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들은 말썽을 부리지 않지?”

한겨레21 2023. 4. 1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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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늙은 엄마]상상된 이미지에서 아시안은 언제나 인종 프로파일링 대상
2021년 3월 여섯 명의 한국과 중국 여성이 사망한 미국 애틀랜타 총격 사고 뒤, 독일 베를린의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아시아 혐오 범죄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특별반에서는 가난과 소외의 냄새가 났다. 이곳은 마치 뒤뜰이나 무대 뒤, 보기 흉하거나 남에게 보여선 안 될 물건들을 숨기는 장소 같았다.”

이란에서 태어나 6살 때 엄마 아빠를 따라 프랑스로 망명했던 작가 마리암 마지디는 프랑스 첫 학교 경험을 이렇게 적었다. 프랑스는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이민 배경의 아이들을 정규반에 갈 수 있는 언어 수준이 될 때까지 ‘프랑스어 새내기반’이라고도 하는 특별반에 수용해, 교육한다. 마지디는 어릴 때 뿌리 없이 흔들리는 특별반의 가난한 아이들의 얼굴이 싫었다고, 빨리 진짜 프랑스 사람들이 있는 정규반으로 가고만 싶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정체성 세탁’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있는 아이들을 프랑스에 일방적으로 동화시키는 교육시스템에 비판적 시선을 갖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환영받지 못한 ‘환영반’ 아이들

2018년 가을 베를린에 온 우리 아이는 독일의 한 초등학교에서 ‘환영반’이라는 언어교육반에 들어갔다. 이름처럼 환대와 통합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 기대는 바로 깨져버렸다.

우리 아이가 있던 환영반은 학생 수와 출신국 수가 거의 일치하는 다양한 문화적 집단이었지만 교사는 턱없이 부족했다. 책임교사와 돌봄교사 두 명 모두 비정규직이었는데, 교실 열쇠를 가진 책임교사는 여러 번 긴 병가를 냈다. 그때마다 환영반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종일 복도를 떠돌다 집에 오고는 했다. ‘진짜 독일 사람들’이 있는 정규반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환영반에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 아이였으므로, 나는 독일의 환영반에서는 어떤 냄새가 났는지 알지 못한다. 난민 숙소에 자리가 날 때마다 옮겨다녀야 해서 여러 학교를 떠도는 시리아에서 온 아이, 내전으로 장애를 얻어 휠체어를 타고 등교하는데 활동보조인 지원을 받지 못했는지 쉬는 시간이면 자신이 직접 주사를 놓는다는 보스니아에서 온 아이 이야기를 기억한다.

독일의 첫 겨울은 시렸다. 원래 하루 3시간은 정규반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도록 정해졌지만, 독일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환영반 아이들은 빈번히 수업에서도 내보내졌다. 갈 곳 없던 아이들은 학교를 몰래 돌아다니는 장난에 몰두했다. 환영반에 오래 있었던 폴란드 아이의 지도로 아이들은 불을 끄고 난방을 잠그고 창고에 숨기도 했다. 우리 아이는 그 장난이 너무 재밌어서 독일에 오길 잘했다며 즐겁게 등교했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업 중 조용한 학교 복도를 몰래 돌아다니는 환영반 아이들의 모습이 백인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독일은 프랑스와 달리 통합교육을 했다. 그러나 난민과 외국인 학생 수가 급격히 늘자 언어교육 지원을 이유로 2015년부터 독일어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환영반을 만들었다. 환영반을 “선의에 의한 실패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수를 분리하는 건 언제나 차별을 부른다는 점에서 애초 외국인 학생을 위한 선의는 아니었다는 비판도 많다.

다른 인종을 상상하는 것

“아시아인들은 말썽을 부리지 않지?”

2019년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한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이 승강장에 서 있던 어머니와 8살 아이를 기차가 들어오는 선로로 떠다민 사건이 있었다. 나는 내게 독일어를 가르쳐주던 한 독일 할머니와 이 사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보수당인 기독교민주연합 지지자지만 환경을 생각해 최근 녹색당에 투표한, 대체로 선량한 이 노인은 이슬람교도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다가 문득 내 눈치를 살피며 이렇게 덧붙였던 것이다. 많은 아시아인이 이슬람교도를 경원시하지만 순종적인 아시아인으로 분류되는 것은 위험한 이슬람교도, 열등한 흑인으로 분류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소설 <파친코>에서 재일조선인 2세 노아는 엘리트 교육을 받았지만 주류사회에서 배제된다. 일본인 아키코와 연애할 때조차 노아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끼어든다. 나도 가끔 백인 집단에 있으면 이들이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 속 아시아인을 본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파친코> 속 노아의 생각 그대로다. “아키코는 항상 그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환상적인 외국인 모습을 노아한테서 찾는 것만 같았다. 아키코는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과 어울려준다는 이유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노아는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교육받은 사람, 자유로운 사람임을 증명해주는 존재였다.”

어떤 인종, 종교를 가진 집단이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용의선상에 올리는 것을 ‘인종 프로파일링’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이 주제로 토론했을 때 특히 튀르키예 가정 출신 남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토론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제 막 스무 살이 됐지만 경찰에게 불심검문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순종형에서 보균자로

주로 용의자보다는 그림자로 사는 아시아인의 상황은 어떨까? 2020년 독일연방 정치교육센터는 독일에서의 반아시아주의 사례를 수집했는데, 아시아인에 대해서는 ‘모범적 이민자’라는 긍정적 이미지와 나란히 “아시아 여성은 아이 같고 아시아 남성은 여성적”이라는 이미지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이 두드러졌다. 백인사회의 시선은 성적 기능조차 거세된 그림자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겪으면서 아시아인의 이미지는 잠재적 보균자로 바뀌었다. 아시아인들의 해괴한 식습관이나 불량한 위생상태에 대한 편견이 ‘실체 있음’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센터는 ‘대중교통에서 누구 옆자리에 앉겠느냐’는 조사를 했는데, 이전에는 전체 응답자의 51%가 ‘아시아인 옆자리에 앉겠다’고 한 것이 팬데믹 이후에는 47%로 줄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회에서 다른 인종, 다른 출신으로 산다는 것은 백인들의 시선으로 상상된 특성을 갖게 되고 언제든지 포섭되거나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인종 프로파일링 대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베를린(독일)=남은주 자유기고가·번역가 eunjoonam@web.de

*공부하는 늙은 엄마: 나이 오십에 독일 대학에 들어간 전직 기자의 이주 생활과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탐구.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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