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연금개혁과 맞바꾼 지지율…극우 지지 기반 넓혀주나

현혜란 2023. 4. 1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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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패싱' 연금개혁법, 초고속 공포…여당 의원 4명 탈당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도 총리 "완전고용 등 개혁 가속하겠다"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 (파리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14일(현지시간) 헌법위원회의 연금 개혁 법안의 위헌 심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했다. 2023.4.16 photo@yna.co.kr [재판매 및 DB 금지]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퇴직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연금 개혁을 우여곡절 끝에 성사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내상을 감내해야 했다.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연금 개혁법안에 담긴 정년 연장 등 대부분 조항이 헌법에 합치한다고 판단하고 나서 마크롱 대통령이 불과 몇 시간 뒤 서명한 이 법안은 15일(현지시간) 관보에 실려 효력이 발생했다.

이로써 마크롱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내세웠던 핵심 공약을 당선 1년여만에 이뤄냈으나, 마냥 환호할 수만은 없는 씁쓸한 승리로 귀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하는 연금 개혁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우위를 차지하는 와중에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빠른 속도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12일 주간지 르푸앙에 발표한 마크롱 대통령의 4월 지지율은 28%로 올해 초보다 10%포인트(P) 줄어들었으며 2019년 5월(27%) 이후 가장 낮았다.

입소스의 여론 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낮았던 때는 지난 2018년 12월(20%)로 유류세 인상 방침에 반발하는 노란 조끼 시위가 등장했을 무렵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수혜를 본 정치인은 마크롱 대통령과 지난 2017년에 이어 2022년 대통령선거 결선에서 맞붙은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이다.

마린 르펜 국민연합 의원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입소스는 르펜 의원의 지지율이 한 달 사이 4%P 상승한 39%로 그를 지지율 조사 대상에 포함한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며 르펜 의원이 연금 개혁이 가져온 위기의 승자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연금 개혁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강경 좌파 성향의 노동총동맹(CGT)을 이끄는 소피 비네 사무총장은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가 RN이 득세하는 길을 열어줬다고 비판했다.

비네 사무총장은 지역 일간 르프로그레와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연금 개혁을 위해 당선된 게 아니라 RN을 막기 위해 당선된 것인데 그는 지금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엘리제궁을 내어준 지난해 4월 대통령선거는 결선 후보였던 마크롱 대통령도, 르펜 의원도 싫다는 분위기 속에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선거였다는 주장이다.

마크롱 대통령과 르펜 의원의 득표율 격차는 5년 사이 32%P에서 17%P로 거의 반으로 줄었고, 대선이 끝나고 두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하원을 장악하지 못한 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현재 여당인 르네상스를 비롯한 범여권이 하원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과반에 미치지 못해 야당이 협력하지 않으면 정부가 원하는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정부와 여당은 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줄곧 연금 개혁에 우호적이었던 우파 공화당(LR)의 협력을 기대했지만, 막판 표결을 앞두고 공화당 안에서 찬반 의견이 갈려 부결 가능성이 커졌다.

결국 마크롱 대통령은 헌법 특별 조항을 사용해 사회보장기금법안으로 제출한 연금개혁법안의 하원 표결을 생략하는 우회로를 택했고, 이는 공화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반발을 낳았다.

프랑스 렌에서 열린 연금개혁 반대시위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쥘리앵 오베르 공화당 부대표는 연금 개혁으로 국가가 분열하고 있다고 개탄하며 마크롱 대통령에게 프랑스 국민이 원하는 연금 제도의 형태를 두고 국민 투표를 하자고 제안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에 생태전환부 장관을 맡았던 바르바라 퐁필리 의원 등 여당 소속 의원 4명은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조직을 만들어 여당을 탈당했다.

정부가 정년 연장을 골자로 추진하는 연금 개혁 자체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이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를 건너뛰는 절차를 밟자 범여권에 남되, 여당에 이름을 올리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여당과 범여권에 협조적이던 공화당이 분열하는 모습은 마크롱 대통령이 남은 임기 4년 동안 의회를 설득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실어준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연금개혁법의 관보 게재 당일 파리에서 열린 르네상스 전국위원회에서 완전 고용 등을 목표로 하는 다른 개혁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고 라디오 프랑스 등이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17일 오후 8시 방송으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다른 개혁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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