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출신 의원들이 반기···'만장일치 의결'에 발의·폐기 반복[벼랑 끝 비대면의료]

임지훈 기자 2023. 4. 1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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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진료 마지막 골든타임] <상> 또 혁신 발목잡는 국회
"의료영리화 디딤돌 만들겠단 건가"
전직 약사·의사 출신 등 강력 반대
십수년째 의료법 개정안 논의에도
소위 만장일치 관행에 의결 어려워
시범사업 앞두고 개정안 통과 난항
[서울경제]

“사실 우리 ‘영감님’은 비대면 진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아직 못 정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설명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약사 출신 의원들이 워낙 강경하게 반대를 해 입장을 정리하기도 밝히기도 힘든 게 사실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 A보좌관)

정춘숙 보건복지위원장이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안을 의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역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데는 의사·약사 등 의료계 출신 복지위 의원의 ‘입김’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약사·의사 등 의료계 출신 의원이 강경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법안 심의 흐름을 주도하면 나머지 의원은 대체로 따라가는 분위기라는 게 복지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복지위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21대 국회 후반기 복지위에서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하는 제1소위 의원 13명 가운데 의료계 출신은 모두 5명이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과 전혜숙·서영석 민주당 의원 등 3명이 약사 출신이고 최연숙 의원은 간호사, 신현영 의원은 의사 출신이다.

전 의원은 “법안을 보면 볼수록 기가 찬다. 감염병의 특수성 때문에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일부 허용한 것이다. 이게 (감염병 상황이) 끝나면 없어지게 되는 것”이라며 “이 법을 보니까 옛날에 민간 의료보험, 그리고 영리병원 활성화를 시작했던 18대 때 2008년도가 생각이 난다”고 발언했다. 그는 같은 당 신현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대해 “아마 신 의원은 이걸 막기 위해 낸 것 같다”며 “통과시키려고 (법안을) 낸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같은 당 의원의 법안 발의 취지도 본인 뜻대로 재단한 것이다.

서 의원 역시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법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서 의원은 “정작 해야 될 일은 손 놓고 있다가 갑자기 뭔가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얘기하는데 결국은 복지부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회 삼아서 플랫폼 횡포의 길을 만들겠다 이런 취지로 밖에는 안 들린다”며 “의료 영리화로 가기 위한 어떤 디딤돌을 만드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약 배달과 플랫폼, 전자 처방 등 연관된 문제가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한 검토는 돼 있지 않다고 날을 세웠다.

사실 복지위 소속 의료계 출신 의원들이 비대면 진료 제도화 법안 처리를 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대 국회 복지위의 경우 민주당에서는 약사 출신 김상희·전혜숙 의원과 의사 출신 윤일규 의원이 활동했다. 미래통합당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서는 의사 출신 신상진 의원과 약사 출신 김승희·김순례 의원이 복지위에 몸담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비대면 진료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의료계 출신 의원이 소위 단계에서 법 처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국회법상 의결 방식이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임에도 불구하고 소위가 관행적으로 ‘만장일치’ 의결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소위 의원 한 명만 반대해도 법안 심사는 보류된다. 관행을 깨뜨리고 다수결 방식으로 법을 처리하더라도 절반 가까이 되는 의료계 출신 의원이 반대할 경우 가결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18대 국회인 2010년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법안은 당시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개정안은 2012년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다시 박근혜 정부가 19대 국회인 2013년과 2016년 두 차례 의료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했지만 역시 2016년 회기가 종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가 크게 작용했다”며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18대 보건복지가족위도 그렇고 19대 보건복지위도 그렇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적지 않은 의료계 출신 의원이 반대한 것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밝혔다.

20대 국회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제한적 비대면 진료 도입을 검토하면서 상임위에서 논의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역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낮잠을 잔 이유는 의료계 출신 의원의 반대 외에도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한시적 비대면 진료 허용이 영향을 미쳤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료계 출신 의원이 반대하는 데다 비대면 진료를 이미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임위가 굳이 ‘뜨거운 감자’를 집으려고 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5월 시범 사업을 시작하면 의료법 개정안은 또다시 상임위에서 발목이 잡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지훈 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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