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있습니다”…연민 넘어 연대

김세훈 기자 2023. 4. 1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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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과 걷는
‘기억순례길’ 프로그램
‘기억순례길’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지난 15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참가자들은 지역주민 반대 등으로 조성이 늦어지고 있는 화랑유원지 생명안전공원의 부지도 걸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생명안전공원 ~ 기억교실’ 코스…지난해만 50여 단체 참가
“현장 와 보니 와닿아” “추모공원 ‘납골당’ 운운, 이해 안 돼”

세월호 참사 9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오전 안산 단원구에는 부슬비가 내렸다.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세 어머니가 길을 걸었다. 대학생 16명이 뒤를 따랐다.

길의 이름은 ‘기억순례길’이다. 단원고 학생들이 등·하교한 길이다. 세월호참사유가족협의회는 이 길을 시민과 함께 걷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만 50여 단체가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고 권지혜양 어머니 이정숙씨(58)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찾아오지만 젊은층의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15일에는 춘천 역사연합동아리 ‘날갯짓’ 소속 대학생이 참가했다. 이해원씨(30)는 2021년부터 매년 순례길 동행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올해에는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와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며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을 넘어 함께 연대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의 동행은 오후 1시 화랑유원지 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시작됐다. 생명안전공원 부지는 단원구청 맞은편에 위치한 2만3000㎡(약 7000평)의 공터다. 정부는 2019년 이곳에 추모공간과 문화편의시설을 갖춘 생명안전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추모공원 건립사업은 일부 지역주민이 “왜 도시 중심에 추모공원을 짓느냐”고 반발하면서 삐걱댔다. 총사업비를 놓고 안산시와 기획재정부 간 협의도 길어지기 시작했다. 완공 시기는 2024년에서 2026년으로 미뤄졌다. 확성기로 ‘도시 중심에 납골당이 웬 말이냐’라며 항의하는 주민도 있었다고 한다. 공원 부지에는 풀만 무성했다. 이이랑씨(21)는 “유가족들이 생명안전공원을 ‘청소년들이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도 납골당 운운하며 반대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1㎞가량 떨어진 단원고등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월호 추모 조형물인 ‘노란 고래의 꿈’이 보였다. 지난해에는 조형물 뒤쪽에 ‘노란 우체통’이 설치됐다. 유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을 편지로 적어 넣을 수 있다. 편지는 4·16기억저장소에 보관된다.

4·16기억저장소는 안산 고잔동 골목길에 위치한 건물 3층에 있다. 희생자들은 건물 2층에 있는 PC방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천장에는 학생들의 이름과 기억물품이 걸려 있다. 강지현씨(20)는 “천장에 달린 희생자들의 사진, 명찰 등을 보면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곱씹었다”며 “앞으로 유가족들이 만들어갈 10년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순례길의 마지막 장소는 4·16기억교실이었다.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맞은편에 있다. 건물 2층에는 2학년 1반부터 6반, 3층에는 7반부터 10반이 있다. 단원고 학생들이 지내던 교실의 창문틀, 칠판, 책상 등을 그대로 옮겨왔다. 교실 앞 칠판에는 ‘○○야 보고 싶다’ ‘사랑한다’와 같은 문구가 가득 적혀 있었다.

4·16기억교실은 2021년 12월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됐다. 윤민재씨(20)는 “현장에 와서 보니 뉴스로만 접했을 때는 먼 이야기 같았던 참사가 ‘내 일이 될 수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유가족분이 ‘기억하겠습니다’보다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더 좋아하신다고 해서 기억교실에도 그 문구를 적어놓고 왔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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