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은 로비스트’ 판결문…‘이, 민주 의원들에 돈 보냈다’ 내용도
이, 유력인사들 친분 과시 금품 요구
검찰이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을 수사 중인 가운데, 해당 의혹의 출발점인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부총장)에 대해 법원이 ‘로비스트’ 역할을 했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이 전 부총장이 유력 민주당 인사들과 친분을 과시하며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민주당 의원들에게 일부를 건넸다는 진술도 담겨 있어, 검찰 수사가 어디 선까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검찰 구형(징역 3년)보다 높은 선고(징역 4년6개월)가 나온 것을 두고 이 전 부총장이 검찰과 유죄협상(플리바게닝)을 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로비스트’ 이정근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는 정치자금법 위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부총장에게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 16일 <한겨레>가 입수한 이 전 부총장의 1심 판결문을 보면, 이 전 부총장은 자신을 “로비스트”라고 부르며,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등 유력 민주당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사업가 박아무개씨에게 본인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선거와 관련한 자금을 요청했다. 또 이 전 부총장과 박씨는 청탁과 돈이 오가는 로비스트와 스폰서 관계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내가 로비는 잘하니까 사업이나 배울까 봐요.”(2020년 4월19일)
“나는 지금도 로비스트야. 나는 내가 해보니까, 로비스트로서 기질이 있어. ‘나는 역시 로비스트가 맞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해.”(2020년 8월25일)
“이제 나는 로비스트가 꿈인 게, 해보니까 로비스트야말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이 있어야 되겠더라고. 그런데 내가 오빠한테 하나 양해를 구하는 거는 좀 기다려주시라. 내가 백을 갖거나 아니면 돈을 갖거나. 돈이라도 해도 내가 어마어마하게 갖는 것도 아니고”(2020년 8월30일)
“나는 내가 로비스트가 되고 싶다라고 오빠한테 얘기한 적 있어. 한국에서는 로비스트가 안 돼.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일을 안 해봤어. 고작 해봐야 누구 취직시키는 일밖에는 안 해봤어. 그러면 오빠 그런 거는 나한테 전후 사정을 얘기해줘야지.”(2020년 9월16일)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오빠가 뭐 때문에 나한테 은행도 아닌데 그러겠어요. 나는 오빠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도와주고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2020년 10월16일)
“송영길 대표한테 전화해봐라 안했겠어요?” 친분 과시
재판부는 이 전 부총장이 알선의 대가로 10억원의 금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며, 일부는 적극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이 전 부총장의 판결문에서 유력 정치인과 친분을 과시하고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대목들이 여럿 등장한다. 박씨가 언급한 정치인은 송영길 전 대표뿐 아니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다양했다.
“회장님 이런 일 안 해보셨어요? 제가 밥도 사고 해야 하는데 제 돈을 쓸 수는 없잖아요. 제 것은 없나요?”(2019년 12월10일)
“노영민 비서실장님이 나한테 CJ계열사 어딜 가라고 했잖아. 노영민 비서실장님이 나한테 CJ 계열사 가라고 했는데 내가 가지 않는다 그랬잖아. 본사도 아니고 계열사야.”(2020년 8월25일)
“변호사 통해서 그 3천만원 보내라고 하세요. 그다음에 그 3천만원은 나를 다시 줘요. 그러면 내가 고생한 얘들한테는 뭔 좀 한 100만원씩이라도 나눠줄 테니까.”(2020년 8월25일)
“(내가) 우리 송영길 대표한테도 ○○한테 전화 한 통만 해봐(라고) 안 했겠느냐”(2021년 11월10일)
1심 판결문에는 이 전 부총장이 받은 돈이 민주당 쪽 정치인에게 흘러갔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국회의원을 언급하며 선거자금이 부족하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오빠 이성만 의원 있잖아. 내가 100만원 보냈어. 나 오빠한테 3000만원 받아가지고 막 쓰고 있어. (…) 이성만 위원장은 같이 갔거든 이틀 동안 무안에 열심히 잘 쳤어. 이성만 위원장이 골프 좋아해 바로 100만원 후원금으로 보내줬지.” (2020년 7월21일)
휴대전화-캘린더-음성녹음으로 상황 재현
이 부총장의 생생한 발언이 판결문에 담긴 것은 검찰이 그의 휴대전화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전 부총장은 정치에 입문한 2016년부터 자동 녹음 기능을 활용해 휴대전화 통화를 녹음했고 그 음성 파일 개수가 3만개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전 부총장 변호인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일부 휴대전화를 확보했고, 가족 등 주변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해 이 전 부총장이 임의로 휴대전화를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은 △통화내역 △음성녹음 △문자·텔레그램 메시지 △구글 캘린더 △사진 △이메일 등을 모두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판결문에는 이 전 부총장과 사업가 박씨의 평상시 대화도 담겨 있다. 박씨가 휴대전화 통화뿐 아니라 평소 대화도 녹음했고 돈을 건넨 날짜와 액수도 메모했는데 이를 검찰이 확보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캘린더로 두 사람이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과정을, 녹취록으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적시하며 청탁과 돈이 오간 상황을 낱낱이 파악했다.
법원 판단보다 낮았던 검찰 구형…플리바게닝 했을까
객관적 증거가 충분한데도 검찰이 법원의 판결(징역 4년6개월)보다 낮게 구형(3년)한 탓에 이 전 부총장과 플리바게닝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전 총장에게 적용된 10억여원의 알선수재 등 혐의는 최소 5년 구형인데 검찰이 집행유예가 가능하도록 3년을 구형했다는 주장이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14일 오전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3년 구형은 집행유예 나가도 된다. 검찰의 뜻은 ‘(이 전 부총장에게) 집행유예로 내주세요’라는 의미라고 저는 봤다”며 “사실상의 플리바게닝 같은 게 좀 있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부총장 변호인은 <한겨레>에 “이 전 부총장은 억울한 수사로 구속됐다고 생각한다”며 “법원이 바로잡아주겠다고 생각했지만 1심 판사는 100% 검찰 말을 들은 것”이라고 했다.
플리바게닝 해석의 또 다른 배경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를 근거로 검찰 수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2021년 4월 민주당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윤관석 의원 등 9명이 송 전 대표의 당선을 위해 최소 40명에게 50만~300만원씩 모두 9400만원의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보고 수사하는 게 대표적이다. 현역 의원만 10~20명, 지역본부장과 지역상황실장은 수십명이 돈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정황의 출발점은 이 전 부총장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김영철 부장검사)는 지난 12일 윤 의원 등을 압수수색한데 이어 이날 송 전 대표의 선거운동을 도운 대전 동구 전 구의원 강아무개(38)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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