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실게요 vs 커피가 안 식는 동안 [삶과 문화]

2023. 4. 16. 22: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언젠가부터 병원 등에서 신생 높임말 용법인 '들어가실게요' 같은 말을 많이 쓴다.

일본 작가 가와구치 도시카즈의 소설 '커피가 식기 전에'는 원제가 'コーヒーが冷めないうちに'(커피가 식지 않는 동안에)인데, 직역하면 말이 좀 꼬여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책 제목 하나만 봐도 언어와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는 있는데, 커피 한잔의 여유에 안성맞춤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커피가 식기 전에' 포스터.

언젠가부터 병원 등에서 신생 높임말 용법인 '들어가실게요' 같은 말을 많이 쓴다. '들어가세요'는 지시하는 느낌도 나고, '들어가십시오'는 딱딱한 것 같고, '들어가 주십시오'는 번거로워 보여, 문법에는 어긋나나 기분은 썩 거슬리지 않을 법한 '들어가실게요'로 타협됐을 테니 이해는 된다.

'들어가'를 늘리면 '혹시 괜찮으실지 모르겠는데 들어가 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만'이 되듯 경어법 다수는 에둘러 말하기다. 한국어는 일본어만큼 경어법이 복잡해도 에둘러 말하기로는 한국인이 일본인에 못 미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우스개도 있다.

1+1=?

영국인: Two.

중국인: 二.

일본인: 늘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질문 주셔서 정말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좋은 질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이건 처음 들으면 간단한 질문입니다만, 여러모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답은 기본적으로 2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판단할지 어렵네요. 그래도 역시 2라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농담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바탕을 둘 때가 많음을 감안하더라도 위에도 나오듯 '해야 한다'에 해당하는 기본 표현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인 언어도 일본어 말고는 드물다.

일본 작가 가와구치 도시카즈의 소설 '커피가 식기 전에'는 원제가 'コーヒーが冷めないうちに'(커피가 식지 않는 동안에)인데, 직역하면 말이 좀 꼬여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 한 카페에 가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지만 그 시절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잔에 따른 커피가 식을 때까지다. 딴 언어들도 번역판 제목은 '식지 않을 때', '식기 전에', '따뜻할 때' 등 크게 셋으로 나뉜다. 영어판 Before the coffee gets cold처럼 '식기 전에'로 옮긴 언어가 가장 많고 한국어도 이게 무난한 표현이다.

'동안'은 '일하는/먹는 동안'처럼 대개 어떤 동작의 진행을 이른다. 정해진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가 진행의 '동안'과 만나면 어색해서, '따뜻할/따뜻한 동안'은 살짝 부자연스럽다. '따뜻할 때'는 되는데 동안과 달리 특정한 범위를 지정해 주지는 않는다.

'커피가 식지 않을 때'라고 하면 식기 전에 마시는 행위가 아닌 식어야 되는 커피가 안 식는 경우에 하는 가정으로 초점이 옮겨진다. 혹은 '커피가 식지 않았을 때'처럼 커피를 마시는 일과 무관한 딴것을 했다는 식으로도 읽힌다.

식지 않을 때까지≒식을 때까지≒식는 동안≒따뜻할 때(까지)는, 따뜻함이 종료될 때까지는 식는 과정이니 모두 엇비슷하다. 범위를 나타낼 경우 행위 시작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부정어가 있든 없든 뜻이 같을 수도 있다. '숙제 다 할(하지 않을) 때까지는 못 나간다'와 '(안) 만난 지 넉 달 됐다'는 같은 뜻으로도 읽힌다. 주로 이탈리아어는 범위에 부정어를 넣는다. '걔들 올 때까지 텔레비전 보자'는 '걔들 안 올 때까지는 텔레비전 보자'로 나타낸다.

어쨌든 커피가 아직 다 안 식었을 때라고 얘기하려면 꽤 복잡하기에 대개의 언어는 '식기 전에'라 한다. 러시아어도 이 표현이 일본어와 비슷하고, 미국인보다는 일본인이 러시아인에 가깝다는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연구도 있다. 이 표현만으로 한국인과 미국인이 비슷하다는 건 아니며 복잡다단한 여러 언어와 문화를 단선적으로 줄 세우기는 어렵다. 책 제목 하나만 봐도 언어와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는 있는데, 커피 한잔의 여유에 안성맞춤이다.

신견식 번역가·저술가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