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기업 아닌 지역에 적용할 제2 광주형 일자리 만들 것”

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2023. 4. 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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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주형 일자리’ 설계자 박병규 광주 광산구청장
“광주형 일자리 핵심은 사회적 대화라는 사실 잊으면 안 돼”

(시사저널=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박병규(59)라는 이름 석자는 호남 지역에선 꽤 유명 인사다. '광주형 일자리'를 세상에 처음 내놓은 인물이다. 이런 이름값을 바탕으로 그는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광주 광산구청장에 당선됐다. 박 구청장은 노동운동가·사회혁신가·행정가 출신으로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설계자이자 산파역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기아자동차 노조지부장 출신인 그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6기 광주시장에 출마한 윤장현 후보에게 광주형 일자리를 제안하며 윤 후보 당선을 도왔다. 윤 후보가 당선되면서 광주시 사회통합추진단장·일자리정책특보·경제부시장을 차례로 맡아 광주형 일자리를 챙겼다. 2018년 지방선거 후 자리에서 물러났으나 이듬해 1월 이용섭 광주시장 요청으로 사회연대일자리특보로 돌아와 광주노사민정협의회 최종 협약안 의결과 광주시·현대차 투자협약 체결을 적극 지원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이력이다. 그런 그가 돌연 지방정치에 뛰어들더니 기초단체장 자리를 꿰찼다. "특정 기업 아닌 지역에 적용할 제2 광주형 일자리(시즌2)를 만들겠다"는 게 당시 출마의 변이었다. 제2 광주형 일자리는 온전한 '박병규표 광주형 일자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최근 광산구청장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정책 참모에서 기초단체장으로 변신해 진두지휘하는 광주형 일자리 시즌2는 어떤 모습일지 들어봤다. 인터뷰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사회임금'과 '참여형 일자리' '사회적 합의' 등이었다. 특히 박 구청장은 "광주형 일자리 핵심은 사회적 대화라는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광주시 제공

"양극화 해결하려면 사회임금 도입해야"

박 구청장은 자신이 기획한 '광주형 일자리'가 지역경제 견인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자부한다. 최근 100만 평 규모의 미래차 국가산업단지 유치가 곧 광주형 일자리라는 '꿀단지' 덕분이란다. 어쩌면 돌다리 중간에 돌기둥 하나가 빠지듯이 광주글로벌모터스 설립이 안 됐으면 미래차산단 조성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논리다. 광주시가 3월 중순 새로 국가산단 유치에 성공한 것은 2009년 9월 빛그린국가산단 지정 이후 14년 만이다.  

박 구청장은 일각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일자리 창출정책'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 단호히 손을 내저었다. 그는 "광주형 일자리는 1개 기업을 만들자고 시작한 게 아니고 우리 사회 일자리의 공정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시작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시장임금이 판치는 노동현장에서 일자리 질 개선과 사회임금을 결합해 불평등과 불공정을 걷어내는 '일터 혁신 일자리 창출정책'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광주형 일자리 시즌2는 시즌1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에 대해 박 구청장은 "동일한 가치지만 광주형 일자리 시즌1이 광주글로벌모터스라는 하나의 기업을 출범시켰다면 시즌2는 지역의 많은 기업에 확산해 보자는 것에서 차별성이 있다"고 답했다. 사회임금 도입은 그의 지론이다. 결국 일자리 양극화나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임금으로 뒷받침하는 게 필요하며, 어떤 기준을 정해 부합하면 사회임금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직하면 퇴직 때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많은 복지를 누리다 퇴직한다. 이런 데서부터 사회적 불만이 싹트기 시작한다. 또 하나는 시장임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자기 노후를 자신이 책임져야 해 극한적인 노사갈등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난 30여 년 동안 현대차나 기아차 노조가 '1'도 변하지 않은 것도 이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이런 모순을 사회임금을 통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19년 12월26일 광주광역시 빛그린산단에서 이용섭 광주시장, 박병규 특보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형 일자리 (주)광주글로벌모터스 기공식이 열렸다ⓒ광주시 제공

일터 혁신·사회임금 결합해 일자리 질 전환

박병규 구청장은 사회임금이 일터 혁신과 함께 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터 혁신을 사회임금과 결합해 일자리 질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 일자리의 질 개선도 중요하다. 구글의 경우 작업지시가 없다. 아무런 시도를 안 해도 실패해도 쫓겨나지 않는다. 5%도 안 되는 성공률로 먹고산다. 인간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게 세계적인 기업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일터 혁신이 왜 필요한지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 시즌2의 전망에 대한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기초단체인 자치구 수준에서 추진하기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 구청장은 "변방 자치구에서 한국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는데, 주변이 핵심(중심)을 흔든 전례는 많다. 코닥필름이나 노키아 핸드폰 몰락이 대표적이다"며 비관적인 시각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어지는 그의 반론이다. 

"물론 자치구에서 많은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치구에서 가능하겠느냐 여부의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어디선가 작은 돌파구를 만들어야 그걸 가지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지 일자리 정책에 무슨 자치구가 있고 중앙정부가 따로 있겠는가.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할 때도 중앙정부에서나 가능하지, 지방정부에선 불가능한 정책이라는 비판적인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지방정부에서 불가능하다고 한 정책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중앙정부의 핵심적인 일자리 정책으로 딱 자리 잡았다. 문재인 정부의 상생 일자리 정책이 그것이다." 그는 아직 뚜렷한 일자리 정책이 안 보이는 윤석열 정부도 우여곡절을 겪다가 또다시 이를 추켜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그는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사회적 대화가 필요 없다면서 기업만 밀어주는 식으로 해선 일자리가 만들어지지도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광주형 일자리 추진 과정에서도, 처음에는 '그게 뭐냐' '빨리 달라'고 재촉했다. 그런데 어떻게 주나. 같이 만들어 보자고 하는 건데. 그래서 지역사회 혁신운동이라고 했다. 같이 운동하자는 것이다. 그 모습이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나오지 않는다. 광주글로벌모터스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첫 작품일 뿐이다. 완성품으로 보면 안 된다. 계속 진화하는 것이다." 박 구청장의 마무리 말이다. 

"한국 사회는 사회적 합의 과정이 없으니까 선거 때만 되면 계속 하나 마나 한 얘기만 늘어놓게 된다. 사회적 합의 과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지난하다. 그게 1년이 걸릴 수도, 2년이 걸릴 수도 있다. 어쩌면 제 임기 안에 다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제 주변에선 재선을 걱정하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아닐 것 같으면 (구청장) 안 하면 되는 것이다. 구청장을 재선, 3선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사회적 대화가 되는 사회, 이를테면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게 제 임기 내 주어진 과제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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