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왜 ‘천원의 아침밥 확대’ 외면했었나

정남구 2023. 4. 1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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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
‘밥값 급등’의 빛과 그림자
2012년 대학 자발적으로 시작
정부·여당, 뒤늦게 증액 ‘생색’
지난 1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학생식당에서 학생들이 ‘천원의 아침밥’을 구매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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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2월8일 정부가 쌀로 빚은 막걸리의 시판을 허용했다. 햇보리가 익기 전 식량이 다 떨어져 수많은 이들이 끼니를 굶는 ‘보릿고개’가 연례행사가 되자, 정부는 1964년 쌀막걸리와 누룩 제조를 금지했다. 이후 꾸준한 쌀 증산 노력으로 1977년 쌀 생산량이 4천만석을 돌파하자, ‘보릿고개’가 사라졌음을 확인하는 상징적 조처로 쌀막걸리를 다시 허용한 것이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밥은 먹었냐’라는 그 시절 인사말은 지금도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을 겪은 한국인에게 끼니밥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다른 복지 제도는 복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음에도,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만 시행하는 초중고생 전면 무상급식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밥 굶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국인은 널리 공유하고 있다. 그걸 잘 몰랐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2011년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 조례’에 반대하며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도입했다. 투표 거부 운동에 밀려 투표 성립이 무산되고 결국 첫번째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정부가 1천원, 학교는 1천원 이상

“아침을 거르는 일이 많은 대학생들에게 1천원의 부담으로 아침밥을 먹을 수 있게 하자.”

순천향대학교는 이런 취지로 ‘천원의 아침’ 캠페인을 시작했다. 2012년의 일이다. 2500원짜리 아침 식사를 1천원에 제공했다. 재원이 적어, 처음엔 일주일에 세번, 선착순 100명씩에게만 줄 수 있었다.

전남대학교는 2015년 3월부터 ‘천원의 건강밥상’을 시작했다. 한끼에 2천원짜리 식단을 개발해, 학교가 1천원을 지원하고 학생은 1천원만 내게 했다. ‘천원의 건강밥상’은 첫해 방학 기간을 뺀 8개월간 하루 평균 350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것이 알려지면서 그해 서울대가, 이듬해 부산대, 충남대가 따라 하기 시작했다.

성균관대학교는 2017년 7월부터 동문들의 기부금을 재원으로 학생들에게 2500원짜리 아침밥을 1천원에 제공하는 ‘후배사랑 학식 지원’을 시작했다. 처음에 1500원이던 1인분당 지원액을 2018년 2학기부터 2천원, 2021년 10월부터는 2500원으로 늘려 식단을 개선했다. 고려대도 2018년 11월부터 동문들의 기부금을 재원으로 ‘마음든든 아침’을 시행했다.

‘대학생 아침밥’ 지원에 정부가 나선 것은 2017년부터다. 대학들의 움직임을 조사하고 지원 방안을 마련해, ‘쌀 소비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2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7년 5∼11월 사이 건국대, 국민대, 대구보건대, 명지대, 부경대, 상명대, 숭의여대, 아주대, 용인대, 한국외국어대와 업무협약을 맺어 ‘천원의 아침밥’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시간 부족 등으로 아침식사 결식률이 높은 대학생의 아침밥 먹기 습관화를 통한 쌀 소비 창출”이 사업의 목적이었다. 정부는 한끼에 240원의 쌀값을 지원했다. 농협은 학교별로 200만원어치 쌀을 지원했다. 시범사업 첫해 식단은 소박한 간편식에 가까웠다.

정부 지원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확대됐다. 2017년 10개 학교에서 연인원 14만5천명이 먹은 천원의 아침밥은 2018년 21개 학교 27만1천명분으로, 2019년 16개 학교 36만9천명분으로 늘었다. 식단은 ‘3천원 이상’으로 하여, 학생이 1천원을 내면, 정부(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가 1천원을 지원하고, 학교가 ‘1천원 이상’ 지원하게 했다.

학교가 지원을 해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재정 형편이 나쁜 대학은 사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사업 참가 대학 수가 2018년 21개에서 2019년 16개로 줄어든 것이 그런 사정을 보여준다. 학교에 따라 식단에 차이도 있었다. 재정 형편이 좋은 포항공과대는 한끼에 2천원을 지원해 만족도가 높았지만, 1천원을 지원한 학교에서는 식사의 질을 두고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됐다. 예산을 2019년의 4억원에서 6억원으로 늘려놨지만, 실제 지원은 14개 학교 12만3천명분에 그쳤다. 2021년에는 5억원의 예산으로 26개 대학에서 34만6천명분을 제공했다. 2019년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밥 퍼주는 일에 인색한 정부

‘아침식사 습관화와 쌀 소비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시작했던 ‘천원의 아침밥’은 2022년 들어 대학생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외식비가 급등하면서 대학 학생식당 밥값도 크게 오른 까닭이다. 기숙사 생활자, 학교 근처 자취생, 아침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천원의 아침밥이 ‘식비 부담을 줄여주는 단비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2022년 천원의 아침밥은 28개 학교에서 48만6248명분이 제공됐다. 2021년보다 40%가량 늘어난 것이다. 끼니당 1천원을 지원해 정부 예산은 5억원도 들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지난해 9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식당 식비 인상 반대’를 밝히며 “천원의 아침밥 수혜 대상을 늘리고, 점심까지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10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국 대학 천원의 아침밥(일명 천원 백반) 사업’을 제안했다. 그러나 올해 정부 예산은 68만끼(41개 대학) 제공을 목표로7억2800만원 편성에 그쳤다.기획재정부와 여당이 재정건전성을 입에 달고 있던 때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3월23일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예산안 심사 때 민주당이 15억원으로 증액을 요구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반영했으나,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최종 예산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들은 정부에 97만명분 지원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예산을 10억원까지만 늘렸어도 다 지원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밥은 좀 ‘퍼줘’도 되는 것일 텐데.

‘천원의 아침밥’은 언론 보도가 이어지며 계속 화제가 됐다. 정부는 결국 3월29일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지원 대상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올해 지원 규모를 150만명분으로 늘리고, 이를 위해 예산을 8억1천만원 증액하기로 했다. 정부가 예산을 늘린다고 그만큼 지원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지원금을 분담하겠다고 나서야 실행에 옮겨지는 까닭이다. 정부는 4월6일부터 14일까지 대학들을 상대로 사업 신규 참여, 지원자 수 확대 신청을 받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3월30일 “천원의 아침밥 2배로 대상 확대”라고 쓴 펼침막을 만들어 내걸게 했다. 야당의 예산 확대 요구를 정부가 싸늘히 외면했던 일은 잊고, 외식비가 급등해 ‘천원의 아침밥’이 복지정책으로 여겨지게 된 현실에 대한 책임감도 모른 척하고, 뒤늦은 증액에 생색만 내기로 한 모양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한겨레 논설위원.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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