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실게요 vs 커피가 안 식는 동안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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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병원 등에서 신생 높임말 용법인 '들어가실게요' 같은 말을 많이 쓴다.
일본 작가 가와구치 도시카즈의 소설 '커피가 식기 전에'는 원제가 'コーヒーが冷めないうちに'(커피가 식지 않는 동안에)인데, 직역하면 말이 좀 꼬여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책 제목 하나만 봐도 언어와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는 있는데, 커피 한잔의 여유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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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병원 등에서 신생 높임말 용법인 '들어가실게요' 같은 말을 많이 쓴다. '들어가세요'는 지시하는 느낌도 나고, '들어가십시오'는 딱딱한 것 같고, '들어가 주십시오'는 번거로워 보여, 문법에는 어긋나나 기분은 썩 거슬리지 않을 법한 '들어가실게요'로 타협됐을 테니 이해는 된다.
'들어가'를 늘리면 '혹시 괜찮으실지 모르겠는데 들어가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만'이 되듯 경어법 다수는 에둘러 말하기다. 한국어는 일본어만큼 경어법이 복잡해도 에둘러 말하기로는 한국인이 일본인에 못 미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우스개도 있다.
1+1=?
영국인: Two.
중국인: 二.
일본인: 늘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질문 주셔서 정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좋은 질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이건 처음 들으면 간단한 질문입니다만, 여러모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답은 기본적으로 2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판단할지 어렵네요. 그래도 역시 2라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농담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바탕을 둘 때가 많음을 감안하더라도 위에도 나오듯 '해야 한다'에 해당하는 기본 표현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인 언어도 일본어 말고는 드물다.
일본 작가 가와구치 도시카즈의 소설 '커피가 식기 전에'는 원제가 'コーヒーが冷めないうちに'(커피가 식지 않는 동안에)인데, 직역하면 말이 좀 꼬여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한 카페에 가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지만 그 시절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잔에 따른 커피가 식을 때까지다. 딴 언어들도 번역판 제목은 '식지 않을 때', '식기 전에', '따뜻할 때' 등 크게 셋으로 나뉜다. 영어판 Before the coffee gets cold처럼 '식기 전에'로 옮긴 언어가 가장 많고 한국어도 이게 무난한 표현이다.
'동안'은 '일하는/먹는 동안'처럼 대개 어떤 동작의 진행을 이른다. 정해진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가 진행의 '동안'과 만나면 어색해서, '따뜻할/따뜻한 동안'은 살짝 부자연스럽다. '따뜻할 때'는 되는데 동안과 달리 특정한 범위를 지정해 주지는 않는다.
'커피가 식지 않을 때'라고 하면 식기 전에 마시는 행위가 아닌 식어야 되는 커피가 안 식는 경우에 하는 가정으로 초점이 옮겨진다. 혹은 '커피가 식지 않았을 때'처럼 커피를 마시는 일과 무관한 딴것을 했다는 식으로도 읽힌다.
식지 않을 때까지≒식을 때까지≒식는 동안≒따뜻할 때(까지)는, 따뜻함이 종료될 때까지는 식는 과정이니 모두 엇비슷하다. 범위를 나타낼 경우 행위 시작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부정어가 있든 없든 뜻이 같을 수도 있다. '숙제 다 할(하지 않을) 때까지는 못 나간다'와 '(안) 만난 지 넉 달 됐다'는 같은 뜻으로도 읽힌다. 주로 이탈리아어는 범위에 부정어를 넣는다. '걔들 올 때까지 텔레비전 보자'는 '걔들 안 올 때까지는 텔레비전 보자'로 나타낸다.
어쨌든 커피가 아직 다 안 식었을 때라고 얘기하려면 꽤 복잡하기에 대개의 언어는 '식기 전에'라 한다. 러시아어도 이 표현이 일본어와 비슷하고, 미국인보다는 일본인이 러시아인에 가깝다는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연구도 있다. 이 표현만으로 한국인과 미국인이 비슷하다는 건 아니며 복잡다단한 여러 언어와 문화를 단선적으로 줄 세우기는 어렵다. 책 제목 하나만 봐도 언어와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는 있는데, 커피 한잔의 여유에 안성맞춤이다.
신견식 번역가·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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