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중노위원장 "노동분쟁 '화해' 獨 94% 韓 33%···현장 먼저 찾아 중재할 것"
◆대담=양종곤 사회부 차장
노동위, 서울시내버스 노사 타협에 ‘숨은 공신’
조정 통한 갈등 해결 '능동적 중재자' 변신중
노조 중심서 취약계층 보호로 기관 변화도 구상
“서류 상 권리구제 한계···실질적 도움 찾을것”
한국형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 하반기에 마련
“앞으로 노동위원회는 노사 단체교섭이 막히는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나서 대화로 갈등을 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지난달 서울 시내버스 노사는 우리의 ‘사전 조정’ 덕분에 파업으로 치닫지 않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노동위가 노력한다면 앞으로 파업에 이르기 전 갈등이 해결되는 사례가 더 많이 나올 것입니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14일 서울 직업능력심사평가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노동위는 능동적인 분쟁 해결 기구가 되겠다”며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는 일반 근로자의 권리까지 모두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위는 노·사·공익 3자로 구성된 행정기관으로서 노동 분쟁에 대해 조정과 판정을 한다. 중노위는 각 지역에 있는 13개 지방노동위 판정의 재심과 총괄을 맡는다.
파업은 노사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노사가 피해야 할 최악의 결과다. 규모와 기간에 따라 사업장을 넘어 국내 산업 전체와 국민 생활에도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파업 양상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말 ‘동투(겨울 투쟁)’는 의료·철도·학교 등 전방위적으로 일어났다. 파업은 법과 제도,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노사 갈등의 골이 깊을 대로 깊은 택배, 운송(화물연대)에서 파업은 정례화됐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처럼 사업장마다 원청(사측)과 하청 노조 간 갈등도 심하다. 올해도 고물가에 따른 임금 인상 요인과 경기 침체, 노정 갈등 탓에 노동분쟁은 살얼음판 위에 있다.
김 위원장은 “국민들은 분쟁의 발생(파업)에는 관심이 높지만 분쟁의 해결에는 관심이 낮았다”며 “화해·조정·중재를 우선하는 대안적 분쟁 해결 방식은 노동문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안적 분쟁 해결은 이미 미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제도인 동시에 사회를 이끄는 문화다. 특히 정치·세대·계층·남녀·지역까지 갈등 양상이 심한 한국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게 김 위원장의 지론이다. 이 갈등의 출발은 노동이다. 우리나라 취업자 수는 2771만 명으로 전체 인구(5155만 명)의 절반에 달한다. 노동은 곧 국민 전체의 문제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내년에 설립 70년을 맞는 노동위는 그동안 일종의 노조 분쟁 기구로만 국민들께 인식돼왔는데 앞으로는 어려움에 처한 모두를 위한 버팀목으로 변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시내버스 노사의 임금·단체협상 타결이 국내 노동분쟁 해결 사례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 합의는 서울 버스 노조 설립 35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사전 조정’ 덕분에 조기에 타결됐다. 그동안 서울 시내버스 노사 협상은 늘 파업 목전까지 갔고 실제 파업을 피하지 못한 해도 있었다. 올해도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이뤄진 9차례의 교섭에서 노사는 ‘빈손’이었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김 위원장이 첫 현장 행보로 서울 시내버스 노사를 찾아간 이유다.
