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처럼 앞만 보는 오셀로, 나와 닮았죠”

이강은 2023. 4. 16. 21: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월 개막 연극 ‘오셀로’ 주역 박호산
부하에 속아 질투로 무너지는 장군役
갈등·의심하는 입체적 인물로 재해석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작
“기존 오셀로와 다르게 보여주고 싶어”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대중에 눈도장
20여년 무명 벗었지만 무대 늘 목말라
“객석 공기 느끼며 연기, 그 맛 못 잊죠”
2017·2018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나의 아저씨’에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조연 배우가 있다. 각각 사기 범죄로 감옥에 들어온 ‘문래동 카이스트’와 고두심의 세 아들 중 맏이 ‘박상훈’ 역으로 열연한 박호산(51)이다. 드라마에서 두 인물은 별 볼 일 없고 초라한 인생이지만 정감 가는 스타일로 시청자들에게 누구보다 사랑받는 캐릭터가 됐다. 이는 사실적이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자연스레 보여준 베테랑 배우 박호산의 열연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20년이 넘도록 달아 왔던 무명 배우 딱지를 뗐다. 이후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광고 모델까지 하는 등 유명해지고 바쁜 사람이 됐지만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게 있다. 연극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아무리 바빠도 해마다 최소 한 번은 연극 무대에 선다는 박호산이 올해 택한 작품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다음달 12일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오셀로’에서 그는 주인공 오셀로 역을 맡았다. 2005년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예술의전당 정통연극 ‘아가멤논’에서 주인공 아가멤논 역으로 발탁된 후 18년 만에 ‘토월정통연극’ 무대에 다시 서는 것이다.
5월 개막하는 연극 ‘오셀로’에서 주인공 오셀로 역을 맡은 배우 박호산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던 중 웃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VIP룸에서 언론 인터뷰를 한 박호산은 “공연은 배우를 겸손하게 해주고 원위치로 돌려주는 좋은 예술”이라며 “주로 연초에 해왔는데(한 번씩 무대에 섰는데) 올해는 일정이 잘 맞지 않았다가 ‘오셀로’가 제게 왔고, 냅다 물었다”고 웃었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베니스)의 명망 높은 무어인 출신 장군 오셀로가 자신에게 앙심을 품은 부하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끝내 파멸하는 이야기다. 광기 어린 추악한 욕망과 질투로 추락하는 고결한 사랑을 그려낸다.

박호산은 “미련한 오셀로보다 갈등하고 의심하는 오셀로를 보여주고 싶다”며 “기존 ‘오셀로’ 작품들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 대본을 읽었을 땐 오셀로라는 인물이 바보 같이 느껴졌어요. 남의 말을 너무 믿기만 하면, 모자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대본에 적힌 오셀로보다 똑똑하게 만들고 싶었죠. (이아고의 말을) 의심하면서 오셀로라는 캐릭터가 단단해지고, 이아고도 더 속이려 하니까 기 싸움을 하며 더 탄탄해지겠다고 생각했죠.”

오셀로와 닮은 점에 대해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 같은 모습”이라고 한 그는 오셀로 내면의 갈등에 집중하면서 입체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전쟁터만 누비다가 사랑을 처음 해본 그에겐 질투가 새로운 감정이라 혼란스러웠다고 생각해요.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무너지듯 이 사람(오셀로)이 무너지는 이유도 누구의 계략이 아니라 자기 탓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박호산은 1996년 뮤지컬 ‘겨울 나그네’로 데뷔한 뒤 서울 대학로를 중심으로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올랐다.

인기 드라마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가 생기기 전까지 길고 힘든 무명 생활을 겪었지만 그 경험이 소중한 밑천이 됐다고 한다. 현재도 전미도·이석준·이창훈·최덕문 등이 함께 활동한 극단 맨씨어터에 소속돼 있다. 드라마·영화 출연이 잦아도 무대에 서는 시간을 꼭 내는 이유도 무대를 향한 목마름 때문이다. “영화가 감독의 예술, 드라마가 작가의 예술이라면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죠. 무대 위에 선 배우가 느끼는 그날 그 객석의 공기는 작가와 연출가는 절대 예상할 수 없어요. 배우는 그걸 느끼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대사를 하게 되죠. 이런 무대의 맛을 보고 나서 잘 짜인 매체 연기를 하다 보면 갈증이 나요. 무대에서 뛰고 싶죠.”

박호산은 “공연은 제작진과 배우가 한 팀으로 생각을 공유하며 계속 다듬어 나간다. 다른 매체를 해도 ‘공연 밥’을 먹어야 작품 전체를 보는 힘이 길러진다”며 “연출·작가·제작자·배우 등 ‘선수’들이 좋아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 이들을 만족시킨다면 일반 관객도 실망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오셀로 역은 박호산과 유태웅이 번갈아 한다. 이아고 역은 손상규, 데스데모나 역은 이설, 이아고 부인 에밀리아 역은 이자람, 원로원 의원이자 데스데모나 아버지 브라반티오 역은 이호재가 각각 맡는다. 공연은 오는 6월4일까지.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