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 욕구가 부채질하는 음식값[만물상]
서울 방배동의 한 일식집 스시 오마카세(맡김차림) 가격은 평일 저녁 1인당 37만5000원이다. 평범한 인테리어의 구석진 곳이지만,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에도 예약이 쉽지 않다. 이곳의 손님은 주로 20~30대 젊은층이라고 한다. 암호화폐·유튜브·스타트업 등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이 별로 어렵지 않게 음식 값을 낸다고 한다.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부유층의 과소비 현상을 비판했다. 과시욕이 있는 비합리적인 소비자들 때문에 비싸야 더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특정 제품을 소비하면 그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 집단과 같아진다는 환상(파노플리 효과)때문에 명품 소비에 올라탄다고 했다. 그러다 명품이나 고가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신이 더 이상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에 흥미를 잃고 중단하는 스노브 효과(snob effect·속물 효과)가 일어나기도 한다.
▶명품 매장이나 위스키, 베이글 등 한정 상품을 파는 곳엔 개장 전부터 줄을 섰다가 달려가는 ‘오픈 런’이 일어난다. 이렇게 물건을 확보하는 능력을 ‘득템력’이라고 한다. 은근히 부(富)를 과시하는 세태는 16세기 정물화에도 들어있다.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미국과 유럽 유명 미술관에 소장된 식탁을 클로즈업한 그림 140점을 분석했더니 과일이 76%였는데, 그 중 레몬이 제일 많았다. 사과나 포도에 비해 귀했기 때문이다. 신선한 생선이나 굴, 가오리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의 비싼 외식 물가에 세계적 여행 사이트 리뷰마다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맛과 서비스가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식당마저 다른 나라보다 20~30% 비싸다고 한다. 일본 언론은 “소셜 미디어에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해 타인에게 자랑하는 것까지 세트”라고 한국의 사치 문화를 소개한다. 한국 특유의 법카(법인카드) 문화와 비싼 식재료도 문제이지만, 남에게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과시 문화가 외식 물가 인플레의 주범으로 꼽힌다.
▶ MZ세대는 한 끼 10만원이 넘어도 과감히 투자하고 이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던 윗세대와 달리 국가적 풍요로움의 결과물을 향유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과시 욕구가 터무니없이 비싼 집 값 탓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해진 현실을 하루 저녁 소비로라도 위로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건전한 소비 문화 정착을 위해서라도 집 값이 좀 더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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