김 위원장은 “통상 노사는 단체교섭이 어려우면 노동위를 찾는다. 노동위에 조정을 신청한 뒤에도 합의가 힘들면 노조가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에 나서는 게 일반적 수순”이라며 “서울 시내버스 노사의 경우 갈등이 더 심해져 조정 신청을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서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서울 시내버스 임단협 타결에서 두 가지를 얻었다. 노동위의 현행 조정 절차의 한계를 더 명확하게 인식했다. 조정 절차는 ‘단체교섭→결렬 시 조정 신청→결렬 시 쟁의행위’로 요약된다. 노조는 이 같은 노동위 조정 절차를 통해 쟁의권을 얻어야 합법적인 파업을 할 수 있다. 이를 조정전치주의라고 한다. 문제는 조정 기간이 10일(공익 사업은 15일)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미 노사 갈등이 심한 사업장에서 조정 신청이 이뤄지더라도 파업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서울 시내버스의 사례는 조정전치주의의 벽을 넘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결국 갈등은 사람의 의지와 신뢰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이 더 단단해졌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출신인 오길성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이 서울 버스 노사에 사전 조정 신청을 제안하는 등 역할이 컸다”며 “제가 노사를 직접 찾아갔을 때도 ‘중노위원장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노동위가 직접 현장에서 진정성을 갖고 설득하겠다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어떤 갈등도 풀 수 있다는 믿음이 두터워졌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노동위를 개혁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위가 기존처럼 노조의 권리 구제 기관으로 멈춰서는 안 된다는 강한 문제 인식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달 한국형 대안적 분쟁 해결 제도 마련을 위해 노사, 학계 연구회를 꾸렸다. 전문가들에게 일임하지 않고 직접 논의를 주도한다. 올해 하반기 제도안을 마련하고 이르면 내년부터 이 안을 노동위에서 운영하는 게 목표다. 그가 대안적 분쟁 해결 제도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여성·고령자·청년·저소득층 등 노동 취약 계층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급박함 때문이다. 실제로 사업주인 동시에 근로자,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이 과거 노동분쟁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갈등이 우리 사회에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노동위에서 처리한 사건을 보면 10건 중 9건은 개인 분쟁(1만 3528건)”이라며 “하지만 노동위의 의무는 나머지 ‘1건’인 노사 집단 분쟁에 맞춰졌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노동위는 녹슬었다”고 자성했다.
김 위원장은 위원장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학계에서 전체 근로자의 86%인 ‘노조 바깥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 노동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지론을 펴왔다. 2021년 대기업 중심인 300명 이상 근로자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46.3%인 반면 30명 미만 사업장은 0.2%에 그치고 있다. 노조 지형은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9%에 달하고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상황과 노동위의 위치는 정반대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노동위 개별 사건을 살펴보면 대부분 당사자가 소득이 낮은 등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며 “노동위는 노조라는 ‘뒷배’가 없는 국민들도 쉽게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대안적 분쟁 해결이 한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했다. 그는 대안적 분쟁 해결을 도입한 국가들의 세부 지표를 외울 정도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 독일은 이미 노동분쟁의 해결에 자율과 분권의 원리를 적용했다”며 “독일은 개별적 근로관계 분쟁의 94%를 노동법원의 화해로 해결하고 있는데 우리는 중노위만 하더라도 사건의 70%를 판정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김 위원장은 대안적 분쟁 해결 방법 중에서 ‘화해의 가치’에 무게를 뒀다. 디지털화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달로 노동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분쟁 양상은 더욱 복잡해진 상황이다. 옳고 그름만을 나누는 판정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노동위 내부에서는 ‘나쁜 화해도 가장 훌륭한 판결보다 낫다’는 법언이 무색할 정도로 판정중심주의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그러나 부당노동행위 사건의 화해 비율은 한국이 33.8%로 미국(73.7%)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김 위원장은 “노동위의 판정으로 사업주가 처벌받는 게 정말 최선인지, 피해 근로자가 어떻게 권리 구제를 받는 게 중요한지 고민해야 한다”며 “노동위가 판정에서 이뤄지는 인정·기각·각하만 반복해서는 근로자가 정말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은 노동위가 문턱부터 낮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내년부터 물리적·시간적 제한 없이 노동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온라인을 통한 서비스인 ‘e-노동위원회’를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김 위원장은 “노동위의 권리 구제는 이제 ‘서류에만 있는 권리 구제’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목표대로 노동위를 운영하려면 더 많은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동위의 예산·인력 모두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노동 분쟁 사건이 1만 8118건이나 접수됐고 이 중 1만 6072건을 처리했다. 부족한 인력으로 많은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조사관의 사실 조사가 충분하지 못할 수 있다. 이들의 업무 가중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악순환의 피해는 중노위를 찾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작 노동문제를 강조하는 국회의 무관심도 여전하다. 노동위원회법 일부 개정 법률안 발의 건수를 보면 2021년 2건, 지난해 1건, 올해 1건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은 “얼마 전 한 지노위를 찾아가 보니 한 조사관은 대상포진에 걸릴 정도로 힘들다고 했다”며 “노동위는 예산·인력 등 기관이 하려는 일에 어려움이 없도록 독립적인 행정 기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위의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정원은 1805명이다. 이들의 판정을 뒷받침하는 공무원은 정원이 385명에 불과하다.
He is···
△1956년 부산 △서울대 경제학 학사 △미국 아이오와대 경제학 박사△1995~1996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1996~2021년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1997~2006년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2001년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한국 최초) 초대 소장 △2010~2012년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 △2011~2012년 한국노동경제학회 22대 회장 △2022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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