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누비는 꿈의 초소형 의료로봇 “시제품 제작 단계”...5년내 임상 간다

최정석 기자 2023. 4. 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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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마이크로의료로봇 실용화 성과발표회 개최
아직은 시제품 수준… 2027년 임상 목표
마이크로의료로봇(사진 하단의 회색 동그라미)이 간 혈관에 생긴 종양을 없애는 과정을 3D로 표현한 그래픽.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 제공

“여기 0.3~0.6㎜ 정도밖에 되지 않는 로봇이 있습니다. 이 로봇으로 간 동맥 속에 숨은 암 덩어리를 찾고 그 암을 없앨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큰 수술도 필요 없습니다. 허벅지에 얇은 관 하나만 삽입하면 됩니다.”

최은표 전남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마이크로의료로봇 실용화기술개발사업 성과발표회’에서 “로봇은 의료진이 외부에서 전자기장을 이용해 위치를 세밀하게 조정하기 때문에 종양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발표회에는 4명의 연구자가 나와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마이크로의료로봇 기술 다섯 가지를 직접 소개했다. 이 기술들은 모두 기술성숙도(TRL)가 5~6 수준이다. 이 단계에서는 시제품을 만들어 성능 평가를 할 수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마이크로의료로봇 실용화를 위해 연구비를 지원했다. 연구자들은 2027년까지 임상이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력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최 교수는 이날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서 간암 탐색·치료용 마이크로의료로봇을 소개했다. 간암 환자들이 주로 받는 치료법인 간동맥화학색전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이다. 간동맥화학색전술이란 혈관을 막는 색전물질을 종양 근처에 주입해 암과 같은 종양 덩어리에 피가 돌지 못하게 만드는 치료법이다. 혈액 공급이 막히면 종양은 사멸한다.

기존 간동맥화학색전술은 색전물질을 정확한 위치에 주입하기 어려워 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 색전물질 주입을 위해 철사처럼 생긴 얇고 긴 수술도구 ‘카테터’를 혈관 깊숙이 넣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혈관 손상과 2차 감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최 교수 연구팀이 만든 로봇은 항암제와 조영제를 동시에 탑재할 수 있어 의료진이 로봇 위치를 계속 확인하면서 정확한 위치에 항암제를 투여할 수 있다. 로봇은 젤라틴과 같이 생체 적합성, 분해성이 높은 물질로 만들어 혈관 속을 돌아다녀도 상처가 나지 않는다. 로봇을 움직일 때 쓰는 자기장은 세기가 약해 인체에 영향이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로봇형 무선 심박조율기를 심장 안에 설치하는 장면을 표현한 그래픽. 45도로 누워있는 황금색 기기가 무선 심박조율기.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 제공

환자 심박수를 무선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술도 소개됐다. 강병전 전남대 로봇공학융합전공 교수는 마이크로로봇 기술을 활용해 로봇형 무선 심박조율기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강 교수는 서맥성 부정맥 환자를 위해 이 기기를 개발했다. 서맥성 부정맥이란 불규칙한 심장 리듬으로 심박이 정상인보다 느리게 뛰는 질병이다. 정상 성인은 심장이 분당 60~100회씩 뛰는데 서맥성 부정맥 환자는 분당 심박수가 60회 미만이다.

서맥성 부정맥 환자들은 지금껏 수술을 통해 유선 심박조율기를 몸에 달아야 했다. 유선 심박조율기는 심장 안에 설치하는 맥박 측정 장치와 이 장치에 전기자극을 주는 신호발생기로 구성돼있다. 맥박 측정 장치가 심장 전기신호를 감지해 맥박이 일정 수준보다 느린 것을 확인하면 신호발생기가 맥박 측정 장치에 전기자극을 보낸다. 이러면 심장이 전기자극을 받아 수축하면서 심박수가 빨라진다.

유선 심박조율기는 맥박 측정 장치와 신호발생기, 둘을 이어주는 선이 모두 몸속에 들어간다. 이로 인해 출혈, 피부손상, 감염과 같은 것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반면 강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무선 심박조율기는 선 없이 심장에 맥박 측정 장치만 달면 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없다. 무선으로 외부와 통신하며 심장 상태를 알려주며 필요 시 전기자극을 내뿜어 심박수를 높일 수 있다. 외부에서 무선충전도 가능하기 때문에 배터리가 다 됐다고 장치를 교체할 필요도 없다.

이어 강 교수는 무선 심박조율기를 환자 심장에 삽입, 고정, 회수하는 작업 과정을 인간과 로봇이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구현한 기술도 공개했다. 연구팀은 돼지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으며 카테터를 통해 돼지 경정맥, 우심방을 거쳐 우심실에 심박조율기를 고정했다. 이렇게 설치된 무선 심박조율기는 돼지의 심박수를 측정하고 전기자극을 발생시키는 데까지 성공했다.

카메라가 장착된 캡슐 형태의 내시경 로봇이 몸속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표현한 그래픽.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 제공

그 다음은 카메라가 달린 캡슐 모양 로봇으로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는 기술이 소개됐다. 김자영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 랩장은 자기장을 통해 로봇 위치와 카메라 방향을 조종할 수 있는 소화기관(위장) 영상진단용 마이크로의료로봇을 개발했다.

기존 내시경 검사는 끄트머리에 카메라 렌즈가 달린 긴 줄을 몸 속으로 넣고 이를 의료진이 손으로 직접 움직이면서 위장 상태를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때문에 내시경 검사를 받는 환자는 반드시 마취를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내시경 조작 실수로 장에 구멍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캡슐형 내시경은 이러한 단점을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생물채취용 마이크로의료캡슐이 돼지 위장에서 미생물을 채취하는 모습.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 제공

비슷한 캡슐 모양 로봇을 다른 용도로 활용한 기술도 있었다. 박석호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및기계전자공학과 교수는 장내 미생물인 마이크로바이옴을 채취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공개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건강 유지는 물론 각종 질병 예방과 치료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여럿 나오면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에 마이크로바이옴을 채취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했다. 대변에서 직접 샘플을 뽑거나 내시경을 몸 안에 집어넣어 채취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법들은 각종 오염 가능성이 있고 장 속 특정 위치에 어떤 마이크로바이옴이 있는지 자세하게 연구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박 교수 연구팀은 몸 밖에서 자기장으로 조종할 수 있는 무선 캡슐에 마이크로바이옴 채취용 장치를 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러면 연구하고자 하는 장 속 특정 위치까지 로봇을 보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채취할 수 있다. 같은 장비를 여러 번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 기술 관련 특허가 현재 미국에 1건, 한국에 1건씩 등록돼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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