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로 우주 쓰레기만 잡는 거 확실해? 우리 그냥 안전하게 빨아들이자!

이정호 기자 2023. 4. 16. 20: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름 1㎜ 이상 우주쓰레기 1억3000만개, 초속 7.5㎞로 지구 주변 공전
수거 위해 집게·작살 사용 시 우주 패권 경쟁 중인 국가 간 위협 가능성
진공청소기 깔때기처럼 작은 파편들만 흡입하는 ‘청소 위성’ 개발 중
2015년 유럽우주국(ESA)이 개발하겠다고 공개한 우주 청소 위성의 상상도(위 사진). 버려지거나 망가진 위성에 그물을 쏴 포획한 뒤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킨다. 호주 기업 팔라딘 스페이스가 개발한 우주 청소 위성이 임무를 수행하는 상상도(아래 사진). 동체 앞부분에 깔때기처럼 생긴 구멍이 있다. 여기로 작은 우주 쓰레기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ESA·팔라딘 스페이스 제공

# 2092년의 미래 사회, 지구 궤도에 떠 있는 태양광 전지판 밀집단지 사이로 망가진 인공위성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우주 쓰레기가 진입한다. 그러자 ‘우주 쓰레기 사냥꾼’이 탄 우주선들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달려든다. 위성 내부에 함유된 비싼 금속을 뽑아내 팔기 위해서다.

이때 갑자기 낡은 우주선 하나가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고는 꽁무니에 긴 줄이 달린 묵직한 작살을 발사한다. 우주선은 작살이 꽂힌 우주 쓰레기를 끌고 속도를 내 도주한다. 다른 사냥꾼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다. 한국영화 <승리호>의 도입부다.

우주 쓰레기는 이미 미래가 아닌 현재의 문제가 됐다. 지난해 유럽우주국(ESA) 통계에 따르면 지름 1㎜ 이상 우주 쓰레기는 1억3000만개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우주 쓰레기가 지구 주변을 초속 7.5㎞로 돈다. 자동소총 총탄보다 8배 빠르다.

고도 400㎞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은 지구 궤도를 돌기 시작한 1999년 이후 우주 쓰레기를 피하려고 32차례 긴급 회피 기동을 했다. 하지만 다 피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12월 ISS에 붙어 있던 러시아의 소유스 우주선에, 이보다 앞서 2021년 5월에는 ISS에 달린 로봇팔에 구멍이 났다. 우주 쓰레기는 계속 늘고 있어 피해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최근 이런 우주 쓰레기를 어떤 방식으로 치우느냐가 각 국가와 관련 업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우주 쓰레기를 치우는 일 자체가 중요하지, 방식이 뭐가 중요하냐고 볼 수도 있지만,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우주 쓰레기를 치우던 위성이 어느 순간 특정 국가의 멀쩡한 위성을 공격하는 군사용으로 바뀔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집게나 작살 대신 진공 청소기 형태의 우주 쓰레기 수거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 작은 파편 ‘꿀꺽’ 청소기

최근 호주 과학매체 ‘코스모스’는 자국의 우주기업 팔라딘 스페이스가 신개념 우주 청소위성을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팔라딘 스페이스가 향후 실전 임무를 가정해 만든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보면 청소위성의 겉모습은 일반적인 위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태양광 전지판이 달린 직육면체 동체를 가졌다. 그런데 이 위성 앞에 우주 쓰레기가 등장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동체가 ‘변신’한다. 위성 전면부가 문짝이 열리듯 활짝 개방되면서 깔때기처럼 바뀐다.

그 뒤 위성은 가까이 있는 우주 쓰레기를 동체 안으로 빨아들인다. 진공청소기와 비슷하다. 우주 쓰레기를 삼키는 임무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동체 밖으로 네모난 상자 하나를 서랍처럼 방출한다. 일종의 쓰레기봉투다. 이 상자는 지구 중력에 이끌려 지상으로 추락하다 불덩이가 돼 사라진다.

팔라딘 스페이스가 쓴 수거 방식은 성인이 손으로 쥐거나 팔로 안을 정도의 작은 우주 쓰레기에 국한된다. 중량이 최소 수백㎏이고, 가로와 세로 길이가 각각 수m를 넘어가는 온전한 인공위성은 처리하지 않는다.

반면 10여년 전부터 다른 나라 연구진에선 손가락으로 계란을 잡듯 우주 쓰레기를 집게로 낚아채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었다. 그물이나 작살을 던져 포획하는 기술도 고안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덩치 큰 위성도 문제없이 잡아챌 수 있다. 약 3000개에 이르는 버려진 위성은 충돌하면서 작은 우주 쓰레기를 만드는 원천이 된다. 이걸 제거하는 집게나 작살, 그물과 같은 수거 장비는 의미가 크다.

■ 미·중 긴장 ‘쓰레기 제거 방식’ 영향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도구들이 가진 공격적인 성향을 우려하는 시선이 커지고 있다. 달라진 국제 환경 때문이다. 핵심은 우주에서 커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다. 지난해 1월 중국 위성 ‘SJ-21’은 자국의 망가진 항법위성에 접근한 뒤 동체를 연결해 지구에서 먼 우주로 옮겨 놓는 임무에 성공했다. SJ-21은 동체에 로봇팔을 부착하고 있는데, 고장난 차를 옮기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미국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SJ-21의 능력이 우주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치울 방안이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평소에는 청소위성으로 사용되다 유사시에는 멀쩡한 다른 나라 위성을 ‘우주 쓰레기’로 규정해 특정 궤도로 끌고 가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팔라딘 스페이스의 해리슨 복스 창업자는 ‘코스모스’를 통해 “우리 기술은 활동 중인 위성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작은 파편을 수거할 뿐 온전한 위성 자체를 쓰레기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한택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우주법 전문)는 “현재로선 ‘이것이 우주 쓰레기다’라고 정의한 명확한 법적 규정은 없다”며 “우주 쓰레기 처리를 위한 규칙도 유엔 차원의 ‘가이드라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은 강제력이 없다. 청소 위성을 무기로 쓰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거나 처벌할 장치도 담겨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향후 우주 청소 위성의 형태와 역할을 예의주시하는 각국의 움직임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