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장이 바뀐대…10년간 5명, 인천공항에 무슨 일이 [방방콕콕]
김경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지난달 돌연 사퇴의사를 밝혔다. 임기 10개월을 남기고서다.
국토교통부 2차관을 지낸 김 사장은 지난 2021년 2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임명권자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법이 정한 임기는 3년. 그 사이 정권은 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넘어갔다.
이후에도 직·간접적으로 ‘완주’ 의사를 밝혀온 김 사장의 갑작스런 입장 선회는 공항 가족들을 놀라게했다.
그는 사퇴 결정 배경에 대해 “최근 여러 정황으로 미뤄 인사권자의 뜻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최근 대한항공 여객기 안에서 실탄이 발견된 이후 관련 보고를 부사장에게 하도록 하는 등 사장을 무시하는 행보를 보였다.
법에 임기가 정해져 강제 해임이 불가하자 ‘사장 패싱’ 전략으로 무력·모멸감을 줘 스스로 그만두도록 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공항 내부에서 나왔다.
지난 4일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에게 “나가야 한다”며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인천공항에서 발생한 기내 총탄 발견 등 보안 사고는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전 정권에서 임명된 김 사장을 압박하기 위한 ‘트리거’로 작용했다.
지난해 5월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궤를 같이 하는 인사들이 공공기관을 넘겨 받아 국정 운영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370개 공공기관 가운데 1년 이상 임기가 남은 곳은 256곳으로 69%에 달했다.
기관장 임기가 만료됐거나 6개월 미만인 곳은 53곳에 불과해 윤석열 정부가 임명할 수 있는 공공기관장 자리는 전체의 14%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인천공항공사 사장 자리는 이전까지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아량(雅量)이 존재해 왔다.
능력 있는 사장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중용돼 왔다. 역대 정부가 인천공항 사장을 임명할 때 보여준 이러한 철학을 감안할 때 이번 김 사장의 사퇴 표명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정치적 배경을 배제하고 ‘실력위주’의 인사를 중용해 오던 관행이 깨진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으로 발생한 이른바 ‘인국공’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고 코로나19 위기에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인위적 구조조정 없이 공항 생태계를 지켜낸 인물로 평가된다.
2013년 6월 취임한 정창수 5대 사장은 9개월, 정 사장의 뒤를 이은 박완수 6대 사장은 1년 2개월 만에 그만뒀다. 문재인 정부 때 8대 사장으로 임명된 구본환 사장은 1년 5개월 만에 해임(나중에 해임 취소 소송서 승소)됐고, 뒤를 이어 ‘구원투수’로 등판한 김경욱 사장은 2년 만에 스스로 용퇴를 결정했다.
공교롭게도 이 모든 중도 사퇴가 2013년 이후 벌어졌다.
인천공항 안팎에서 2013년을 인천공항 사장 자리가 노골적으로 정치화되기 시작한 시기로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국토부 1차관 출신인 정창수 사장은 강원도지사 출마를 위해, 박완수 사장은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했다.
이때 ‘인천공항 사장직이 정치 짐검다리가 됐다’는 소리가 나왔다.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거나 해임된 사장을 제외하고 뜯어보면 역대 정권이 인천공항 사장 자리를 대하는 철학은 남달랐다. 능력이 있다면 누가 임명을 했든 계속 중용해 왔다는 점이다.
강동석 1대 사장은 인천공항 건설 때인 1994년부터 2002년 3월까지 무려 7년 6개월을 근무했다.
김영삼 정권때 인천공항공사 전신인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에 임명돼 김대중 정권 때 퇴직했고, 노무현 정권에서는 과거 실력을 인정 받아 건설교통부장관을 지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이재희 3대 사장은 이명박 정권때 3년 임기를 모두 채웠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이채욱 4대 사장은 임기보다 2년 더 긴 5년을 근무했다.
이들은 인천공항공사의 조직문화를 선진화하고, 단기간에 세계 최고 공항으로 만든 장본인으로 지금까지도 존경의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2013년 이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정일영 사장이 문재인 정권에서 임기를 마무리했다. 정 사장은 정해진 임기보다 2개월 더 일했다.
암묵적으로 유지되던 이러한 인사 기조는 인천공항 개항 22년을 맞은 올해 처음으로 바뀐다. 현 정권과 코드를 같이 하는 인사가 공공기관장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공항 공기업도 그 영향권에 포함돼 있다.
최근 기내 총탄 발견 등 잇단 보안사고를 부각시켜 김경욱 사장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정부의 최근 행보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공항 직원들은 보고 있다.
