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초 뒤 폭발해 기시다 총리 무사…자체 제작 ‘쇠파이프 폭탄’ 가능성
야외 선거 유세서 반복되는 테러
지난해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에 이어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야외 선거 유세 과정에서 테러의 표적이 돼 일본 열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용의자가 던진 폭탄이 기시다 총리가 서 있던 곳에서 1m가량 근처에 떨어졌고, 바로 폭발하지는 않아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 기무라 유지(24)는 범행동기 등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 중이다.
16일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을 종합하면, 기시다 총리가 15일 오전 11시30분께 일본 간사이지방 남부에 위치한 와카야마현 와카야마시 사이카자키 항구 근처에서 중의원 보궐선거 지원을 위해 거리연설을 시작하기 전 은색 통 모양의 폭발물이 날아왔다. 기시다 총리가 서 있던 곳에서 약 1m 거리에 폭탄이 떨어졌다. 이를 발견한 경호원은 총리를 긴급하게 대피시켜 다치지 않았다.
용의자가 두 번째 폭탄을 가방에서 꺼내려는 순간, 현장에 있던 청중과 경찰이 용의자를 제압했다. 이때 ‘펑~’ 하고 첫 번째 던진 폭탄이 터지는 폭발음이 났고, 연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이 아수라장이 됐다. 폭탄이 바로 터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의 즉각적인 대피가 가능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폭발물이 낙하한 장소는 총리의 등 뒤였다. 폭발이 일어난 것은 (폭탄을) 투척하고 약 50초 뒤였다”고 보도했다. 이번 폭발로 근처에 있던 경찰관 1명이 왼팔을 두세 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
용의자가 기시다 총리에게 10m 거리까지 접근해 범행을 저지른 만큼, 지난해 아베 전 총리 사건에 이어 부실한 경호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청중이 200여명 모인 가운데 야외 유세 성격상 소지품 검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경찰에선 “이번 경호는 실패”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용의자가 사용한 폭탄은 자체 제작한 ‘쇠파이프 폭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엔에이치케이> 방송은 “은색 통 끝 부근에 도화선 같은 것이 나와 있다. 경찰 당국은 ‘쇠파이프 폭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자세한 구조 등을 분석하고 있다”고 전했다. 쇠파이프 폭탄은 통 속에 화약을 넣고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구조다. 용의자가 라이터로 폭탄에 불을 붙이는 듯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있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발견된 2점 이외에 가방에도 폭탄 여러 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수사 관계자를 인용해 “배낭 안에 폭발물로 추정되는 통들이 여러 개 발견됐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발견된 폭탄 1점은 폭발했고, 나머지 1점은 경찰이 수거한 상태다.
범행동기와 배경은 수사 중이다. 용의자는 ‘변호사가 오면 이야기하겠다’며 전날부터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16일 새벽부터 효고현 가와니시에 있는 용의자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엔에이치케이> 방송은 “화약으로 보이는 것과 컴퓨터 등을 압수했다”고 전했다. 가와니시는 오사카 북부에 있는 도시로 폭발 사건이 발생한 와카야마시 사이카자키 항구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주변 지인들은 용의자에 대해 “조용한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초·중학교 동창인 한 여성은 <요미우리신문>에 “초등학생 때는 밝고 리더십이 있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가와니시 시의회가 개최한 시정 보고회에 참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지역의 자민당 관계자는 당시 행사에 70여명이 참석했고, 용의자가 의정 활동에 대해 열심히 질문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대 젊은이가 (시정 보고회에) 참석하는 것이 드물다. 정치에 관심이 큰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폭력에 굴하지 말고 오는 23일 투표가 실시되는 중·참의원 5개 보궐선거 등을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각 당의 활동이 방해받지 않도록 경찰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선거에서 폭력적인 행위가 자행된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기시다 총리는 전날 낮 12시40분부터 와카야마역 앞 보궐선거 지원 연설 등 예정대로 일정을 진행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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