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학 칼럼] 마약과의 전쟁은 정치권을 향해 벌여야
환각제인 마약은 이중적이다. 순간적으로 도파민과 엔도르핀 같은 쾌락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 아비규환 전쟁터의 부상자에게 모르핀은 진통제다. 마약이 중독으로 이어지면 뇌의 신경중추를 망가뜨린다. 개인과 사회를 파멸로 이끈다. 영국이 뿌린 인도산 아편은 수천년 아시아 문명을 이어온 청나라를 무너뜨렸다.
정부가 최근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벌어진 '마약 음료수' 사건에 놀라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좀비처럼 스며든 마약문화를 소탕한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엔 흥분과 환각, 중독을 일으키는 마약에 아편, 헤로인, 필로핀과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만 있는 게 아니다.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데도 돈을 퍼주겠다는 정치꾼이야말로 유권자를 흥분, 중독시켜 파멸로 이끄는 '정치 마약범'이다.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오자 국회는 국민을 '헛살 비만'으로 살찌우는 달콤한 '돈 설탕'을 살포하는 법안을 잇따라 통과시키고 있다. 여·야는 표 앞에서 동지다.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추진 여부 등을 결정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면제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완화하는 법안을 상임위 소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과 광주 군공항 이전 특별법도 합의 처리했다.
지역구로 돌아가 동네 곳곳에 '공항건설, 군공항 이전, 도로 건설 확정'이란 선심성 공약이행 플래카드를 걸기 위해서다. 신인 국회의원 후보를 물리치려는 기득권 현역의원들로선 여야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진다. 한술 더 떠 민주당은 운동권 시민단체에 연간 7조원씩 퍼주는 '사회적 경제기본법' 처리를 여당에 재정준칙 입법화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들 법은 미래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국고 외상결제 ' 청구서다. 나라 곳간은 순식간에 비어가고 있다. 경기 악화로 올 2월까지 세수가 작년보다 16조원 줄었다. 실질 재정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두 달만에 30조9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가 올 예산을 짜며 잡았던 연간 재정적자 58조원의 절반을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석유가 펑펑 나는 노르웨이나 중동국가가 아니다. 부족한 재정은 빚으로 메워야 한다. 국가 채무도 급증세다. 당장 정부는 유류세,개별소비세, 종합부동산세 인상을 만지작거린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눈가리고 아웅식 정책을 펼쳤다. 노인에게 나눠줄 기초연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애꿎은 애연가들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담뱃값 인상과 관련, 세수증대가 아닌 국민건강 증진이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골초여서 끊기 힘든 담배의 중독성을 알고 있는 그가 국민건강을 진정 생각했더라면 '금연령'을 선포했어야 마땅하다.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율이 떨어진 나라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도 반짝 떨어졌던 흡연율은 다시 제자리로 튀어올랐다. 정부만 담뱃값 인상으로 한 해 4조원 이상을 더 챙겼다. 담배관련 세금이 국고엔 '횡재세'가 됐다.
1950∼70년대 유행했던 '고무신과 막걸리 선거'는 출마자가 자기 돈을 뿌린 불법 매표행위였다. 요즘의 포퓰리즘 돈 풀기는 국민 혈세를 생색내서 퍼주는 합법 위장 매표행위다. 담뱃값 인상처럼 국민을 속이며 미래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사기다. 지난 세대들이 독일 탄광에서, 중동 모래사막에서 외화를 모아 국가발전에 보탰다면, 지금 정치권은 미래세대의 등골을 미리 빼먹는 야바위꾼이다.
이래놓고 정치권은 20대 청년층의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호들갑이다. 대학교 구내 식당가격을 몇천원씩 깎아서, 실은 나랏돈과 대학 돈으로 지원해 1천원에 파는 '천원의 아침밥' 대학을 늘리는데도 여야는 찰떡궁합이다.
공정 가치를 우선시하는 MZ세대는 식당 계산대에 줄을 서서 '더치 페이'를 할 만큼 계산에 합리적이다. MZ세대가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정치꾼의 얄팍한 사탕발림에 속아 표를 찍어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빅 데이터로 유권자의 마음을 읽지 않고, 구닥다리 수법으로 나라를 거덜내려는 꾼들에겐 준엄한 심판이 기다릴 뿐이다.이사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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