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잘 놀다 보니 어느새

한겨레 2023. 4. 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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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알렉산더 콜더, <구아바>, 1955. 국제갤러리 ‘CALDER’전 제공 ©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rtists Rights Society, New York / SACK, Seoul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장난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토이 스토리>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토이 스토리> 3편은 장난감들과 함께 자랐던 어린이 앤디가 어느덧 대학생이 되어 있다. “우리의 임무는 끝났어. 이제 앤디는 다 컸다고.” 장난감들의 대장 격인 카우보이 인형 우디가 동료들에게 쓸쓸히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고마웠어, 내 어린 시절을 함께 해준 장난감들아” 하며 앤디가 장난감들을 떠나보내는 순간이 있다. 이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어른 관객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어른들이 오히려 더 슬퍼했던 것 같다.

장난감과의 이별 장면에서 우리는 왜 코끝이 찡해졌을까. 어린 시절은 장난감들과 함께 밥 먹고 목욕하고 잠이 들던, 모든 것이 놀이였던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장난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장난감과 같이 놀기 좋아하던 그 아이도 더 이상 거기에 없다. 애착 장난감들과의 이별과 동시에 나의 유년기는 종언을 고한 것이다. 이제는 눈을 뜨면 놀이와는 한참 거리가 먼, 먹고사는 현실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한 장난감은 침대 위에 걸린 모빌일 것이다. 모빌은 본래 움직이는 조각품을 일컫는 말로, 맨 처음 모빌을 창안한 사람은 미국의 알렉산더 콜더(1898~1976)다. 조각가 콜더에게는 장난감 제작자라는 칭호가 붙어도 결코 모욕적이지 않을, 장난감과 ‘잘 놀았던’ 인생이 있다. 사람들은 그를 ‘잘 노는 소년’이라고 불렀다. 이 별명은 평생 장난감과 결별하지 않은 채 나이가 들었어도 동심을 잃지 않는 그의 특별함을 뜻한다. 5월28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콜더의 모빌과 조각품, 그리고 과슈로 그린 그림이 전시된다.

콜더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대대로 조각가였고, 어머니는 화가였다. 미술가 집안에서 자란 덕분에 어린 콜더는 손을 잘 쓰는 유전자를 물려받았을 뿐 아니라, 자기만의 공작실이 주어지는 혜택도 누릴 수 있었다. 평균적인 사람이 연필로 낙서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면, 콜더는 허공을 빈 종이 삼아 철사를 구부리면서 생각을 발전시켰다. 만들기의 달인이던 그는 철사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제법 수준 높은 장난감을 제작했는데, 같은 동네 친구들은 그걸 가지고 놀아 보겠다고 앞다툴 정도였다.

청년이 되어 그는 서커스 공연에 매료되어 구경 다니다가,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장난감 서커스단을 꾸리기도 했다. 관절이 움직이도록 설계한 곡예사 인형, 코끼리, 말, 사자 등의 동물 모형으로 이루어진 콜더의 미니어처 서커스단은 친구들을 관객 삼아 수시로 공연을 펼치고 큰 박수를 받곤 했다. 이 서커스 공연을 계기로 해서 콜더는 본래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지만, 미술로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미술을 하면 반드시 크게 성공하리라는 친구들의 성화에 힘 입은 결정이었다.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뛰어든 뒤에도 그는 계속해서 장난감 비슷한 모형을 만들며 한층 진화한 서커스 공연을 준비했다. 그러다가 서른두 살이 되던 해, 1930년에 몬드리안의 작업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하얀 벽에 검은 선으로 칸이 나뉘고,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 가구들이 놓여 있는 그곳은 몬드리안의 그림을 그대로 공간에 구현해놓은 듯 보였다. 완벽하게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정적이었는데, 때마침 빛과 바람이 실내로 들어오면서 어른어른 움직임의 기류가 느껴졌다. 콜더는 ‘바로 이거다!’ 하고 감지했다. 모빌의 아이디어가 떠오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이가 들어 수염이 희끗희끗해져서도 그는 작업실은 물론이고 방과 거실에까지 온갖 잡동사니 재료들을 잔뜩 늘어놓으며 놀았다. 아내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것들을 싹 치워버리면 어쩌나 하고 눈치 보는 것, 이것이 그의 유일한 걱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저분하게 벌여놓고 놀았던 그 자리에서 놀랍게도 군더더기 하나 없이 단순하고 산뜻한,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절제된 추상적 아름다움이 탄생하곤 했다.

<구아바>는 흑과 백, 빨강과 노랑의 동그랗고 뾰족한 철판 조각들이 공중에 매달려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1955년의 작품이다. 이런 모빌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살포시 기분이 들뜬다. 콜더가 미술가였던 덕분에, ‘잘 놀았던’ 그의 삶은 본인의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고, 보는 이에게까지 여운이 되살아나게 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 여운은 장난감과 헤어진 유년기 이후로 우리가 끈을 놓쳐버린 놀이 본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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