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되면 못 쓰는데” 1조 예산 들어간 백신, 관리 엉망에 다수 폐기

2023. 4. 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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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지난 2020년 10월 코로나19 상황 시기, 방역당국(질병관리청)에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고 사망한 신고가 수십 건 접수됐다. 당시 보고된 사망자 수는 36명. 방역당국은 사망자 원인을 밝히던 중 첫 의심 사망자 사례에서 백신 유통사 A가 독감 백신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것을 확인한다. 상온에 노출된 백신이 사망과 관련이 없다는 인과관계가 밝혀졌지만 이 백신들은 전량 폐기됐다. 이 일을 계기로 백신의 온도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새삼 주목받았다.

국내 의료기관의 백신 콜드체인(Cold chain, 저온 유통)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 대다수가 백신을 접종하는 동네 의원의 백신 관리는 낙제점 수준으로 밝혀졌다. 국내 백신 사업에는 한 해 1조 이상의 천문학적인 예산이 사용되는데 상온에 노출된 백신은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되고 있다.

▶2~8℃ 사이로 관리 안되면 효과 없는 '물백신'=의약품 콜드체인은 온도에 민감한 의약품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 유통시키기 위해 이용되는 온도 제어 환경을 말한다. 콜드체인이 필요한 의약품은 '생물학적 제제'가 대상이다. 생물학적 제제란 생물을 재료로 해서 만든 의학용 제제를 말한다. 혈청, 항원, 항체 뿐만 아니라 백신, 혈액제제,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생물학적 제제들은 온도에 민감하다. 생물을 재료로 하기에 너무 낮거나 높은 온도에 놓이면 제품이 변질된다. 효능, 효과가 낮아질 수 있고 백신의 경우 맞아도 예방 효과가 없는 '물백신'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때문에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밝혀지면 폐기된다.

이런 이유로 백신은 제조단계부터 실제 접종되기까지 철저한 온도 범위에서 관리된다. 물론 백신마다 보관 온도 범위는 다르다. 코로나19 백신으로 개발된 mRNA 백신 중 코로나 백신은 -70℃, 모더나 백신은 -20℃가 적정 온도다. 다만 일반적인 독감·수두 백신 등의 보관 및 수송 시 유지 온도는 2~8℃다.

백신 업계 관계자는 “백신이 공장에서 제조, 출하되면 백신 유통사들이 온도 유지가 가능한 특수 제작 수송차에 제품을 싣고 전국의 보건소나 병의원으로 이송한다”며 “이 모든 과정이 정부 관리 감독 하에 이뤄지기 때문에 통상 백신이 온도 일탈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동네 의원 백신 냉장고에 부착된 온도 기록지 [독자 제공]

▶간호사가 백신 온도 수기로 작성, 비효율적 관리로 신뢰도 ↓=실제 유통 과정 중 온도 일탈에 따른 문제는 거의 없다. 의약품 도매업체는 KGSP(의약품유통품질관리기준)에 따라 상당 부분 전문 콜드체인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사례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문제는 병의원에 도착 후 생긴다. 전국에는 백신을 취급하는 의료기관은 4만1800여곳에 이른다. 이 중 국민들이 주로 백신을 접종하는 동네 의원이 3만4845개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런 의원의 백신 콜드체인을 관리하는 보건소는 전국에 243곳 뿐이다. 전국 모든 의원의 백신 콜드체인 시스템을 보건소가 관리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의원의 백신 콜드체인 관리는 상당 부분 간호사 몫이다. 지난 2021년 '생물학적 제제 등의 제조·판매 관리 규칙 개정'에 따르면 판매자(병의원)는 자동 온도 측정 장치가 부착된 냉장고 또는 냉동고를 이용해 적정온도가 유지된 상태에서 백신을 보관해야 한다. 보관책임자를 정해 매일 2회 온도를 체크하고 기록해야 한다. 온도에 대한 기록은 2년간 보존해야 한다.

여기서 보관책임자는 대부분 간호사가 맡는다. 그리고 상당수 동네 의원은 백신보관 전용 냉장고 대신 일반 가정용 냉장고를 사용한다. 여기에 인터넷 등에서 구입한 저가형 온도계를 부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간호사가 직접 온도를 확인하고 수기로 장부를 작성한다. 이를 병원 PC에 엑셀파일로 기록한다.

병원에서 한 간호사가 백신을 주사기에 주입하고 있다. [연합]

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대부분 의원에서 간호사가 수기로 온도 기록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바쁠 때는 기록을 건너 뛰고 나중에 한꺼번에 대충 작성하기도 하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손으로 작성한 기록지를 신뢰하기도 힘들고 실제로는 온도 이탈로 온도계에서 알람이 울려도 다른 업무로 바빠 신경을 쓰지 않는 등 온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확보한 코로나19 백신 폐기 현황에 따르면 2021년 2~6월 사이 폐기된 코로나19 백신 8886회분이다. 이 중 86%에 이르는 7667회분이 백신 온도 일탈을 이유로 폐기됐다. 이 중 의원에서 생긴 온도 일탈로 폐기된 백신이 2935회분으로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백신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1조원을 넘는다.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지만 온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폐기되는 백신 물량이 적지 않은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백신은 주변 온도가 변할 경우 효능이 떨어지고 유통기한이 짧아져 폐기해야 하는 수량이 많아진다”며 ”콜드체인은 백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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