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상 온건” “불법쟁의 징계”…다이소의 숨막히는 복무규정[다이소의 ‘1000원 노동권’(상)]
“성공이란 화려하게 주목받는 며칠이 아니라, 끈기있게 기본을 묵묵히 반복해 온 순간들이 모여 이룬 결과다.”
생활용품점 ‘다이소’를 운영하는 아성다이소(다이소) 창업주 박정부 회장은 지난해 말 펴낸 자서전 <천원을 경영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회장은 이처럼 ‘기본’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이 지금의 ‘다이소 신화’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1997년 작은 1호점에서 시작한 다이소는 현재 전국 1500여개 매장을 가진 ‘국민 1000원숍’으로 성장했고, 지난해에는 고물가의 반사이익을 얻으며 연 매출이 전년 대비 13.1% 오른 3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아성다이소는 정작 노동자들의 노동권에서는 ‘기본’을 중시하지 않는다. 직원 징계 근거를 담은 다이소 취업규칙에는 노동자들의 단체활동을 ‘사전 차단’할 우려가 있는 조항들이 수두룩했다. “사상이 온건한 자를 채용한다”거나 “예전 직장에서 불법 노사분규를 일으킨 자는 해고하겠다”는 조항도 있었다. 임금체납이 자주 발생하고, 물건을 옮기는 매장·물류센터 직원들의 근·골격계 질환 진단이 잇따랐다. 물류센터 소방시설 점검에서는 위반이 다수 발견돼 시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없는 물건이 없는’ 다이소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노동자 인권’의 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다이소 노동자들의 ‘천원 노동권’ 실태를 2회에 걸쳐 살핀다.
2017년, 다이소에서 충격적인 문서 하나가 폭로됐다. 이른바 ‘다이소 절대복종 각서’ 사건이다. 해당 각서는 매장에 입사한 직원들이 근로계약을 맺을 때 따라붙는 이행각서로, “상사의 업무상 지시·명령에 절대 복종하겠다” “전출, 전보, 전환, 대기발령에 절대 복종하겠다” “사내외에서 사원을 선동하거나 회사의 허가 없이 방송, 집회, 시위, 집단행동, 유인물 살포·게시 등에 동조·편승하거나 미수에 그쳤을 때 면직 또는 어떤 조치도 감수하겠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동3권을 비롯한 노동자 권리를 심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언론 보도 후 다이소가 본사 직원들에게 ‘파일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까지 드러났다. 논란이 계속되고 고용노동부까지 나서자 다이소는 사과와 함께 해당 각서를 폐기했다.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2023년에도 다이소 직원들의 취업규칙에는 6년 전 ‘절대복종 각서’처럼 노동자 인권을 침해하는 조항들이 수두룩했다. 단체행동을 빌미로 징계를 내리는 데 이용될 수 있는 조항도 보였다. 다이소가 ‘국민 1000원숍’의 위상에 걸맞게 노동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 위에 취업규칙?…징계로 단체행동 ‘원천차단’
16일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노동부로부터 받은 현행 ‘다이소 취업규칙’을 보면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 조항이 상당수다. 다이소는 물류와 매장, 관리사원(사무직)에 따라 취업규칙을 두고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다이소는 물류·매장·관리사원 모든 직군에서 “회사의 허가 없이 집회, 연설, 방송, 선전 또는 문서배포·게시로 직장질서를 문란하게 한 자”를 징계할 수 있도록 했다. 징계위원회는 대표이사가 임명하는 3인으로 구성된다.
“회사 내에서 정치활동을 한 자”와 “직무와 관련 없는 내용을 게시판이나 메일로 게시하거나 배포한 자”도 징계 대상에 올라 있다. 물류·매장 직원의 경우 “불법 쟁의행위를 주도하거나 이에 참여한 자”까지도 징계 대상이다. 헌법상 집회·결사의 자유를 훼손할 우려가 큰 조항들로, 2017년 ‘이행각서’에서 금지한 행동들이 내부 복무규정에 버젓이 살아 있다.
다이소와 달리 대법원은 직장 내 ‘문서 게시·배포’ 허용범위를 넓게 잡고 있다. 대법원은 2012년 1월 “직원이 문서를 배포한 목적이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복지증진 및 기타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고 “문서 내용이 전체적으로 보아 진실한 것”이라면 정당한 활동범위에 속한다고 판시했다.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 조항도 있었다. 물류 직군 취업규칙은 “사상이 온건하고 신분이 확실한 자”를 고용해야 한다고 정한다. 어떤 사상이 ‘온건한 사상’인지는 규정돼 있지 않다. 또 “타사에 취업 중 불법 노사 분규를 주동해 해고된 자”(물류·매장) “전 근무지에서 기업활동 방해 등 비위사실이 있거나 징계면직된 자”(관리사원)는 채용하지 않거나 채용 후에도 해고하도록 규정했다.
물류·매장 직군에서는 “회사에 위해한 행위나 언동을 발견 시 즉각 소속장에게 보고해야 하며, 만약 묵인 또는 지체 보고 시 당사자와 동일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다이소 관계자는 “사업장 등에서 직원이나 고객 등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행위를 대비한 조항”이라고 했다. 하지만 ‘회사에 위해한 행위’가 안전 관련 문제를 의미한다고 규정에 명시돼 있지 않다.
