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도 않는데 수신료 강제 징수” vs “공영방송 기능 위축 우려” [이슈 속으로]

이복진 2023. 4. 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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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오른 KBS 수신료
29년째 月2500원 전기료에 통합 징수
英·獨·日 등도 징수… 韓 요금 훨씬 낮아
정권 따라 반대진영 납부 거부운동 반복
OTT·IPTV 이용 늘며 이중부담 논란도
대통령실 “징수방식 변경 권고안 마련”
국민제안 토론서 97% ‘분리 징수’ 찬성
KBS “대통령실 여론수렴 제대로 안 해
변경 땐 납부 회피로 재정 압박 가중” 반발
전문가 “KBS 역할 재정립이 우선”
“징수방식 먼저 변경, 본말전도된 접근
매체환경 변화에 맞춰 기능 재논의를”
“43년째 동결된 요금 인상 선행” 의견도
29년간 전기료에 통합돼 징수됐던 KBS 수신료 징수 방식이 변경될 기로에 놓였다. 대통령실이 지난달 9일부터 한 달간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토론에 부친 결과 현행 통합 징수 제도를 유지하는 입장(비추천·2022명·3.5%)보다 분리 징수를 지지하는 입장(추천)이 5만6157명(96.5%)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이 결과를 자문기구인 국민제안심사위원회에 보고하고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부처에 보낼 권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게시판에 적힌 다양한 댓글의 내용도 분석 중”이라며 “수신료 징수 방식 개선뿐만 아니라 수신료 폐지, 공영방송 폐지 등 의견도 많아 이를 분석해 향후 보고서에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신료는 분리 징수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하지만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는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온라인 조사 결과를 끌어와 수신료 분리 징수를 꾀하는 것은 ‘방송장악 시도’라며 반발해 파장이 예고된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공영방송에 대해 다시 정의를 내린 뒤, 바뀐 역할과 규모에 맞춰 수신료 징수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94년부터 한전 위탁 징수

수신료는 1963년 1월 ‘국영 텔레비전 방송사업 운영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제정·시행되면서 ‘TV 시청료’란 이름으로 징수됐다. 공영방송이 영리를 추구하거나 외부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공공 이익에 충실할 수 있도록 물적 기반을 마련해 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초기에는 징수원이 집집마다 돌며 수신료를 거뒀다. 하지만 이 또한 인건비 등 수신료 징수에 필요한 비용이 막대해 1994년 한국전력에 위탁해 전기료와 통합해 징수하는 방식으로 개편됐으며,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이렇게 걷힌 수신료는 위탁수수료 명목으로 한전에 지급되는 6%를 제외한 94% 중 91%를 KBS, 나머지 3%를 EBS가 가져간다. KBS 수신료는 지난해 기준 6935억원. 정부보조금 131억원과 광고수입 등을 합친 KBS 전체 수입(1조5305억원)의 45.3% 수준이다.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독일, 영국 등에서 운용하고 있다.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 터키, 이집트,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알바니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요르단 등은 우리처럼 전력회사를 통해 수신료를 징수하고 있다. 월 2500원, 연 3만원인 한국의 수신료는 연간 220유로(31만5605원)인 독일, 159파운드(26만1157원)인 영국, 1만4700엔(14만5502원)인 일본 등에 비해 10∼20% 수준이다.
자료=KBS 제공
◆정권 바뀌면 거론되는 수신료 논란

상대적으로 적은 수신료에도 징수에 대한 찬반 의견은 1980년대 이후 KBS 공정성 문제와 함께 끊임없이 제기됐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민주화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시청료 거부운동이 벌어졌다. 1984년 전라북도 가톨릭농민회에서 ‘우리는 왜곡·편파 방송인 KBS를 보지 않기 때문에 시청료도 내지 않겠다’는 운동을 시작, 전국적으로 퍼졌다. 직선제 개헌운동이 번져 가던 1986년 2월에는 ‘KBS-TV 시청료 거부 기독교범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공영방송쟁취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등 우파시민운동세력에서는 KBS를 ‘매국방송’이라고 규정하고 수신료 거부 방법을 안내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에는 반대로 좌파시민단체에서 수신료 거부운동을 부추겼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KBS시청료납부거부국민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이 다시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을 시작했다. 야당은 ‘KBS 수신료 거부 챌린지’ 소위 ‘K-수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을 통해 콘텐츠를 시청하지만 수신료를 여전히 징수해 수신료 납부 거부 움직임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분리징수 측 “수신료 선택권 필요”

대통령실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IPTV, OTT 등 유료 방송 플랫폼을 통해 TV를 보는 국민은 결과적으로 요금부담을 이중으로 지는 측면이 있고 △전 국민이 강제로 낼 수밖에 없는 현행 수신료 징수체계는 사실상 세금과 다를 바 없으며 △공영방송의 공정성·중립성 가치가 퇴색하는 경우에는 수신료 납부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되돌려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리 징수 근거로 제시했다.

