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된 조국에서 봅시다"…황기환 지사 순국 100년 만에 봉환·안장

YTN 2023. 4. 1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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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를 뒤로 한 흑백 사진 속 청년 앞에 헌화 행렬이 이어집니다.

독립운동가 황기환 지사의 유해 봉환을 앞두고 뉴욕의 한인교회에서 열린 추모식.

현지 동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순국 10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황 지사를 기리며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이준영 / 변호사, 이민 3세 : 황기환 선생님께서는 사실은 오랫동안 미국에 사셨고 100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이렇게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정부가 동원해서 황기환 선생님을 다시 한국으로 모시는 것은 참으로 역사적이고 참으로 감명 깊습니다./ 오늘 황기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오늘 행사에 참여하면서 저도 더 열심히 민족을 위해서 미국과 대한민국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황기환 지사는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죠.

1886년 4월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미국 유학 중 미군에 입대해 1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1919년부터 프랑스와 미국에서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을 중심으로 한 한국대표부와 임시정부의 위원으로 독립운동을 함께 펼쳤습니다.

[장철우 / 뉴욕 한인교회 원로목사 : 거기(프랑스) 동포들을 모아서 거기 한인회를 조직했어요. 그리고 자유라고 하는 잡지를 내서 그 잡지를 내면서 유럽의 프랑스어로 매달 책을 내면서 한국은 독립 국가가 돼야 한다고 하는 거 했어요. 그게 첫 번째 훌륭한 일이고 서재필 박사를 비롯해서 이승만 박사라든지 도산 선생이라든지 많은 애국자가 이 뉴욕을 중심에서 운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에 한 분도 역시 황기환 씨였죠.]

1923년 4월 17일 뉴욕에서 숨을 거둔 황 지사의 묘역을 처음 찾아낸 이는 장철우 목사.

2008년 뉴욕의 한 공동묘지에서 한국어로 쓰인 묘비를 찾아냈습니다.

[장철우 / 뉴욕한인교회 원로목사 : 수천 개의 공동묘지 안에 묘비가 있는데 전부 영어로 쓰여 있잖아요. 그런데 딱 한국말로 돼 있는 황기환 그리고 대한인이라고 써 있단 말이에요. 그때 우리 조국은 일본 사람들의 식민에서 참 나라 이름도 없어진 그때지만은 이분은 떳떳하게 한국말로 대한인이라고 자기 이름을 써놨는데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말이죠. 정말 그때도 우리 청년들 손을 붙잡고 막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묘역을 찾긴 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는 그 후로 15년이 더 걸렸습니다.

연고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족이 없는 황 지사의 유해 봉환에는 법원의 결정이 필요하다는 묘지 관리소의 입장에, 보훈처가 현지 법원에 유해 봉환 소송을 하고 묘지 관리소를 설득해서야 모셔 올 수 있었습니다.

[남궁선 / 국가보훈처 보훈예우국장 : 이 황기환 지사님이 후손이 없어서 후손이 없는 경우에는 미국법에 의하면 소송이나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후손을 확인하기 어려워서 사실 법원의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렇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그런 유해 봉환 필요성, 당위성을 우리 묘지 관리소에 적극 설득해서 전격적으로 파묘 합의를 묘지서와 이루게 되었습니다.]

[로버트 홀든 / 뉴욕 시의원 : 황기환 씨는 세계적으로도, 미국의 일원으로서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미군으로서 전쟁 중에도 자유를 위해 싸웠고 또한 한국의 자유를 위해서도 싸웠습니다. 황기환 씨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쁩니다.]

우여곡절 끝에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황기환 지사.

재향군인들을 선두로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고국의 품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며 현지 동포들도 마지막까지 배웅합니다.

[이해경 / 고종황제 손녀 : 너무 오래됐지만 지금이라도 고국에 돌아가서 묻히시게 된 걸 너무 기뻐하고 제가 오늘 저희 아버지 대신으로 왔어요. 우리가 모르는 독립운동을 하시던 분이 많이 계실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가 정말 고맙다는 소리도 못 하고 가시는 분들 많아 이번에도 황기환 열사님 이렇게 찾아서 고국으로 모시고 간다는 게 너무 감회가 깊습니다. 제발이지 그런 분들이 또 계시면 얼마든지 찾아서 모셔갔으면 좋겠어요.]

[스테파니 장 / 뉴욕 뉴저지 : 우리는 이렇게 애국지사들의 피로 우리나라가 독립을 찾게 되었고 또 우리가 이민자로서 한국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살게 된 모든 근원에 이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제가 황기환 애국지사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이 됩니다.]

[정영민 / 뉴욕 뉴저지 : 이제 본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에, 고국에 있는 전 국민들 특별히 많은 2세들이 우리 젊은 학생들이 황기환 애국지사의 삶을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또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 의식의 뿌리 의식을 새롭게 하는 데 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입니다.]

마침내 인천공항을 통해 조국 땅에 돌아온 황기환 지사의 유해는 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후손이 없지만, 보훈처에서는 가족관계등록부도 헌정했습니다.

먼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 홀로 생을 마감한 황기환 지사.

"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봅시다"라는 극 중 마지막 대사처럼, 순국 100년 만에 비로소, 그토록 그리던 독립된 조국 품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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