이 같은 조항들은 사측이 특정 직원을 징계할 때 그 근거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위 조항들은 노조 결성·활동 등 노동3권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다이소의 경영방침 자체가 노조활동 등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창업주인 박 회장은 자서전 <천원을 경영하라>에서 과거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 노조가 생기고 파업까지 발생하자 자신이 ‘무능한 간부’로 몰리는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올해 초 물류센터 직원을 중심으로 처음 결성된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다이소지회)는 아직 회사와 한 번도 마주앉지 못했다. 이재철 다이소지회 지회장은 “예전부터 많은 직원들이 노조 결성을 시도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약 종료를 당했다”고 했다.
다이소 관계자는 “당사는 노동조합법 등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노조활동을 이유로 어떤 불이익을 준 적이 없다”며 “(새로 출범한) 다이소지회로부터 3월13일 교섭 관련 공문이 와서 회신을 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 결성 시도를 이유로 계약 종료하지 않았고, 당사는 노동3권과 인권·사상의 자유를 헌법에 따라 존중하고 보장한다”고 했다.
류 의원실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취업규칙이 헌법 위에 군림하며 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를 빼앗는 것은 노동자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를 감시하고 처벌하는 도구로 언제든지 악용될 수 있어 헌법에 보장된 양심과 의사 표현, 정치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다.
다이소 측은 취업규칙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다이소 관계자는 “우리 취업규칙이 노동3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동안 노동3권과 인권상 문제는 발생한 적이 없다”며 “법과 원칙에 입각한 취업규칙을 잘 적용하고 있으며, 향후 구체적인 침해사례가 발생해 개정이 필요하다면 변경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사상이 온건한 자’를 채용한다는 조항을 두고는 “정치적 이념이 아닌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란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타사에서 노사 분규를 주동해 해고된 자는 근무할 수 없다는 조항을 두고는 “선언적 의미의 조항이라 실효성이 없다”면서도 “이전 직장의 근무 이력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적극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매년 임금체불 반복…“노동권도 천원짜리면 안돼”
노동시간 등 기초노동질서에 반하는 조항들도 다이소에서는 아직 살아있다. 예를 들어 모든 직군 취업규칙에서 “시업, 종업, 휴게시간은 회사의 업무사정 및 계절 등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고 적혀 있는데, 이는 노동자 동의가 필요한 조항이다. 다이소는 2주 단위 탄력적근로시간제를 실시하면서도 정확한 출근일과 시간까지 명시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2019년 10월18일 행정해석에서 “2주 이내의 탄력적근로시간제를 도입한다는 선언적 규정만을 명시하고 사용자가 필요한 시기에 임의로 제도를 도입한 경우 근로기준법상 적법하게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대상 노동자의 범위, 유효기간 등을 취업규칙에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해석했다.
특히 물류·매장 직군 취업규칙의 “시업시간에 근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는 조항은 이른바 ‘공짜 추가노동’에 악용될 수 있다. 법적으로 업무를 준비하는 시간도 정식 노동시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임금체불이 된다. 다이소 관계자는 “출근시간에 맞춰 근무해달라는 것이지 반드시 일찍 나와 근무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다이소에서는 거의 매년 임금체불이 발생하고 있다. 류 의원실이 노동부에서 받은 ‘2007년 이후 아성다이소 노동관계법 위반 현황’을 보면,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총 28건의 노동관계법 위반 진정이 접수됐다. 이 중 24건이 임금·퇴직금 체불 사건으로, 인정된 금액만 약 3억5000만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근로감독에서도 다양한 노동관계법 위반이 적발됐다. 노동부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아성다이소에 총 6번의 근로감독을 벌였다. 이 중 2번의 감독에서 ‘연차수당 미지급(근로기준법 제36조, 제60조5항)’ ‘휴일근로수당 미지급(근로기준법 제56조)’ ‘연장근로수당 과소 지급(근로기준법 제43조)’ 등이 드러나 시정 조치를 받았다.
노동시간 위반도 적발됐다. 2017년 6월1일과 2019년 10월1일에는 연장노동 한도 위반이 적발됐고, 2019년 감독에서는 임신한 노동자에게 시간 외 노동을 시킨 일이 드러났다. 2018년 6월19일에는 노사협의회 의원을 부적정하게 선출·구성해 시정조치를 받았다.
다이소 관계자는 “노동관계법 위반이 발생한 것은 매우 유감이며 회사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다만 임금체납은 정해진 월급 자체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계산상·해석상의 지급 여부에 관한 것으로, 대부분 근태 신고 누락 등 계산상 착오이며 시정지시에 적극적으로 임해 모두 청산했다”고 했다.
문제가 반복될수록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처럼 단체행동을 옥죌 소지가 있는 취업규칙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류 의원은 “다이소가 1000원짜리 물건을 판다고 노동권도 1000원짜리 취급하면 안 된다”며 “반헌법적 취업규칙 내용이 버젓이 기재돼 있고 상습적인 임금체불이 발생하고 있다. 노동부가 취업규칙 내용에 대한 법령 위반 여부를 제대로 심사하고, 근로감독에 적극적으로 나서 노동관계법 위법사항에 대해 엄벌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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