이런 근거로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은 2021년 1월 수신료와 전기료를 분리 징수하는 내용의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을 발의했으며,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허 의원은 “KBS의 정치편향성 논란은 정권을 불문하고 지속해서 반복되고 있으며, KBS의 공영성을 실추시키고 대국민 신뢰도 저하, 수신료 납부 거부 여론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며 “다른 징수금과 분리해 국민의 공영방송 시청에 대한 선택권을 확보하고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며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통합징수 측 “공영방송 존폐 문제”

반면 당사자인 KBS는 기자간담회, 설명자료, 공식입장 등을 통해 수신료 통합 징수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있다. KBS는 지난 10일 공식입장을 통해 국민 토론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KBS는 대통령실이 △수신료가 방송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입장 △분리 징수를 하더라도 수신료 납부 의무가 유지된다는 점 △프랑스의 경우 수신료가 폐지되는 대신 전체 수신료와 동일한 37억유로(5조3000억원)를 정부가 조달하기로 한 점 등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KBS는 “이로 인해 국민제안 참여자들에게 오해와 혼돈을 줌으로써 정확한 여론 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며 “또 국민제안 추천 시스템에서 동일인의 중복 투표가 가능하다는 의문이 제기됐고, 정당 차원의 투표 독려가 이뤄지는 등 여론 수렴 절차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KBS 최선욱 전략기획실장, 오성일 수신료국장 등은 13일 언론을 상대로도 직접 설명에 나섰다. 이들은 “한전 위탁제도를 통해서 수신료 징수의 공평성,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외국에 비해 매우 낮은 금액의 수신료로도 공영방송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공공연한 수신료 납부 회피로 이어질 수 있는 분리 징수 논의는 공영방송에 대한 심각한 재정적 압박이 되고, 나아가 공영방송 제도 자체의 존폐와도 직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1993년 2022억원이던 수신료 수입은 위탁 징수 다음 해인 1995년 3685억원으로 급증했다. 수상기 등록률은 80%에서 96%로, 수신료 납부율은 53%에서 96%로 뛰었고, 35.5%에 달하던 징수비용률은 10%대로 낮아졌다.
사진=뉴스1
◆전문가들 “KBS 역할·구조부터 논의해야”

반면 전문가들은 수신료 징수 방식보다 KBS의 기능과 역할, 구조 등에 대해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수신료도 정상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렬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변화하는 매체환경에서 KBS의 역할, 기능, 구조 등을 바꾸지 않고 수신료만 폐지한다는 것은 공영방송을 말살시키려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공영방송의 기능은 교육과 교양인데, 이러한 것들은 포털·유튜브·OTT 등에서 하고 있다”며 “그렇다면 공영방송의 기능과 역할을 다시 정립해야 하는데, 그러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한 뒤 규모와 구조를 논의해야 한다”며 “그 이후에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수신료를 분리 또는 통합 징수할 것인지를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것들이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신료 징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이슈(이야깃거리)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며 “문제의 말단에 있는 것을 먼저 논의하는 ‘본말이 전도된 정책적 접근’ 방식으로, 문제의 종착점에 있는 것에서 해결점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40여년째 동결 중인 수신료를 인상해서 정상화한다는 전제하에 분리 징수를 고려할 수 있다”며 “수신료를 인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분리 징수를 하게 되면 KBS 재정은 더욱 열악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KBS는 광고 등의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결과 공영방송에서 상업방송에 가까워질 수 있다”며 “또한 (KBS가 광고를 가져가면서) 다른 매체에 갈 수 있는 광고 물량도 줄어들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수신료 2500원은 1981년 이후 43년째 동결된 금액이다. KBS는 2007년, 2010년, 2013년, 2021년 이미 네 차례 수신료 인상을 추진했다가 번번이 실패한 바 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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