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끊겨 생긴 산불 3년간 20회나..."산림 지역은 절연 케이블 깔아야"

이윤주 2023. 4. 1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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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최근 10년 전선 문제로 생긴 산불 전수 분석
외국처럼 수목 정리지역 만들라지만
"한국은 산에 전봇대 많아 주변 가지치기 100% 못 해"
"두껍고 전기 안 통하는 절연 전선이라도 설치해야"
11일 오후 강원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이 8시간여 만에 진화된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 재발화 신고가 잇따라 들어오면서 소방 당국이 장비 192대, 인력 463명을 투입해 잔불 정리 등 야간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11일 발생한 강원 강릉시 일대 산불의 원인이 강한 바람으로 인한 전봇대 전선 단선으로 추정되면서 비슷한 사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국내에서 일어난 산불 중 30건이 전선이 끊어져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전선 단락 때문에 산불이 늘고 있어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 관련 노동자들은 나무가 많은 지역에서라도 전선을 절연 케이블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16일 산림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전선이 끊어져서 발생한 산불 건수는 30건, 피해 면적은 축구장 512개인 365.45헥타르(ha)에 달했다. 2013년과 2014년 각각 한 건에 그쳤던 '전선발(發)' 산불은 2015년과 2017년 각각 두 건이었다. 2018년에는 역대급 피해를 만든 강원 고성군 산불(피해면적 356.95ha)을 비롯한 세 건이 전선이 끊어져 발생한 산불로 이어졌다.


전선 끊겨 생긴 산불 3년 사이 20건

1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저동골길 펜션단지에서 한 이재민이 화재로 전소된 펜션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특히 2020년부터 3년 동안 전선 문제로 인한 산불이 집중적으로 발생해 20회에 달했다. 2020년 11회, 2021년 3회, 2022년 6회다. 산림청 관계자는 "최근 산불이 더 늘어난 이유를 따로 분석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산림 지역 전선 문제로 산불이 일어난 원인은 다양했다. 2021년 2월 경기 포천시 산불은 변압기가 떨어지며 전선을 끊어 이로 인한 누전으로 일어났다. 2020년 6월 경남 양산시에서 축구장 3개 면적(2ha)의 피해를 준 산불은 송전선로에서 스파크가 일며 전선이 끊어진 뒤 불꽃이 주변 야산에 옮겨 붙으며 시작된 것으로 산림청은 추정한다.

특히 이번 강릉시 산불처럼 강풍으로 인해 나무나 전신주가 쓰러지며 전선을 끊어 산불이 시작된 경우도 최근 세 건에 달했다. 2020년 2월 경북 봉화군 산불, 같은 해 12월 경기 화성시 산불은 나무가 쓰러져 전선을 끊으며 시작됐다. 같은 해 6월 경기 하남시 산불은 전신주가 쓰러지며 산불로 이어졌다.

산림 내 전기 설비로 인한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 등 선진국처럼 송배전 설비 주변을 수목정리지역(vegetation clearance zone)으로 설정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는 "미국과 호주 등은 전신주 근처 일정 거리에 있는 나무를 제거하는 방안이 법제화돼 시행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가지치기 작업을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고압 송전선로 아래 땅은 한전이 3m 범위로 수목을 제거해야 하고 배전선로는 1.5m 범위에서 주변 수목을 없앨 수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장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관련 절차가 복잡하고 해당 나무가 사유지에 있을 경우 땅 주인이 베는 걸 거절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국토 70%가 산...산림 지역에 절연 전선 깔아야"

11일 강원 강릉시 난곡동에서 산불이 발생해 막대한 산림과 주택·펜션 등 수십 채가 피해를 본 가운데 산불 발생 원인으로 강풍에 끊어진 전선이 지목받고 있다. 산림청 1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풍으로 나무가 부러지면서 전선을 단락시켰고, 그 결과 전기불꽃이 발생해 산불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은 전선 단락이 일어난 전신주 모습. 산림청 제공

현장에서 송‧배전선로 설치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산림 지역 전선만이라도 모두 절연 전선으로 바꾸라고 제안한다. 엄인수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전기지부장은 "우리나라는 산림 지역에 송배선로가 워낙 많아 일일이 전선 주변 나무를 베거나 가지치기를 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산림 지역 전기 설비를 땅에 묻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지만 지상에 설치할 때보다 비용이 10배 이상 치솟는다. 안 지부장은 "절연 전선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을 씌워 손이나 나무가 닿아도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며 "절연 전선은 일반 전선에 없는 강심을 넣고 절연 물질로 바깥을 두껍게 감싸기 때문에 끊어질 위험도 적다"고 말했다.

전선 문제로 인한 산불이 잦아지자 한전은 △2020~2021년 24억5,000만 원 △2022년 75억 원 △올해 72억여 원을 들여 일반 전선을 절연 전선으로 바꾸고 있다. 그러나 절연 전선 설치율은 전국 평균 0.6%, 산이 많은 강원지역은 1.8%에 그친다. 한전은 "전선 설비가 방대해 전체를 바꾸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산불 예방을 위해 수목 전지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관련 법,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 지부장은 "도심과 산악 지역, 나무가 많은 고속도로 일대 등 지형별로 절연 전선 설치율을 분석해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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