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모드 이재명, ‘전당대회 돈봉투’ 대응 수위 딜레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대응 수위를 두고 딜레마에 처했다. 부정부패 혐의에 단호히 대응하자니 ‘검찰의 정치탄압 수사에 맞서 당이 하나로 뭉치자’는 기조가 흔들린다. 반면 돈 봉투 의혹을 두둔하면 ‘부패 비호 정당’ ‘방탄 정당’이라는 오명이 따라온다. 민주당은 조만간 자체적인 진상규명에 나서기로 했지만 지도부의 미온적인 대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은 검찰이 윤관석 의원을 압수수색한 지 나흘째인 16일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한 자체적인 진상조사에 조만간 돌입하기로 했다. 강선우 대변인은 이날 통화에서 “당이 상황을 심각하고 엄중하게 보고 진상규명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다음주쯤 당내 기구를 통한 당 차원의 진실 규명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자체 조사를 논의 중인 배경에 추가 녹취록 보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녹취록에 현역 의원을 포함한 당 인사들이 돈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나고 일부 의원들의 명단까지 돌면서 당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당 지도부도 결정적인 증거가 드러나지 않은 이 대표 수사 때와는 달리 이번엔 ‘정치탄압 수사’라고 엄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돈 봉투 의혹 사건에 대한 침묵 기조를 유지했다. 이 대표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송영길 전 대표가 자진해서 조사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당 의원 10명 이상이 관련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맞물려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 수위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이 대표로서는 부정부패 혐의에 단호히 대처하자니 ‘검찰의 정치 탄압에 맞서 당이 하나로 뭉치자’는 기존 태도와 모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대표는 압수수색 이튿날인 지난 13일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진술을 통해서 객관적 진실을 왜곡 조작하는 검찰의 행태가 일상이기 때문에 저는 잘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표가 돈 봉투 의혹에 휩싸인 인사들을 두둔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비리 혐의를 비호했다는 이미지가 당 전체로 확산할 수 있다. 한 다선 의원은 “검찰이 조만간 돈을 주고받았다는 사람들을 포토라인에 세우고 우리 당을 비리 집단으로 내몰 것”이라며 “여론에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대표와 송 전 대표의 관계도 이 대표의 입지를 좁힌다. 송 전 대표는 2021년 당대표 선거에서 이 대표 측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아 신승한 뒤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심송심’ 논란에 휩싸였다. 송 전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 측의 경선 연기 요구를 일축했고, 경선을 중도 포기한 정세균·김두관 후보의 득표를 무효표 처리하면서 이 대표를 결선투표 없이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대선 패배 후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 이 대표는 송 전 대표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각각 출마해 논란이 됐다. 이 대표가 송 전 대표를 감싼다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당 지도부 대처가 미온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수도권 의원은 “당 지도부가 이런 문제에 빨리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이 대표 본인이 ‘사법 리스크’로 불안정하니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민심에 따라야 하는 지도부가 왜 이번 사태에 며칠째 침묵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수도권 의원은 “국민 눈높이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며 “자체 진상 조사를 해서 문제가 드러난 사람은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안민석 의원은 SNS에 “이번 돈 봉투 사건은 진위에 상관없이 당 혁신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당명 빼고 모조리 다 바꾸겠다는 결기로 혁신에 성공한다면 돈 봉투 의혹은 총선을 앞둔 민주당에 경종을 울리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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