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참사는 법적 책임만 따져선 안 된다”[세월호 9주기]
“사회를 바꾸는 것은 몇 명만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9년, 한국 사회는 ‘재난 조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시 직면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경찰 특별수사본부 수사와 국정조사는 실무자들의 책임을 추궁하는 데 그쳤고, 유가족들은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참사’를 예방하려면 법적 책임을 따지는 데 초점을 둔 재난 조사 방법, 법률가 중심 조사위원회 구성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아 경향신문은 박상은 전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1기 특조위) 조사관과 유승익 한동대 BK21 글로벌입법팀 교수를 지난 13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두 사람은 “참사 조사위원회 위원이나 조사관 구성에 검사, 변호사, 판사, 로스쿨 교수 출신 등 법률가 비율이 높아질수록 재난 원인을 밝혀내는 조사가 사법적 책임 규명에 초점을 두고 이뤄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조사위 조사관과 위원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조사능력’과 ‘행정 오류에 대한 진단능력’”이라며 “법률전문성이 재난 조사에 모두 요구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참사 조사위원 중에는 법률가 출신이 상당수 포함되곤 한다. 세월호진상규명법에 따르면 특조위 위원은 판사, 검사, 군법무관 또는 변호사로 10년 이상 재직한 사람, 해양·선박 전문가, 정치·행정 분야와 사회복지, 언론 전문가, 정신과 전문의 등 다양한 분야의 직업군이 지명될 수 있다. 하지만 1기 특조위원 17명 중 15명이 검찰 출신 등 법률가였다. 2기 특조위의 경우에도 마지막까지 남은 위원 6명 중 5명이 법률가였다.
박 전 조사관은 법률가 위주로 조사위가 꾸려지면 참사 책임자의 고의성과 과실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참사의 구조적 원인은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다. 조사가 ‘수사화’되는 셈이다. 박 전 조사관은 “법조인들은 업무 특성상 법률적으로 인정되는 증거를 찾고 인정받기를 계속해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사도 그런 방식으로 하기 쉽다”며 “‘업무 관행’과 같이 증거능력으로는 약하지만, 전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수집돼야 하는 정보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고 했다.
박 전 조사관은 “세월호 참사 당시 청해진 해운의 훈련 관행은 조사되지 않고, 선내 대기 방송을 누가 지시했는지만 물었다”면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도 112신고를 받은 경찰이 왜 위험징후를 알아채지 못했는지에 대한 조사, 경찰 조직의 작동방식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 교수도 “법률가가 많으면 원인규명 과정에서 과학적 가설정립과 검증보다는 고의, 과실, 인과관계 등에 관한 법적 판단에 에너지가 편중된다”면서 “세월호 참사 조사의 경우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나 선체이상과 같은 내생적 원인에 대한 주장은 배격됐고, 과학적으로 검증자료가 부족한 가설이 힘을 잃지 않고 테이블 위를 맴도는 상황이 지속됐다”고 했다.
유 교수는 법적 책임을 묻는 데 초점을 둔 조사가 도리어 공무원들의 책임있는 재난 대응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재난에 일차적으로 대응하는 일선 공무원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소극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며 “재난행정 시스템 전반이 약화될 수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조사위에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균형있게 배치돼야 한다고 했다. 박 전 조사관은 “법조인도 필요하지만 참사 국면마다 필요한 전문영역을 파악한 뒤 한 분야에 쏠리지 않도록 전문가를 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유 교수는 “아직 한국에 재난조사 전문가가 많지 않지만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과학적 재난조사 전문가가 조사위에 투입돼야 한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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