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애덤 스미스 300년의 울림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에도
18세기 철학자가 본
인간의 공감 능력에서
희망의 씨앗을 찾고 싶다
빌 게이츠는 추레하다. 헝클어진 머리에 빈약한 상반신을 드러낸 채 슬럼가에 서 있다.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도 초췌하다. 인도의 한 미술가가 인공지능(AI) 미드저니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한 장면처럼 합성한 이미지다. 소셜미디어는 지구촌 최고 부호들도 상상으로나마 가장 가난한 처지가 돼봐야 한다는 발상을 퍼 나른다. AI가 조문(弔文)까지 써주는 시대다. 미국 밴더빌트대는 미시간주립대 총기 난사 피해자를 애도하며 '배경과 관점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표하자'는 메일을 보냈다. 챗GPT가 쓴 글이었다. 학생들은 영혼 없는 글에 거세게 반발했다. 공감은 AI로 손쉽게 합성할 수 없다. 늘어진 속옷을 입고 슬럼가에 선 도널드 트럼프의 이미지를 만든다고 그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까.
300년 전 오늘 어머니 배 속에 있었던 애덤 스미스는 공감의 철학자였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다른 이의 처지에서 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큰 산이었던 데이비드 흄은 현이 공명하는 것과 같은 공감을 말했다. 그러나 스미스의 공감은 단순한 반향이 아니었다. 공감은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이의 자리로 가서 그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온전히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은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기에 올바른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나를 지켜보는 가장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고 그의 자리로 가서 그의 눈으로 내 행동을 보라. 그는 나의 위대한 재판관이 된다. 스미스는 자기애라는 가장 강력한 충동에 맞설 수 있는 대항력은 인간애의 부드러운 힘도, 자연이 인간의 가슴속에 피워놓은 자비심의 연약한 불꽃도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바로 내게 죽비를 내려치는 공정한 관찰자라는 존재다.
스미스는 조선의 정조가 임금에 오른 1776년 '국부론'을 냈다. 17년 먼저 펴낸 '도덕감정론'은 30년 넘게 다듬었다. 그는 언어와 모방예술도 탐구했다. 하지만 훗날 챗GPT나 미드저니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는 기껏 제임스 와트가 만든 원시적인 복사기를 보고 놀라워했다. 여기서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타임슬립을 한 그가 오늘날의 챗봇을 봤다면 뭐라고 할까. 노동자가 단순 작업만 되풀이하다 창의력을 잃고 무지해지는 것을 걱정했던 그는 일자리 문제부터 고민할 것이다. 가르치는 척조차 않는 옥스퍼드대의 교수들을 비난했던 스미스는 변화에 둔감한 오늘날 대학 교육도 질타할 것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더 근본적인 물음도 던질 것이다. 이 신기한 로봇은 과연 사람처럼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지닐 수 있을까. 공정한 잣대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는 있을까. 우리는 그 답을 안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아니다. 때로는 놀랄 만큼 어리석고 잔인하며 파괴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간판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자신이 인간에 대한 비관주의 덕분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의 부모는 유럽이 히틀러의 광기에 휩쓸리는 걸 보고 런던으로 도망쳤다. 두 사람이 낙관론자였다면 그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엘리트에 대한 불신과 심화하는 불평등, 포퓰리즘, 권위주의, 정체성 정치의 현실을 비관하는 울프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건강한 동행을 위한 시민의식을 강조한다. 나는 스미스가 본 인간의 공감 능력에서 희망의 씨앗을 찾고 싶다. 스미스는 이기심과 탐욕의 변호인이 아니었다. 그가 코인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는 한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봤다면 할 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가 본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는 즐거움밖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라도' 그 행복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여긴다. 챗GPT의 시대에도 애덤 스미스를 다시 봐야 할 이유다.
[장경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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