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의 5%" 독일, 마지막 원전 껐다…'탈원전' 성공 선례 될까

윤세미 기자 2023. 4. 1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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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15일(현지시간) 마지막 원전 3기를 폐쇄하면서 60년 넘게 지속된 원자력 시대의 종식을 알렸다. 다만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탈탄소 움직임이 강화하는 상황에서 탈원전이 옳은 선택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9일(현지시간) 독일 남부 네카베스트하임의 원전이 가동 중인 모습. 이 원전은 15일 자정을 기점으로 다른 원전 2기와 함께 가동이 완전이 중단됐다./AFPBBNews=뉴스1
마지막 원전 3기 가동 종료…탈원전 시대 개막
CNN과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독일은 16일로 넘어가는 자정을 기점으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네카베스트하임, 이르2, 엠스란드 등 원전 3기의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1961년 처음 원전 가동을 시작한 지 62년 만이다.

반핵 활동가들은 이날 원전 폐쇄를 기념하기 위해 독일 주요 도시의 거리로 나섰다. 반핵 운동에 앞장서 온 그린피스는 베를린 명소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축하 행사를 열고 원자력을 상징하는 공룡 모형을 처단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행사를 주최한 그린피스의 위르겐 트리틴은 "우리는 위험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고, 비싼 기술에 마침내 종식을 고했다"고 말했다.

원자력은 독일에서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독일은 1961년 칼 원전을 시작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빠르게 확장하면서 이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여겨졌다. 하지만 독일 여론은 원자력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1970년대 핵무기 연관성을 우려해 강력한 반핵 운동이 시작됐고, 이 운동은 현재 독일 집권 연립정부를 구성한 정당 중 하나인 녹색당의 뿌리가 됐다.

1979년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반핵 운동을 더 자극했다. 원자력 사용 중단 요구가 거세지면서 1989년부터는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 중단됐다.

본격적인 탈원전 움직임이 시작된 건 2002년이다. 1998년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이끄는 연립정부가 20년 동안 원자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데 합의했고, 2002년 법제화를 통해 2022년 최종 폐쇄 목표를 세웠다. 이후 '친핵' 물리학자였던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집권으로 기류가 변화하는 듯했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독일의 탈원전 계획은 확고해졌다. 메르켈 당시 총리는 후쿠시마 사고 후 사흘 만에 노후 원전을 즉시 폐쇄하고 원전의 단계적 폐지를 가속하겠다고 약속했다.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1990년대 전체 전력의 3분의 1을 원자력이 담당했지만 지난해에는 비중이 6%로 떨어졌다.

다만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원전 폐쇄 계획의 변수가 됐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모자란 에너지 조달을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일각선 원전 폐쇄 계획을 뒤집자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독일 정부는 4개월여 가동 연장 후 폐쇄를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15일(현지시간) 독일 서부 본에서 열린 녹색당 전당대회가 열린 세계회의센터 앞에 "원자력, 고맙지 않다"라고 적힌 깃발이 걸려있다./AFPBBNews=뉴스1
에너지 위기에 바뀐 여론…탄소중립 목표도 차질
독일은 원전 가동 중단으로 생기는 에너지 공백을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1~3월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으로 더 줄어든 만큼 전력 공급에 큰 차질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탈원전에도 원자력을 둘러싼 논쟁까지 끝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혹독한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독일 여론이 바뀌었다. 여론조사업체 포르사연구소가 발표한 지난주 조사에서 응답자 중 3분의 2는 원전 수명을 늘리거나 원전 재가동을 원한다고 답했다. 폐쇄를 찬성한 비중은 28%에 그쳤다. 지난겨울에는 비교적 온화한 기후 덕에 우려했던 에너지 대란을 피하긴 했지만 다시 심각한 위기가 닥친다면 원전 재가동 요구가 커질 수 있다.

전기요금 상승으로 인한 산업 경쟁력을 우려하는 지적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독일 Ifo경제연구소는 독일의 원전 가동을 연장할 경우 원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력 생산비가 비싼 가스 소비가 줄어 2023년 전기요금이 4%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페트롤프라이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독일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한국의 약 6배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산업용 전기료는 한국의 8배 정도로 조사국 중 가장 비쌌다. 다만 이때는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았을 때이다.

또 원자력 발전 지지자들은 원전 폐쇄로는 '2038년 탈석탄'과 '2045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풍력, 태양 에너지가 화석연료 수요까지 전부 충당할 수 없는 만큼 원전 재가동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전히 독일 에너지의 30% 이상은 석탄에서 나온다. 친핵 비영리그룹인 누클레리아의 라이너 클루테 대표는 "독일은 탈원전으로 인해 석탄과 가스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로이터=뉴스1
탈원전 어떤 선례 남길까…쏠리는 세계의 이목
반면 탈원전이 재생에너지 도입을 가속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뮌헨기술대학의 미란다 슈뢰어스 교수는 CNN에 "원전의 단계적 폐쇄로 청정에너지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게 사실"이라면서 "이러한 긴급성과 수요는 재생에너지의 성장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이 기후 위기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해 맹렬한 폭염으로 전력 수요가 커졌지만 원자로 냉각에 이용되는 강의 온도가 높아져 되레 원자력 발전량을 줄여야 했다.

독일재생에너지연맹의 시모네 페테르 회장은 "독일의 탈원전은 역사적 사건"이라며 "사실 에너지 측면에선 늦은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원자력 시대를 뒤로 하고 재생에너지 시대를 일관되게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세계의 눈은 독일이 탈원전에 안착할지에 쏠린다. 스위스, 덴마크 등 여러 나라가 탈원전이라는 방향을 잡았지만 에너지 위기와 탄소중립 목표 속에 원전 폐쇄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프랑스와 일본 등은 되레 원전 신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탈' 아닌 '복'원전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전문가들은 독일이 탈원전 고민을 안고 있는 나라들에 선례를 제공해 결정의 시간을 앞당길 것으로 봤다. 슈뢰어스 교수는 "원자력에 정말 미래가 있는지에 대한 결정의 순간이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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