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물든 수채화 만나는 완주 구이저수지 둘레길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3. 4. 1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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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수지 둘레길
산자락이 그림자를 드리운 드넓은 호수. 그 위로 반짝이는 윤슬을 쏟아내는 한낮의 태양. 수변데크길을 따라 붓으로 꾹꾹 누른 듯, 분홍으로 물든 벚나무 군락. 온산을 곱게 물들이는 진달래. 이토록 아름다운 봄날의 수채화가 또 있을까. 과연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호남 4경’답다. 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은 저수지에 담기고 평야의 곡식을 키우는 젖줄이 된다. 어머니 품처럼 넉넉함이 담긴 완주 모악산 절경을 즐기며 구이저수지 둘레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구이저수지 둘레길
#호남 4경 모악산을 아십니까

금산사의 봄, 변산반도의 여름, 내장산의 가을 단풍, 백양사의 설경. 경치 빼어나기로 소문난 ‘호남 4경’이다. 그중 금산사를 품은 곳이 바로 모악산. ‘모악춘경(母岳春景)’이라 불릴 정도니 봄은 모악산이 가장 아름다울 때다. 주차장에서 금산사 일주문까지 벚꽃 터널이 장관을 이루고 진달래가 만발해 정상까지 꽃길이 펼쳐진다. 모악산 정상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은 구이저수지, 금평저수지, 안덕저수지, 불선제, 중인제, 갈마제를 채우고 다시 흘러 김제평야와 만경평야를 적시니 어린 생명을 무럭무럭 키우는 어머니 젖과 다름없다. 실제 해발고도 793m의 모악산은 전북 완주, 전주, 김제에 걸쳐 있으며 산 정상에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어 ‘모악(母岳)’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악길 하트포토존
모악이 만든 많은 저수지 중 흐드러진 꽃들과 함께 모악춘경을 즐길 수 있는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구이저수지로 나선다. 모악산과 경각산(해발 659m)을 좌우에 거느리고 있어 경각산에서 흘러내린 물도 구이저수지에 담긴다. 산책로 입구로 들어서자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린 포토존이 먼저 여행자를 반긴다. 이곳을 찾는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자물쇠를 단단히 걸어 채운단다. 이유가 있다. 모악산과 경각산의 사랑이야기 때문이다. 고래 경(鯨), 뿔 각(角)을 쓰는 경각산은 광곡마을에서 바라보면 모악산 방향으로 머리를 향한 고래의 모습이며, 정상에 있는 두 개의 바위가 마치 고래의 등에 솟아난 뿔의 형상이라 강인한 남성 이미지를 지녔다. 반면 모악산은 어미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바위 때문에 인자한 여성으로 여긴다. 아주 먼 옛날 경각산이 모악산에 청혼을 했고 두 산의 아름다운 사랑과 결혼 덕분에 구이저수지에 생명과 풍요의 상징인 물이 철철 넘쳐 흐르게 됐단다.
모악길
 
경각길
 

하트포토존에서 왼쪽은 경각길, 오른쪽은 모악길. 안내표지판엔 아들 낳고 싶으면 경각길로 가고 딸을 낳고 싶으면 모악길로 가란다. 왕벚꽃길이 아름다운 모악길을 따라 걷는다. 저수지는 워낙 광활해 호수나 바다처럼 넉넉하다. 저수지 둘레를 따라 수변 데크길이 잘 조성돼 윤슬이 반짝이는 맑은 물과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즐기며 힐링하기 좋다. 모악산과 경각산은 버드나무 새싹들이 부쩍 돋아나 푸릇푸릇한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면 가슴이 활기찬 기운으로 채워진다. 8.8㎞의 산책로는 숲과 수변데크가 번갈아 나타나 지루할 틈이 없다. 봄에는 걷는 내내 벚꽃 군락지가 산자락을 핑크로 물들여 초록잎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수채화를 선사하고 여름에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자연을 즐기기 좋다. 중간중간 다양한 포토존도 마련돼 있다.

구이저수지 벚꽃
 

구이저수지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로 만들어졌지만 도시화로 농업용수 공급이 줄어들면서 수량이 풍부해져 생활용수 및 환경수질 정화까지 담당한다. 강태공들에게 인기 높은 낚시터이며 여름이면 전국카누경기대회가 개최되는 카누·조정 등의 훈련장소로도 활용된다.

