 일대가 ‘뻘밭’일 때부터 어린아이를 방에 가둬놓고 밤낮없이 일해서 50년 모은 돈으로 겨우 마련한 것이 지금의 상가건물”이라며 “이제 좀 살 만한가 했는데 갑자기 의사도 묻지 않고 상가건물까지 수용하겠다고 하면 나 같은 노인은 어떻게 살란 말이냐”고 말했다.

■ “공공재개발구역 후보지…생계 막막”

상가건물이 수용되면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씨의 페인트 대리점의 경우 소방법상 ‘위험물 판매소’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건물주가 관할관청에 건축물 대장 용도변경을 한 뒤 소방서로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다. 사실상 자기소유의 건물이 아니면 페인트 대리점을 열 수 없는 셈이다. 여씨는 “(공공재개발로) 건물이 수용되면 거기서 받은 돈으로는 더 이상 이 일대에서 새 건물을 사서 장사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우리 상가건물주들은 공공재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비구역에서만 제외해 계속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상가소유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들은 공공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는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대부분 건물 임대료 수입 외에는 고정수입이 없는 중장년 또는 고령층으로, 재개발 후 분담금을 지급하고 주택을 분양받을 여력이 없다.

공공재개발은 노후도 등 정비구역 요건을 만족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공공이 사업에 참여해 도심 내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사업이다. 민간에 비해 사업진행 속도가 빠르고, 낙후된 지역을 정비하는 동시에 토지용도변경·용적률 상향 등을 통해 주민들이 신축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특히 용적률 상향과 기부채납 완화, 정부의 분담금 보조 등으로 민간개발에 비해 경제적 여유가 없는 주민들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용적률 상향으로 늘어난 물량의 50%는 임대공급분으로 배정돼 현재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거취약계층의 주거복지 향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에도 광명3구역과 같이 공공재개발 사업지를 둘러싸고 주민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사업 초기에 주민들 간 의견취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 공공재개발, 10% 동의만 있으면 된다?

공공재개발은 사업지 공모신청 시 주민의 10%만 동의하면 신청이 가능하다. ‘공공재개발에 동의하는 주민들이 있다’는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후보지 신청이 가능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나머지 90%의 의견은 사실상 무시된다. 광명3구역은 22개 상가소유주 외에도 민간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과의 갈등도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후보지로 선정된 것만으로는 공공재개발사업이 시작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보지로 선정된 이후에도 공공사업시행자 지정을 위해서는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2(66.7%)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추진위원회 및 조합 설립을 하려면 토지 등 소유자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실상 주민 대다수가 공공재개발 추진에 뜻을 같이하지 않는 한 사업시행계획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 각종 절차를 거쳐 착공까지 진행하는 게 불가능한 셈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공공재개발 2차 공모부터는 신청에 필요한 주민동의율을 기존 10%에서 30%로 상향조정하기도 했다.

14일 LH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LH는 아직까지 광명3구역의 예비사업시행자 입장이어서 구체적인 답변은 어렵다”면서도 “다만 현재 해당 지역 주민들로부터 여러 의견과 민원을 많이 받고 있고, 그러한 내용들을 포함해 향후 정비계획 수립 시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대의견을 내고 있는 주민들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지가 됐고, 이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점에서 불안하실 수 있다”며 “공공재개발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결국 주민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만큼 향후 주민의견 취합과정을 거치고, 공익성 등을 따져본 뒤 관련계획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