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8800개 상자 열자, 미래 먹거리 밀웜 '꿈틀'
자동화 덕에 20명이 사육구 관리
BGF리테일 기한 임박 식품 받아
팝콘·과자 등 분쇄해 먹이로 사용
화장품 원료·비료까지 생산 가능
상품화·소비자 거부감 극복 과제
층고 8m 높이까지 빽빽하게 들어선 노란색 선반 아래 파란 상자가 겹겹이 쌓였다. 선반에 연결된 레일의 버튼을 누르니 천장 바로 아래, 손 닿지 않는 곳에 있던 상자가 안전하게 운반돼 내려온다.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보니 갈색 덩어리와 하얀 알갱이가 뒤섞여 꿈틀거리고 있다. 보기에 따라 ‘귀엽게’도 느껴지는 이 광경은 식용곤충인 ‘밀웜(갈색거저리 유충)’이 팝콘을 먹는 모습이다. 선반에 쌓인 가로 80㎝, 세로 50㎝의 파란 상자는 밀웜이 먹이를 먹으며 자라는 공간, ‘사육구’다.
11일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에 위치한 식용곤충업체 ‘케일’의 스마트팜을 찾았다. 농장이라기보다는 첨단 물류센터를 연상케 했다. 2620㎡ 규모 작업장의 8800여 개 사육구를 관리하는 근무자는 20여 명에 불과했다. 밀웜 배양부터 제품 생산까지 대부분 과정을 자동화한 덕이다. 먹이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선 유통기한이 임박한 편의점 가공 식품을 밀웜 사료로 쓰기 때문이다.
케일의 밀웜이 편의점 음식을 먹게 된 건 지난달 17일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다. 이전까지 먹이로 썼던 밀기울(수입산 밀 찌꺼기)은 단가가 높고 변동성도 심해 비용 부담이 컸다. 그러나 BGF리테일로부터 유통기한 만료가 임박한 가공 식품을 제공받게 되면서 수입산 밀기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게 됐다. 김용욱 케일 대표는 “과자나 면류를 비롯해 CU 가공 식품의 80%를 사용할 수 있다”면서 “이번 MOU로 사료 비용을 절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BGF리테일도 식품 폐기 고민을 덜었다. 양사 모두 비용 절감 효과를 본 셈이다. BGF리테일에 따르면 가공식품 1톤을 덜 소각할 경우 탄소 배출량도 0.97t 줄어든다. 이런 이유로 이번 업무협약은 ESG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김 대표는 “편의점 업계는 물론 마트 업계의 관심도 이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밀웜은 ‘플라스틱도 씹어 먹을 만큼’ 먹성이 뛰어나지만, 아무 사료나 줘선 안 된다. 섭취한 성분이 그대로 체내에 쌓여서다. 나트륨 함량이 높은 사료를 먹이면 다음날 폐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료의 염분 농도 조절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스스로 수분을 생성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번갈아가며 습식 사료를 줘야 할 필요도 있다.
사육동 옆에 마련된 공간에선 연구복을 입은 직원들이 포장된 과자를 뜯어 정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모은 과자는 건식 분쇄기로 갈아내 밀웜에게 준다. 이게 식단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밀웜에서 오메가3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자체 개발한 배합 사료도 줘야 한다. 먹이 전량을 편의점 과자로 충당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케일은 20~30% 범위에서 어떤 배합 비율이 생장에 유리한지 테스트를 거쳤다. 실험을 거쳐 찾아낸 결론은 과자 비율 25%였다. 케일 관계자는 “지금은 CU 음성 집하센터에서만 라면과 과자를 받아 사용하고 있지만, 조만간 진천 센터의 젤리도 입고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밀웜에서 짜낸 동물성 식용유는 식품 뿐 아니라 선크림 등 화장품 원료로도 사용된다. 껍데기는 분쇄 후 고단백 분말로 만들어진다. 밀웜 배설물도 퇴비로 쓰인다. 사육과 제품 생산의 전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생성된다는 뜻이다. 별도의 후처리도 필요 없을 정도다.
밀웜 사육 산업의 미래는 밝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단백 식품 수요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일도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케일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학습의 단계였다면 이제는 수익을 내야 되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효율적인 배양법을 충분히 연구했으니 이제는 시장화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극복할 방안은 과제로 남았다. 김수희 경민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는 “아직까지 전반적으로 식용곤충을 대량 생산할 체계가 구축되지는 못했다”며 “그런 면에서 케일의 자동화 시도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어서 “생산 단가와 소비자 거부감을 함께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송=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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