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9년 전 그대로 '4·16 기억 교실'…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

최지은 기자 2023. 4. 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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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시 ‘단원고 4·16 기억교실' 모습.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의 교실과 교무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공간이다. 책상과 칠판, 교탁, 사물함은 물론 선풍기와 달력, 시계까지 보존돼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한 명 한 명 기억하고 싶어서 하나씩 유심히 살펴보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14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있는 '단원고 4·16 기억 교실(기억 교실)'에서 만난 김현진씨(37)가 입을 뗐다. 인천에서 이른 아침 안산을 찾은 그는 기자에게 "사고가 터졌을 때 일하고 있었는데 전원 구조라는 뉴스 보도를 본 게 아직 기억난다"고 말했다.

2014년 4월16일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객 476명 가운데 304명이 사망한 지 9년이 지났다. 사망자 중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포함됐다.

기억 교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의 교실과 교무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공간이다. 책상과 칠판, 교탁, 사물함은 물론 선풍기와 달력, 시계까지 보존돼 있다.

경기 안산시 ‘단원고 4·16 기억교실' 모습.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의 교실과 교무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공간이다. 책상과 칠판, 교탁, 사물함은 물론 선풍기와 달력, 시계까지 보존돼 있다. 경찰이 꿈이었던 한 학생의 책상 위에 놓인 경찰 근무복./사진=최지은 기자

학생들이 앉던 책상마다 사진과 조화, 편지, 명찰, 방명록 등이 놓여있었다. 교실 뒤 게시판에는 '2015년 수도권 4년제 대학 안내지도'가 붙어 있고 달력은 2014년 4월에 멈춰 있었다. 칠판에는 '미치도록 보고 싶다', '평생 잊지 않을게' 같은 문구가 눈에 띄었다. 교탁 위에는 전국 각지와 영국, 싱가폴 등 해외에서 온 격려 편지가 올려져 있었다.

김은숙씨(45)는 이날 비누 꽃 꽃다발 35개를 가져와 교실을 돌아다니며 책상 위에 하나씩 올려놨다. 김씨는 "인천에 있는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는 자주 방문했지만 기억 교실은 오랜만에 온다"며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학생은 없지만 이맘때는 꼭 들린다. 반마다 허전해 보이는 책상 위에 꽃다발을 놨다"고 말했다.

2학년 2반 교실에서는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나왔다. 2014년 4월13일 학생들이 촬영한 영상에는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예측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원주택에 살고 싶다거나 하와이에서 살고 싶다, 멋진 음악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휴직 중인 교사 이봉수씨(51)는 참사가 일어난 해 서울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다. 기억 교실을 찬찬히 둘러보다 복도로 나온 이씨는 창밖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이씨는 "당시 같은 나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서 그런지 참사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김모씨(27)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기억 교실을 찾았다. 김씨는 단원고 희생자의 친구였다. 그는 한 희생자의 자리에서 한동안 머물다 책상 위에 놓인 명패에 손을 올린 채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가까이 살고 있지만 선뜻 찾아올 수 없어 오늘 처음 왔다"며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감사한 것 같다"고 밝혔다.

경기 안산시 ‘단원고 4·16 기억교실' 모습.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의 교실과 교무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공간이다. 책상과 칠판, 교탁, 사물함은 물론 선풍기와 달력, 시계까지 보존돼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어린 학생들도 기억 교실을 찾았다.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5·6학년 학생들을 인솔해 온 윤모 교사는 "아이들이 서너살일 때 참사가 발생했다. 참사 당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이들이 꽤 엄숙한 자세로 기억 교실을 둘러봤다"며 "9주기를 앞둔 이 주에 오는 게 의미 있을 것 같아 견학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김동해군(13)은 "그동안 영상으로만 봤는데 형·누나들이 실제로 썼던 물건들을 보니 와닿는 게 달랐던 것 같다"며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기억 교실에선 참사로 자녀를 잃은 유가족들이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무실 한편에서 학생들에게 설명을 이어가던 한 유가족은 "여러분 모두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며 "이곳을 둘러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설을 듣던 경기 신나는 학교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터뜨렸다. 최윤서양(16)은 "참사가 일어난 날 늦잠을 자고 뉴스를 보는 아빠에게 갔는데 배가 기울어진 모습이 화면에 나오던 게 기억난다"며 "여기 온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해설사로 활동하는 고(故) 허재강군 어머니는 "내 아이를 만나러 온다는 생각으로 아침마다 와서 아이들 책상 위 물품을 정리하고 방문객들을 맞는다"며 "사실 아직 힘들긴 하다. 아까는 생존 학생들이 왔는데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자주 오라고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故) 임경빈군 어머니 전인숙씨는 "생존 학생들이나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분들도 종종 들러 이야기를 나누다 간다"며 "세월호 유가족뿐 아니라 시민들의 도움으로 기억 교실이라는 공간이 생길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단원고 4·16 기억교실' 모습.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하던 10개의 교실과 교무실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공간이다. 책상과 칠판, 교탁, 사물함은 물론 선풍기와 달력, 시계까지 보존돼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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