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창작 사이 항상 고뇌… 꾸준히 하니 기회 와” [차 한잔 나누며]

김수미 2023. 4. 1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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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V&A패션쇼 첫 韓 디자이너 김민주
맥퀸·겐조 등 유명인들도 무대
英시민 선호 1위 “민주킴” 꼽혀
서바이벌 프로 우승하며 유명
레드벨벳·BTS 의상 만들기도
“韓 무속신화 ‘바리데기’로 테마”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절대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그만큼 희생과 책임이 따르고, 타협과 창작 사이에서 항상 고뇌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멋진 기회를 선물받기도 한답니다.”

세계 최대 예술·디자인 박물관인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앤드앨버트(V&A) 박물관 패션쇼에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참여하게 된 김민주(37) 디자이너의 소감에는 부담감과 자부심이 교차했다. V&A는 연간 400만명이 찾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디자인·퍼포먼스 박물관이다. 20년간 장 폴 고티에, 알렉산더 맥퀸, 비비안 웨스트우드, 겐조 등 세계적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이 무대를 거쳐갔다.
김민주 디자이너는 14일 “민주킴의 여성복을 더 단단히 다진 후 남성복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킴 제공
오는 21일(현지시간) 열리는 패션쇼를 위해 출국을 앞둔 김 디자이너를 지난 12∼14일 전화와 이메일로 만났다. 그는 “지난해 여름 연락받았는데, 한 달 전 웹사이트에 공식 발표될 때까지 믿기지 않았다”면서 “제가 선택된 이유 중 하나가 영국시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가장 보고 싶은 패션디자이너’로 민주킴이 가장 많이 나오고, 티켓도 10분 만에 모두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번 컬렉션의 주제는 우리나라 무속신화 ‘바리데기’다. 그는 “V&A 패션쇼의 원칙은 상업성을 배제하고 예술적 의미가 있어야 한다”며 “총 35∼40룩(작품) 정도 준비했는데, 바리가 부모님을 살리기 위해 저승에 가서 꽃을 찾아오는 여정을 한 편의 동화처럼 보여드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해외에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된 건 넷플릭스의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넥스트 인 패션’(Next in Fashion) 첫 시즌(2020년)에 우승하면서다. 그는 전 세계 유망 디자이너 18명과 치열한 경쟁 끝에 우승 상금 25만달러와 세계 최대 온라인 편집숍 네타포르테에 자신의 브랜드 민주킴(Minjukim) 컬렉션을 소개할 기회를 거머쥐었다. 그는 당시 출연 계기가 “한국에서 유명해지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앞서 그는 전 세계 재능 있는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H&M 디자인 어워드(2013년)에서 대상을 받았고, 이듬해 LVMH 영패션디자이너 부문 준결선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레드벨벳, 방탄소년단(BTS)의 월드 투어(2019년) 의상 등을 만들었지만, 대중들에게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김민주는 “(넥스트 인 패션 후) 지금까지 많은 팬레터와 메시지를 받을 만큼 많은 사랑을 주고 계신다. 목표는 확실히 달성한 것 같다”며 웃었다. 지난해 3월 그가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의 자매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와 협업한 제품은 개장 40분 만에 완판됐다. 대중의 인정과 사랑을 모두 확인한 셈이다. 5월에는 벨기에 가방브랜드 키플링과 협업한 제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화려한 수상 경력과 달리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고 한다. 김민주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항상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 빠져 살았지만, 뛰어나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가 잘 아신다”며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고, 항상 (내) 부족함을 찾아 극복하려 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내 재능이 되고 가능성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를 뉴질랜드에서 다니고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디자인교육원(SADI)에서 공부한 그는 다시 세계 3대 패션학교로 꼽히는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 학교에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디자이너를 꿈꾼 건 H&M에서 우승하면서예요. 처음으로 컬렉션을 론칭하고 길에서 내 컬래버 옷을 입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SADI와 앤트워프의 교육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SADI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중요한 반면 앤트워프는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을 배웠다”면서 “두 가지 모두 경험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자기 색깔이 뚜렷한 디자이너들은 평단의 각광을 받지만, 비즈니스와 간극은 늘 숙제다. 김민주는 “내 목소리, 내 색깔을 지키는 것이 사실 어렵다”며 “비즈니스와 직결이 되든 안 되든, 반응이 있든 없든 꾸준히 작업을 하다 보니 기회가 주어지고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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