경각산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 좋다. 걷기 편안한 능선을 30분 정도 오르는 동안 전나무 조림지가 산행의 피로를 충분히 씻어주는 피톤치드를 쏟아낸다. 쑥재부터 임도를 따라 30여분 걸으면 유황성분으로 유명한 송산온천도 만난다. 최근에는 패러글라이딩 점프장으로 인기가 높아 주말이면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패러글라이더의 모습도 즐길 수 있다.

위봉사 일주문
 

#정원이 아름다운 위봉사의 봄

방탄소년단(BTS)이 영상을 촬영한 뒤 ‘BTS 성지’로 인기가 높은 오성한옥마을에 들어서면 풍광 좋은 위봉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쟁이나 병란이 있을 때 전주 경기전에 모신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위봉산성을 쌓고 행궁도 마련했다. 실제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부성이 함락되자 태조 어진이 위봉산성으로 옮겨졌는데 당시 행궁이 너무 낡아 대안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위봉사 대웅전이다. 이 때문에 위봉사는 경기전의 말사가 됐다. 태조암이라 이름 붙은 산내 암자가 자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위봉사 사천왕문 정원
 
위봉사 돌탑길
고풍스러운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 ‘추출산위봉사’라고 적힌 일주문을 통과하자 이곳이 사찰인가 싶을 정도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잘 꾸민 예쁜 정원 덕분이다. 사천왕문 왼쪽으로 벚나무와 박태기나무가 연분홍, 진분홍 꽃을 피웠고 하얀 목련과 운치 있는 소나무까지 어우러진다. 정원을 차지한 나무는 대부분 영산홍이라 벚꽃이 지고 나면 정원은 더 붉게 물들 것으로 보인다. 정원 주변에는 위봉사를 찾은 이들이 하나씩 얹은 돌이 쌓이고 쌓여 돌탑길이 만들어졌다. 깊은 산속인데도 마당이 넓게 펼쳐진 위봉사 경내로 들어서자 또 한 차례 멋진 풍경에 감탄이 쏟아진다. 보광명전과 그 앞을 지키는 수백 년 수령의 거대한 소나무가 어우러지는 풍경 때문. 집이 근처여서 위봉사를 자주 찾는다는 마을 주민은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고찰에 어울리는 품격 있는 소나무를 보고 있으면 옹졸하고 편협했던 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지고 고요해지는 마법을 부린다고 귀띔한다. 그의 말대로 오래오래 눈에 담고 싶은 풍경.
위봉사 보광명전
 
위봉사 보광명전
위봉사는 비구니들만의 도량으로 산수화처럼 여백과 절제의 미학이 돋보인다. 사찰 건물들이 자연과 한몸인 듯, 허세와 과장을 모두 덜어낸 덕분이다.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보광명전 팔작지붕의 용마루는 위봉산의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 자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스님이 두드리는 청아한 목탁이 울려 퍼지는 보광명전 안에는 보물 제608호로 지정된 화려한 후불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위봉사 원숭이석상
 
위봉사 원숭이석상
 
위봉사 원숭이석상
보광명전 앞 계단에 앉은 원숭이 돌상 3마리가 깊은 울림을 준다. 입을 막거나, 눈을 가리거나,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다. 말을 가려서 하고 나쁜 것은 보지 말며, 남을 헐뜯는 말에는 귀를 닫으라는 교훈이 담겨 평소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604년(백제 무왕 5년) 서암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위봉사는 한때 52개 말사를 거느렸고 전각 28동과 암자가 10개 동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단다.
송광사 대웅전
 
송광사 범종루
신라 도의선사가 종남산 아래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소양면 송광수만로 송광사는 위봉사와 달리 지금도 상당한 규모다. 창건 당시 이름은 백련사로 일주문이 3㎞나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는 한 줄로 배치돼 한국의 전통적인 정원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보물이 아주 많다. 2층 누각으로 지은 독특한 종루와 대웅전, 소조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소조사천왕상이 모두 보물인데 대웅전의 어른 키 두 배 정도의 거대한 불상이 압도한다. 봄이면 송광사로 이어지는 도로는 벚꽃을 즐기려는 이들이 몰려든다. 1.6㎞의 소양벚꽃길을 따라 40년을 훌쩍 넘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2㎞나 이어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완주=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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