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원 안내면 단수”…‘건축왕’ 피해자, 극심한 생활고에 극단선택

인천=차준호 기자 2023. 4. 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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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구성원들이 지난달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인천 미추홀구 조직적 전세사기 주범 및 공범 구속 및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3.14 미추홀구 전세사기 대책위 제공
수도권 일대에 주택 2700여 채를 보유한 이른바 ‘미추홀구 건축왕’에게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사망자가 발생한 건 2월 말에 이어 두 번째인데, 지갑에 2000원 밖에 없었을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 임모 씨(26)가 14일 오후 8시경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함께 사는 친구가 외출했다가 돌아와 숨진 임 씨의 시신을 발견했는데, 극단적 선택을 한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 “6만 원 안 내면 단수” 극심한 생활고

이날 찾은 임 씨의 오피스텔 우편함에는 수도 단수 예고장이 꽃혀 있었다. 밀린 수도요금 약 6만 원을 내지 않을 경우 수도가 끊긴다는 내용이었다. 임 씨는 사망 5일 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2만 원만 보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 졸업 후 인천 남동공단에서 등에서 일했던 임 씨는 돈을 모아 2019년 6800만 원짜리 오피스텔 전셋집을 마련했다. 2021년 8월 임대인의 요구로 전세금을 9000만 원으로 올렸다.

그런데 이 오피스텔은 이미 2019년 채권최고액 1억8120만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된 상태였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이 오피스텔의 매매가는 현재 1억7000만~1억8000만 원 가량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6월 오피스텔은 경매에 넘어갔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임 씨는 임대인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안 됐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3400만 원에 불과해 5600만 원을 날릴 처지였다.

같은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최모 씨는 “임 씨가 올 여름 계약이 만료되면 전세대출을 상환해야 하는데 최근에 하는 일도 그만둬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건축왕 피해자 모임인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대책위)’에서 임 씨와 함께 활동했던 김모 씨는 “임 씨가 생활고를 겪다가 올 1월부턴 피해자 단체 활동조차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때문에 임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숨진 임 씨의 지갑에 있는 현금은 2000원 뿐이었다고 한다.

● 같은 오피스텔 135채 중 85채 경매 넘어가

임 씨는 이른바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 씨(수감 중)의 전세사기 사건의 피해자다. 건축업자인 남 씨는 2009년경부터 타인 명의로 투지를 매입하고 주택을 지은 뒤 금융권 대출과 전세보증금을 받아 다시 집을 짓는 방식을 반복했다. 남 씨가 실소유한 주택은 확인된 것만 2708채나 된다.

남 씨 등은 대출이자 연체 등으로 경매에 넘어갈 것을 알면서도 전세계약을 체결해 161가구의 전세보증금 125억 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2월 기준으로 경매에 넘어간 주택은 690채로 늘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임 씨가 살던 오피스텔 주민 상당수도 전세사기 피해자로 알려졌다. 대책위에 따르면 임 씨가 거주했던 오피스텔 135채 중 85채가 경매에 넘어간 상황이라고 한다.

남 씨의 전세사기로 목숨을 잃은 건 임 씨가 두 번째다. 앞서 2월 28일에도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남 씨 등으로부터 전세보증금 7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한 전세사기 피해자 A 씨(38)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은행에선 대출연장을 거절당하자 “더는 못 버티겠다.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다”는 유서를 남겼다.

대책위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 첫 사망자인 A 씨의 추모제를 18일 열려 했는데 또 희생자가 나왔다”며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잇따른 죽음을 막아줄 것을 정부에 다시 한번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인천=최원영 기자 o0@donga.com
이성환 기자 zacch@donga.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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