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을 통해 본 엄마와 딸의 이야기들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시몬 드 보봐르(1908~1986)는 1949년 발표한 저서 《제2의 성》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며 문화적·사회적 강요에 의해 여성의 역할을 하게끔 길러진다는 것으로 오늘날 여성주의(女性主義)의 이론적 배경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은 '가정 돌봄이'다.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이른바 가사노동에 국한돼 있었다. 그러한 엄마의 모습을 어려서부터 지켜본 딸은 이러한 역할을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며 대물림한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에 그 역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딸은 엄마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로 선언했다.
모녀 관계는 오묘하다. 사랑하면서도 극복해야 하는 관계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 사이에 위치한 아빠라는 쉽게 변하지 않는 굳건한 바위도 변수다. 모녀 관계를 소재로 한 국내외 뮤지컬 작품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예비 신부의 생부 찾기 《맘마미아》
내년이면 국내 초연 20주년을 맞는 스테디셀러 뮤지컬 《맘마미아》는 이제 스무 살이 된 예비 신부 소피가 부르는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으로 막을 연다. 엄마 도나가 결혼 전 일기장에 쓴 세 명의 '아버지 후보'(빌, 해리, 샘)에 대한 내용을 우연히 발견한 소피는 얼굴도 모르는 그 친부를 찾아 결혼식장에는 반드시 자신의 손을 이끌고 입장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노래한다.
젊은 시절 자유로운 히피 세대를 겪은 엄마는 여러 남자와 데이트를 할 만큼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었지만 현재는 생계를 위해 휴양지에서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한 엄마에게 딸은 생부 찾기라는 이름으로 짜릿하지만 불편할 수도 있는 추억을 끄집어내게 한다. 우리 시대의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부녀 관계와 책임감에 대해 터놓고 말하는 기회를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피가 친부를 찾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자 자신만의 선택으로 사는 주체적인 인생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곁에 있는 이들을 서로 사랑하며 가족애를 느끼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맘마미아》는 외형적으로는 일면식도 없는 자신의 친부를 찾으려는 예비 신부의 잔잔한 추리극으로서 흥미로운 서사를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엄마 세대인 40대가 얼마나 복잡다난한 감정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새로운 도전과 미래를 바꿀 만큼의 용기를 가지기에는 부담스러운 40대 싱글맘이지만 아직도 많이 남은 인생의 시간을 생각할 때 꿈과 열정을 포기할 수는 없다. 결국 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의 원초적인 유대감을 가지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재 공연 중이며 6월25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다.
딸의 성공을 바라는 억척 엄마의 분투기 《집시》
아직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브로드웨이 고전 뮤지컬 《집시》는 또 다른 관점에서 모녀 관계를 돌이켜볼 수 있는 작품이다. 1959년 초연돼 그동안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수차례 리바이벌 레퍼토리로 흥행한 이 작품은 1920~30년대 미국의 극장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는 건전한 가족극 형식의 '보더빌' 공연이 인기가 있던 시대였다. 어린 딸을 스타로 만들고자 노력해온 엄마 로즈가 결국 점차 쇠락한 보더빌 대신 성인 섹시 콘셉트의 코미디 쇼 '벌레스크'에서 성인이 된 딸을 스트립쇼의 여왕 자리에 오르게 한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어린 자녀를 노래, 연기, 춤을 마스터한 전천후 스타로 만들고자 하는 엄마들의 노력은 사실 아이돌 문화가 활성화된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낯설지 않다. 소질 있는 아이라 해도 오랜 연습생 시절을 거쳐 정식 데뷔하기까지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와 희생이 없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딸에 대한 애정과 확신이 과한 엄마가 딸의 멘털을 제때 관리하지 못하고 제작자에게도 선 넘는 개입 논란을 수시로 일으킨다. 두 딸 중에 소질이 있다고 믿었던 둘째 딸 쥰은 야반도주해 버리고 숫기가 부족했던 첫째 딸 루이즈가 대신 엄마를 위해 노력하고 성공한다. 하지만 스타가 된 루이즈는 이제 엄마에게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오히려 조언한다. 엄마는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지만 자신의 꿈과 지나온 인생을 회고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다짐하며 두 사람은 화해하고 친구가 돼 막을 내린다. 모녀 관계에서 가장 정답에 가까운 '친구 되기'의 결말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절절한 한국의 모녀지간 《친정엄마》
한국 창작 뮤지컬 《친정엄마》는 고혜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가수를 꿈꾸던 말괄량이 처녀 김봉란과 그녀의 딸이 세대를 아우르며 경험하는 '모녀 동반 성장기'다. 10년 이상 공연하면서 역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이 작품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김봉란이 가진 가수의 꿈과 첫사랑, 말괄량이 시절의 풋풋한 추억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김봉란은 본명 대신 딸 미영의 '엄마'로 불리는 인생을 선택한다. 딸을 시집 보내는 과정에서 사부인과 갈등을 겪고, 결혼한 딸의 집안일을 도와주며 행복을 느끼다가도 사소한 말다툼으로 멀어지는 현실적인 에피소드도 펼쳐진다. 결국 한 세대를 지나 딸이 다시 딸을 낳고 그 손녀딸이 '엄마를 잃은 엄마'를 위로하면서 비로소 이 시대 엄마의 헌신과 사랑을 이해하고 우리의 딸들에게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확장된 여성의 목소리로 막을 내린다. 현재 공연 중이며 6월4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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