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갑판에 나간 것이 저를 살렸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청소년·가족 등 추모객 발길 이어져
'아이들도 알았으면', '선배들의 이야기'..기억 전승의 장 된 현장
세월호 사건의 생존자입니다.
우연히 갑판에 나간 것이 저를 살렸습니다.
친구, 선생님은 배에 갇혀 있지만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배 안의 사람들은 물 속에 잠겨가는데
밖에서 지켜보기만 합니다.
숨이 막히고 심장이 떨려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세월호 희생자 선배를 애도하며 쓴 제주 청소년의 창작 시 '잊지 않기 위한 목소리' 中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9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리가 세월호의 목적지 제주도에서도 마련됐습니다.
참사 9주기 당일인 16일,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세월호 제주기억관에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가족 단위 추모객을 비롯해 종교인, 단체 순례객 등의 방문이 잇따랐습니다.
추모객들은 희생자들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는 분향소 천막에서 묵념을 했고, 이어 저마다 노란 메모지에 추모 메시지를 적어 붙였습니다.
추모일이 아니어도 항시 운영 중인 세월호 제주기억관도 북적였습니다.
제주기억관 1층에서는 기억관 지기가 방문객들에게 세월호 참사에 관한 설명을 했습니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생각하며 펴낸 책과 희생자 가운데 그달의 생일자를 소개하는 카드 등으로 꾸며진 기억관 공간에 관한 소개도 있었습니다.
참사 당일인 오늘(16일)은 당시 희생된 2학년 8반 김대현 학생과 2학년 3반 김초원 선생님의 생일이었습니다.
기억관 2층에는 '청소년, 세월호를 기록하다-제2회 세월호 공모전' 출품작들이 전시됐습니다.
청소년들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공감하고 더욱 안전한 사회를 바라는 마음을 그림과 시 등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입구쪽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울러 야외에서는 먹거리 부스와 키링 만들기 등 체험 부스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공식 추모 행사를 위한 무대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올해 행사는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기억 전승의 장이었습니다.
추모 행사를 준비한 중심 역할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 청소년 모임'(세제모) 청소년들이 맡았습니다.
행사장을 찾은 추모객 가운데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아내와 어린 자녀 넷과 함께 행사장을 찾은 황선오씨(43)는 세월호에 관한 관심이 많은 듯 기억관 지기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이들은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추모 행사장을 살폈습니다.
황선오씨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9주기가 되는 날이라서 오고 가며 봤었던 곳(제주기억관)인데, 특별히 이곳에 와서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가족들하고 함께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황씨는 "몇년 전엔 팽목항에도 갔었다. 마음으론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또 오늘 이곳에 오니까 그때 참사가 더 떠오르고 잊지 말고 기억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김미영씨(41)도 가족들과 추모의 발걸음을 했습니다.
김미영씨는 "아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했으면 해서 함께 왔다"며, "'배가 가라앉아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구해주려는 시도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막혔고 그래서 많이 죽었다. 저 사람들이 살아남았으면 너한테 대학교 선배님, 선생님이 됐을 사람들이다'라는 식으로 설명했다. 아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주4·3 당시 희생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폭낭의 아이들' 제작팀도 도보순례를 하며 세월호 제주기억관을 찾았습니다.
제작팀 김선화씨(48)는 "4·3 때 성인들의 희생이 주로 알려졌지만 어린이들의 희생도 굉장히 컸다. 4·16도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오면서 희생된 것인데, 희생된 시기나 이념 같은 걸 떠나서 다 같은 어린이들이 희생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선화씨는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이 애도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저희는 세월호 친구들을 애도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걸어왔다"며, "4·3평화기념관에서 세월호기념관 그리고 4·3때 '북촌 대학살'에서 희생된 아이들을 묻은 북촌까지 이어지는 일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보물섬학교 김원 학생(17)은 "행사 준비를 위해 지난달에 유가족 간담회를 했는데, 그때 유가족 어머니들이 오셔서 힘내라고, 열심히 해라라고 해주셔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라고 말했습니다.
JIBS 제주방송 신동원 (dongwon@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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