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악몽’에 빠진 일본···기시다 공격 동기는 오리무중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살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 15일 유세현장에서 테러 공격을 받으며 일본이 충격에 빠졌다. 기시다 총리는 무사히 몸을 피했지만 유세 현장의 안전과 요인 경호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용의자의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유세현장에 날아든 은색 통···9개월 전 악몽 오버랩
16일 현지 언론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일본 와카야마현 경찰은 효고현 가와니시에 있는 용의자 기무라 류지(24)의 자택을 수색했다. 집 안에서 폭발물이 발견될 가능성에 대비해 경찰은 인근 주민에게는 피신을 지시했다. 이날 새벽부터 오전 10시쯤까지 수색을 마친 경찰이 압수품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상자 약 10개를 운반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기무라의 자택에서는 화약으로 추정되는 분말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를 비롯해 라이터, 공구류, 금속제 파이프와 컴퓨터, 태블릿PC, 스마트폰 등을 압수했다.
기무라는 지난 15일 오전 와카야마시 사이카자키 어시장에서 연설을 준비하고 있던 기시다 총리를 향해 폭발물이 든 은색 통을 던진 혐의(위력업무방해)로 체포됐다. 기시다 총리는 통이 날아오자 몸을 피해 무사했고, 현장에서는 30대 남성 경찰관 1명이 경상을 입었다.
당시 기무라와 기시다 총리의 거리는 약 10m에 불과했으며, 그가 던진 통은 투척 후 50초 정도가 지난 뒤 폭발했다. 사건 현장에서는 은색 통과 유사한 형태의 또 다른 물체도 추가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 물체의 정체와 파괴력 등을 조사하고 있다. 기무라는 배낭에 칼도 숨겨뒀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사제 무기? ‘쇠파이프 폭탄’은 무엇
이 은색 통의 정체를 두고 ‘쇠파이프 폭탄’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현장 영상을 보면 폭발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요미우리신문은 전문가 견해와 당시 상황을 토대로 쇠파이프 폭탄은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고, 스스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한 총기전문가는 “폭발 전에 연기가 나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도 있어,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나서 던지는 형식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과 같은 흰 연기와 폭발음은 검은색 화약을 사용한 폭탄의 특징이며, 시중에 판매되는 급수관 같은 것도 쇠파이프 폭탄으로 사용할 수 있어 사제 폭탄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검은색 화약 또한 양은 적긴 하지만 농약이나 가정용 폭죽 등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전문가 역시 파이프형 폭탄으로 보인다고 추정하며 “폭발음이 비교적 작았기 때문에 화약 사용량은 적고 살상능력도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사망자가 나오는 참사가 되지 않았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용의자에게서 추가로 발견된 물체에 대해 “첫번째 것이 불발했을 때를 위한 예비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까지의 분석을 종합하면, 지난해 7월 8일 아베 전 총리가 피습당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또다시 사제 무기로 총리에 대한 테러가 벌어진 상황이다. “이번 사건이 아베 암살 사건을 모방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전 총리가 암살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왜 기시다 총리가 이렇게 취약한 상태에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이라고 BBC는 지적했다.
일본에서 무기나 화약의 제조 및 소지는 불법이다. 총기 규제 또한 엄격한 편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는 경찰 조사에서 온라인 동영상을 참고해 사제 총기를 제작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일본 경찰은 온라인에서 총기와 폭발물 제조에 관한 정보 삭제 등 대처를 강화했다. 닛케이는 “해외 사이트의 경우 게시자 정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삭제) 요청에 응할지 알 수 없다. 총기와 폭발물 제조를 어떻게 막을지 역시 치안상 과제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용의자는 누구인가···얌전하고 말수 적었다는 평
기무라가 체포 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 범행 동기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사건 당시 정황, 진술 등을 확보해 범행 동기를 추적하고 폭발물 분석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웃들의 진술에 따르면, 기무라의 자족들은 약 15년 전 현재의 거주지로 이사를 왔다. 주민들은 기무라가 “얌전한 오빠로 인사를 잘하는 아이였다”, “아버지에게 혼이 나도 얌전히 있었다”고 NHK에 전했다.
아울러 기무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은 “초등학생 때는 밝고 리더십이 있었는데, 중학생이 되더니 갑자기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요미우리신문에 전했다. 그가 지난해 열린 시의회 행사에서 정치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전언도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그의 동창들은 “조용하고 혼자 책을 읽고 있는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 졸업문집에 적힌 장래희망은 파티셰나 발명가였다”고도 밝혔다.
또 뚫린 총리 유세 현장···G7 요인 경호 체계 도마에
아베 전 총리 피격과 이번 기시다 총리 테러는 둘 다 선거 유세 현장에서 발생했다. 최대한 많은 유권자를 가깝게 만나야 하는 유세 현장 특성 상 경호에 구멍이 뚫리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의 와카야마현 연설 시간 및 장소는 이미 지난 14일 자민당 홈페이지에 공개됐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공유됐다. 아베 전 총리를 저격한 야마가미 데쓰야는 자민당 홈페이지에서 유세 일정을 확인했다고 말한 바 있다. 후쿠다 미쓰루 니혼대학 비상위기관리학과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연설 장소가 잘못 선정됐고, 총리와 청중 사이 거리가 더 멀었어야 한다”고 교도통신에 밝혔다.
유세 현장에 모인 청중의 소지품 검사를 하지 않은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기무라는 투척된 폭발물 외에 이와 생김새가 유사한 또 다른 물체를 소지하고 있었고, 배낭에선 칼까지 나왔다. 교도통신은 “폭발물 이외의 흉기도 준비했던 것으로 볼 때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총리를 습격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대테러 전문가 이타바시 이사오 공공정책조사회 센터장은 “선거 유세 경비는 연설자가 불특정 다수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 경찰이 시민을 너무 멀리 두면 득표 결과에 영향을 주고 선거의 자유를 침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어렵다”고 마이니치신문에 밝혔다. 그는 “정치인과 경찰이 서로 어디까지 책임질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앞으로는 적어도 현직 총리의 선거 유세는 입구에서 소지품을 확인할 수 있는 건물 내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폭발물 투척 직후 기무라를 제압한 인물이 주변에 있던 어부들이라는 점 역시 화제가 됐다. 당시 “이 사람이다”라는 소리와 함께 기무라는 바로 옆에 있던 남성에 즉시 제압됐다. 특히 빨간 상의를 입은 50대 어부가 팔을 기무라의 목에 걸어 넘어뜨리는 장면이 SNS에 퍼지며 그를 향한 칭찬이 잇따라 올라왔다. 기시다 총리는 이 어부들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편 이번 테러는 다음달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둔 일본에 악재로 떠올랐다. 요미우리신문은 “요인 경호에 여전히 빈틈이 있다는 사실이 부각됐다.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호 체계 점검이 급선무가 됐다”고 전했다. 자민당의 한 전직 각료는 이번 사건의 중대성을 강조하며 “일본이 총리를 표적으로 삼기 쉬운 나라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총리는 더이상 가두 연설을 부담없이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에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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