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우리들의 시네마천국

2023. 4. 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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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화제가 되지는 못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영화 '파벨만스'(2022)가 지난달에 개봉했다. 부모님을 따라간 영화관에서 기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장면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소년 새미는 부모님에게 미니어처 기차와 자동차를 선물해 달라고 조른다. 새미는 그 장난감들로 영화 속 장면을 몇 번이고 실연해 보다가 그것을 8㎜ 카메라에 담아 영사하기에 이르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을 꿈꾼다. '파벨만스'에는 가정용 카메라를 통해 가족의 추억을 기록하거나 친구들과 단편영화를 찍곤 하던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 즉 1950~196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의 풍경이 잘 담겨 있다.

지난주에 개봉한 '라스트 필름 쇼' 또한 영화를 향한 감독의 러브레터로, 한 소년과 영사 기사의 우정을 다룬다는 면에서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저 유명한 영화 '시네마천국'과 많이 닮아 있다. 인도의 작은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사메이는 다소 반항적이고 유별난 성격 때문에 어른들에게 자주 혼나지만,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다. 새미와 마찬가지로 영화에 매료된 사메이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영화관 근처를 맴돌다가 영사기사인 파잘과 친해져 실컷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 사메이는 처음부터 영화가 빛의 예술이라는 점에 주목해 친구들과 유리 조각이나 필름 자투리를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영화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새미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영화에 대한 사메이 일행의 열망은 더 크고 간절하게 다가온다.

영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어떻게 영화와 가까워졌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싶은 사람은 비단 영화감독만이 아닐 것이다. 영화 좀 봤다는 중년들에게 영화와 관계된 경험담은 술자리의 단골 메뉴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기 위해 벌였던 대담한 행각들, 비디오가게 아르바이트, 영화 동아리에서의 추억, 영화관에서의 첫 데이트 등은 무용담처럼 반복될 때마다 과장이 심해지고, 술기운이 짙어지면 열심히 사 모았던 비디오와 DVD, 영화 잡지와 브로마이드가 안줏거리로 배달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시절의 영화는 셀룰로이드 필름에 담긴 빛이었다는 점에서 분명 물성을 갖고 있었고, 새미와 사메이가 그렇듯 상당 부분 그 사실이 추억의 지분을 갖고 있다. 비디오가게 진열장에 빽빽하게 꽂힌 비디오의 제목을 훑고, 손끝으로 더듬어 가며 영화를 고를 때 VHS의 두툼한 케이스는 영화와 동급으로 여겨졌으니까. 좋아하는 영화들은 이미 하드 디스크에 소장했으면서도 이사하느라 버릴 수밖에 없었던 비디오와 DVD 때문에 가슴이 시렸던 것도 다 옛날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득 동시대의 어린 영화 팬들은 훗날 어떻게 영화를, 영화에 대한 열정을 추억할지 궁금해진다. 유수광음(流水光陰). 아마 클라우드 10기가가 모자랐다는 얘기도 곧 옛말이 될 것이다.

[윤성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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