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광범위한 국외 도청 발각, ‘FISA 702조 연장’ 호재 되나
백악관, 재승인 추진 속 문건 파문…법안 연장 명분 강화
블링컨 “동맹과 협력에 영향 없어”…G7 회의 차 일본행
미국 국방부 기밀 문건 유출 사태로 미국의 동맹국 등을 상대로 한 광범위한 국외 도청 실태가 드러나면서 해외정보감시법(FISA) 702조 연장 여부도 주목받고 있다. FISA 702조는 미국이 미국 영토 밖에서 영장 없이 외국인의 통신 정보를 수집하는 근거가 되는 법률 조항으로 연장 권한을 가진 연방의회 일각에선 비판도 제기돼 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 조항에 대해 “미국 국가안보의 주춧돌”이라며 의회에 재승인을 요청해온 가운데 기밀 문건 유출 파문이 의회 설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FISA 702조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미 국가안보국(NSA) 등 정보기관이 운영하던 비밀도청 프로그램에서 유래했다. 2008년 의회는 테러용의자 등 외국인이 미국 바깥에서 주고받은 e메일이나 휴대전화 통화·메시지 등을 영장 없이 수집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한시법을 제정했고, 이후 두 차례 연장됐다.
모든 도·감청이 이 조항에 근거해 이뤄지지는 않지만, 미국 대통령이 매일 아침 받아보는 일일 정보보고 자료의 60% 이상이 ‘신호 정보’가 출처인 것으로 알려질 정도로 미국은 통신정보에 정보 활동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FISA 702조는 올해 연말까지 의회가 재승인하지 않을 경우 만료된다. 이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올해 초부터 이 조항의 연장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 2월 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성명에서 “FISA 702조 재승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순위”라며 “핵심적인 정보 수집 기관이자 미국 국가안보의 주춧돌”이라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인 보호는 물론 중국, 러시아, 악의적 사이버 행위자 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 조항이 필수적이라고도 밝혔다.
그러나 기밀 유출 파문 이전까지 의회에서는 영장 없는 정보 수집을 허용하는 FISA 702조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당초 테러 재발방지를 위한 감시가 주된 목적이었지만, 미국이 소유한 온라인 플랫폼인 구글, 메타 등을 이용하는 해외 거주 외국인은 물론 외국인과 교신하는 미국인의 정보까지도 들여다본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정부가 일부 기밀문서를 해제해 도·감청으로 수집된 정보의 가치를 의회에 설득하는 방안을 논의하던 중에 기밀 유출 사태가 발생하면서 의도치 않게 FISA 702조 연장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WSJ는 미 정부의 고위 정책 입안자나 군 지휘관은 기밀 수십건이 전화, e메일, 레이다 전파 등의 전기신호를 가로채는 기술인 ‘신호 정보 수집’으로 파악됐다는 것을 알 것이고, 이 기술들은 FISA 702조에 따라 사용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자 도·감청과 암호해독을 수행하는 국가안보국의 전직 법률 자문위원 글렌 거스텔은 “이번에 유출된 기밀문서 일부는 확실히 FISA 702조에 따라 수집됐다”면서 “이번 유출은 FISA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알리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사진)은 미국의 한국 등 동맹국 도청 정황이 담긴 국방부 기밀 문건 유출사태가 동맹·파트너와의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을 방문한 블링컨 장관은 1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미국 내 반복되는 기밀 유출로 인해 미국이 신뢰할 만한 동맹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취지의 질문에 “유출 발생 이후 동맹 및 파트너들과 고위급에서 접촉하고 있다”며 “정보 보호 및 안보 파트너십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나눈 대화에 따르면 동맹 및 파트너와의 협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며 “우리가 취한 조치를 평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기밀 유출은) 우리의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거듭 말했다. 이어 “조사가 진행 중이며, 현재 용의자가 구금돼 있지만 중요한 것은 정보를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베트남에 이어 17일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회담이 열리는 일본으로 이동한다. 기밀 유출 파문 이후 처음으로 동맹국 카운터파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도청 의혹을 포함한 기밀 유출에 대한 G7의 우려를 불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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