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서 음주에 과속까지···최소 안전망마저 ‘불편 민원’에 사라졌다[현장에서]
245㎞ 중 124㎞ 보행자 방호 울타리 등 미설치
사고 현장 인근에 과속방지턱 있었지만 철거돼
국과수 “인도 돌진 당시 시속 42㎞ 이상 추정”
인근 주민들 “대부분 운전자가 제한속도 초과”
지난 12일 오전 9시쯤 찾은 대전의 한 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는 보행자 방호울타리와 중앙분리대 등 안전망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차량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과속방지턱도 없었다.
일부 운전자는 시속 50㎞ 넘는 속도로 차량을 몰다 과속단속카메라 앞에서 잠시 속도를 줄였다가 카메라 시야에서 벗어난 뒤 다시 속도를 내곤 했다. 만취운전차량에 의해 발생했던 대전의 한 스쿨존 현장에도 방호울타리 등 안전망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도로에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문구만 적혀 있었다.
대전지역의 스쿨존 가운데 절반 가량이 방호울타리 등 안전망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대전시 등에 따르면 대전지역 스쿨존 보도 길이는 총 245㎞로, 이중 방호울타리 등 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구역은 50% 수준인 124㎞다. 대전시와 대전경찰청은 이번 사고 현장을 비롯해 지역 스쿨존을 대상으로 전수점검을 실시해 방호울타리와 과속방지턱 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스쿨존 내 과속방지턱 등 안전망 설치 필요성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왔으나 주변 민원에 부딪혀왔다. 최근 발생한 대전 스쿨존 사고 현장 인근은 과거 과속방지턱이 설치됐으나 일주일 만에 철거됐다.
대전 서구는 이번에 사고가 난 도로 앞쪽에 2020년 7월 과속방지턱 5개를 설치했다. 그해 3월 스쿨존에서 어린이 안전을 위한 시설 및 장비 설치를 핵심으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된 데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방지턱은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당시 ‘과속방지턱이 교통 불편을 초래한다’는 민원이 100여건 접수되면서 담당자 업무가 차질을 빚자 서둘러 철거했던 것이다.
주민들은 이번 스쿨존 참변을 예견된 사고라고 말한다. 인근 목련아파트에 거주하는 오모씨(40대)는 “사고가 난 거리는 평소 출근길로 다니는 구간인데 과속 차량을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학부모 김모씨(30대)도 “차량 속도를 제한할 수 있는 단속카메라나 과속방지턱 등이 없다보니 사고가 언젠가는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터질 게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서구 관계자는 “해당 구간에 단속카메라 등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사고 피의자 A씨(66)를 대상으로 과속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 차량이 인도로 돌진할 당시 속도가 시속 42㎞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최병호 한국교통안전공단 박사는 “A씨가 해당 구간에 진입할 때까지 과속방지턱 등 속도 제어 시설물이 없었다”며 “사고 현장으로 진입했던 도로는 왕복 6차선으로 넓은 편에 속해 스쿨존임에도 평소 운전자들이 속도를 내는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스쿨존 내 교통사고를 막을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 박사는 “해외에서는 스쿨존 도로 폭을 일부러 좁히고, 지그재그 형식으로 만드는 등 물리적으로 차량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교통정온화구역을 지정해 어린이 안전을 보호하고 있다”며 “국내도 단순히 안전시설물에 의존할 게 아니라 보호구역에 한해서는 자동차 접근성을 크게 떨어트리는 등의 방안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방호울타리와 과속방지턱은 교통사고로 인한 충격을 줄일 수 있겠지만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은 아니다”며 “음주운전은 재범률이 매우 높은 범죄다.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등처럼) 음주 시 운전대를 잡게 할 수 없게 하는 시동잠금장치 기술을 상용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스쿨존 음주사고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이번 사고로 숨진 배모양(9) 유족들에 따르면 가해자 엄벌을 요구하는 진정서 작성을 요청한 지 하루 만인 지난 14일 1500건 넘는 진정서가 유족들에게 전달됐다.
강정의 기자 justi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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