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화랑의 흐린 기억, 69년만에 되짚다

서지혜 기자 2023. 4. 1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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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랑 45주년 기념전 '밤하늘의 별이 되어'
국내 첫 상업 갤러리 '천일화랑'
김중현·구본웅·이인성 화백의
3인 유작전 사료 등 아카이브전
'근대미술 거장' 21명 작품 전시"현대 미술사의 뿌리를 찾는 작업"
예화랑 ‘밤하늘의 별이 되어’ 전시 전경. 사진제공=예화랑
[서울경제]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9월 전쟁 중 사망한 세 명의 작가인 김중현(52)·구본웅(47)·이인성(38)을 위한 추모전이 서울 종로4가의 당시 천일백화점 내 천일화랑에서 열린다. 전시는 ‘유작 3인전’. 전시회의 모든 비용은 천일화랑을 운영하는 이완석(1915~1969)이 부담했다. 천일화랑은 1954년 7월 천일백화점과 함께 문을 연 화랑이다. 친구이기도 한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백화점을 찾는 이들에게 판매도 한다는 요즘 형태의 상업적 화랑이었다.

그 당시 이완석의 예술가 친구들은 오지호, 남관, 임군홍, 이인성, 윤중식, 손응성, 유영국, 최영림, 장욱진, 이준, 이대원, 임직순, 홍종명, 정규, 문신, 권옥연, 천경자, 변종하, 김환기, 김향안 등 미술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이들이다. 이후 딸인 이숙영이 1978년 인사동에 예화랑을 오픈했고 외손녀인 김방은 대표가 신사동에서 화랑을 운영 중이다.

1954년 천일화랑서 열린 ‘유작 3인전’ 개막식 모습. 사진제공=예화랑

이완석의 화랑은 문을 닫았지만 예술을 사랑한 이완석과 친구들의 관계, 그리고 작품은 이제는 보존하고 발굴해야 할 미술사의 사료가 되었다. 김방은 예화랑 대표가 공공미술기관이 할 법한 이 대규모 아카이브 기획을 해냈다.

외조부와 인연을 맺은 한국 근대미술 초창기 작가 21명의 작품이 신사동의 예화랑에 선보인 것. 예화랑은 45주년을 기념해 천일화랑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아카이브 형식의 전시회 ‘밤하늘의 별이 되어’전을 개최한다.

김 대표에게 이번 전시의 시작은 사실 외조부의 일대기를 연구하는 사적인 작업이었다. 그러다 처음 천일화랑에서 열린 ‘3인 유작전’과 관련한 사진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김중현·구본웅·이인성의 유가족과 연락이 닿았고, 그들 덕분에 귀중한 역사적 사료가 될 만한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사진을 발견했다.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천일화랑이 박물관처럼 신사동 예화랑에서 되살아난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을 대거 감상할 수 있다. ‘유작 3인전’에 출품한 3인 중 구본웅의 작품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소실됐다. 오로지 대표작 ‘친구의 초상(1935)’만 남아있다. 구본웅이 친구이자 시인인 이상을 그린 그림이다. 그의 차남 구상모 씨는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부산까지 피란 가며 싸들고 다닌 몇 점의 그림 중 김해경(이상)의 초상이 있었다”며 살아남은 작품의 뒷 이야기를 전했다.

10일 서울 강남구 예화랑의 ‘밤하늘의 별이 되어’ 전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유가족들. 왼쪽부터 김중현 화백의 딸 김명성 씨, 구본웅 화백의 두 아들 구상모·순모 씨. 사진=서지혜 기자

전시관 1층에는 69년전 유작전에 출품된 이인성의 풍경화 소품과 구본웅의 인물 데생화를 볼 수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 여사의 작품도 이 곳에 전시돼 있다. 많은 작품이 예화랑이 직접 소장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전시의 핵심은 3층의 아카이브. 한국화 대가 청전 이상범, 김환기, 이마동 등 근현대 회화의 거장들이 의자에 앉아있는 1954년 천일백화점 옥상에서 열린 ‘유작전’의 개막식 사진 9장은 ‘3인 유작전’ 중 한 명인 이인성 화백의 아들 이채원 씨가 어릴 때부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사진을 건네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이번 전시가 끝나도 남겨져야 할 중요한 역사적 사료다. 아쉽게도 당시 ‘3인 유작전’에 출품된 작품은 소장자들과 합의되지 않아 전시되지 못했지만 3층 건물의 예화랑 벽에 걸린 작품 만으로도 관람객들은 근현대 미술사의 흐름을 한 번에 보고 느낄 수 있다.

이날 전시회를 기획한 김방은 대표는 “2년 전 한 재단으로부터 외조부의 포스터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은 이후 고인의 행적을 찾는 작업을 시작하다 보니 한국 현대미술사의 뿌리를 찾는 작업으로 확대됐다”며 “69년 전 출품작은 공공미술관에 들어가거나 다른 소장자로 넘어가 한 점도 나오지 않았지만 천일화랑의 시체와 전시 의미를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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