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피습 9개월 지났지만…日 총리 경호는 변한 게 없다

정영효 2023. 4. 1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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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테러' 용의자는 24세 청년
총리에 쇠파이프 폭탄 투척
1m 뒤 떨어져 50초 뒤 폭발
배낭선 13㎝ 칼·라이터 등 나와
용의자 작년 시정보고회 참석
정치인 일정 SNS에 그대로 노출
경호도 느슨해 테러 무방비

불과 1분, 1m 차이로 일본에서 9개월 만에 전·현직 총리 두 명이 위해를 입는 비극이 일어날 뻔했다. 폭발물이 시차를 두고 터진 데다 경호 인력이 빠르게 대처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무사했지만 일본인들은 작년 7월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비극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15일 오전 11시30분께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사이카자키항의 기시다 총리 유세 현장에서 기무라 류지(24·무직)가 폭발물로 추정되는 은색 금속제 원통을 던진 사건이 일어났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23일 투표가 치러지는 의회 중의원 와카야마 1구 보궐선거 지원 유세 중이었다. 그의 연설은 오전 11시40분에 예정돼 있었다.

 기시다 겨냥했나

금속제 원통은 기시다 총리 뒤편 약 1m 지점에 떨어졌고, 50초가량 후 폭발했다. 강도가 센 폭발물이 땅에 떨어진 직후 터졌다면 총리의 안전을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사이카자키항 연설을 중단했으나 이후 유세 일정은 예정대로 소화했다. 그는 16일 기자들에게 “민주주의의 핵심을 침해하는 이 같은 행동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용의자를 제압한 어부들에게 전화로 감사의 뜻을 밝혔다.

현지 전문가들은 원통이 이른바 ‘쇠파이프 폭탄’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통에 발화장치를 넣은 형태로,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참고해 쉽게 제작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폭발음 크기와 연기를 보면 화약의 양은 적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생명에 영향을 줄 정도의 위력은 없었던 것 같다”고 보도했다. 와카야마현 경찰은 현장에서 용의자인 기무라를 체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폭발물로 보이는 통 모양 물체 2개를 압수했다. 기무라의 배낭에서는 길이 13㎝ 칼과 라이터 등도 나왔다. 교도통신은 “현장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총리를 습격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기무라에게는 3년 이하 징역이나 50만엔(약 489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는 위력업무방해죄가 적용됐지만, 경찰은 범행 과정에 살의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살인미수 혐의를 추가할 방침이다. 경찰은 이날 오전 효고현 가와니시시에 있는 용의자의 자택을 수사했다. 자택에서는 화약으로 추정되는 분말과 공구류 등을 압수했다. 가와니시시는 사건이 벌어진 사이카자키항까지 자동차로 1시간30분 거리다.

요미우리신문은 용의자가 작년 9월 24일 가와니시시의회가 연 시정보고회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약 70명이 참가한 시정보고회에서 기무라는 시의원의 급여 등을 질문했다. 가와니시 지역 자민당 관계자는 “20대 젊은이가 시정보고회에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정치에 관심이 많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기무라의 초·중학교 친구는 이 신문에 “초등학생 때는 밝고 리더십이 있었는데, 중학생이 되더니 갑자기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베 피격과 판박이

이날 사건은 여러 면에서 아베 전 총리 사건과 비슷해 일본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지난해 7월 아베 전 총리는 나라현에서 선거 지원 연설을 하던 도중 통일교와 관련해 원한을 품은 전직 자위대원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아베 전 총리가 총에 맞은 시각도 오전 11시30분이었다. 총을 쏜 야마가미 데쓰야는 연설 중인 아베 총리 뒤 5m까지 접근해 사제 총을 쐈다. 기무라도 기시다 총리의 뒤편 10m까지 접근했다. 나라현과 와카야마현은 간사이 지방의 이웃 현이다.

일본에서는 그동안 전·현직 총리를 겨냥한 정치 테러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의원내각제 국가의 특성상 선거가 잦은 데다 유력 정치인의 일정이 홈페이지와 SNS 등에 상세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표적이 되기 쉽다는 분석이다. 경호를 다소 느슨하게 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정치인들의 성향도 한 요인이라고 일본 미디어들은 지적했다.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로 재임 중이던 1960년 7월 한 연회장에서 괴한에게 허벅지를 찔리는 중상을 입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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