보안검색 기능이 뚫린 이상 김 사장은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위해물품류의 반입 사고가 세계 모든 공항에서 일어나고 있고, 고의 없이 일어난 사고에 대해 관련 직원을 형사 입건 하는 것이 맞느냐는 불만이 공항 내에서 제기된다.
인천공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공보안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미국 교통보안청(TSA) 보안평가에서도 우수한 공항보안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영국 항공 서비스 전문 연구 기관인 스카이트랙스(Skytrax)가 실시한 보안분야 설문에서 세계 1위(2021)를 차지했다.
하지만 위상 만큼이나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인천공항은 쉽게 답을 하지 못한다. 그 배경에 ‘잦은 CEO 교체’도 한 몫한다.
특히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항공 산업을 주도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터라 이런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 인천공항은 세계 각종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인지도와 위상이 높아졌지만 그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세계 1900여개 공항을 회원으로 둔 국제공항협의회(ACI)을 보자.
1991년 설립된 ACI는 세계 185개국 1950개 공항과 항공 관련 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항 운영·안전·효율을 증진하기 위해 만든 연합체로 공항업계 유일의 국제기구다.
인천공항은 2003년부터 ACI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경욱 사장이 지난해 상반기, 임기 3년의 ACI 아태·중동지역사무소 이사회 지역이사로 선출됐지만 이달 말 사장직에서 물러나면 자동으로 이사직도 해촉된다.
ACI의 주요 의사결정은 집행이사회에서 결정하는데 집행이사는 지역이사 중 연공서열 등을 고려해 선출하기 때문에 CEO 교체가 잦은 인천공항은 어쩌면 영원히 진입이 불가능할지 모른다.
반면 인천공항 경쟁상대로 꼽히는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리 서향(Lee SeowHiang) 사장은 ACI 아태 지역이사를 거쳐 집행이사회 제1부의장, 의장, 전임 의장, ACI 세계본부 이사직을 동시에 역임하고 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인천공항처럼 공기업 형태로 운영되지만 리 사장은 2009년부터 10년 넘게 창이공항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세계 공항 업계의 마당발로 성장했다.
리 사장은 제4터미널 개장(2017), 대규모 복합쇼핑몰인 쥬얼창이(2019) 등 중장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능력을 인정 받았고, 지금은 2030년 개장을 목표로 제5터미널 건설 공사를 지휘하고 있다.
창이공항은 스카이트랙스가 최근 발표한 ‘2023 세계 공항 톱 100’에서 1위에 올랐다.
홍콩 첵랍콕공항, 프랑스 샤를드골공항, 영국 히드로공항, 독일 프랑크푸트트공항, 튀르키예 이스탄불공항 등 세계 유수 공항도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 사장 직을 보장하며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윤문길 한국항공대 교수는 “인천국제공항과 같은 시장형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가 사장으로 임용돼서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지속가능한 경영이 가능하다”면서 정무적 판단에 따른 사장 교체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항 전문가는 “코로나 엔데믹 이후 세계 유수 공항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잦은 사장 교체는 리스크가 될 수 있고, 해외 사업 유치, 세계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최소한 임기라도 보장해 한국 공항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IATA(국제항공운송협회)는 내년께 2019년 수준의 항공 수요 회복을 전망했다.
장기적으로는 여객수가 2040년까지 연평균 3.3%씩 증가해 80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2019년 40억명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공항 개발 사업을 따내기 위한 경쟁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CAPA(항공산업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5657억 달러 규모의 공항 건설 프로젝트(633개)가 진행되고 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대낮 여성 가슴골에 카드 긁었다”…성추행 논란 터진 이 남성 - 매일경제
- “경찰보다 빨랐다”…日총리 구한 ‘꽃무늬 조끼’男의 정체 - 매일경제
- 26억서 70억 된 해운대 펜트하우스의 비밀…국토부 “이상한데” - 매일경제
- “너무 괴로워했다”…‘건축왕’ 전세사기 20대 피해자 또 사망 - 매일경제
- “죽으면 그만이야”…867억 안내고 간 전두환, 회수 가능할까 [법조인싸] - 매일경제
- ‘37.7억 대박’ 터진 로또 1등, ‘명당 7곳’ 자동이었네, 판매처는 - 매일경제
- 정부 기밀 유출한 간 큰 범인…빨리 잡아낸 중요 단서는 ‘이것’ - 매일경제
- “한동훈 딸, 내신과 美입시 만점자...MIT 입학 반대는 국가망신” - 매일경제
- 조민, 父 책 보며 “하품은 못본 척” 조국 “딸, 무료봉사 보람” - 매일경제
- BTS 슈가, 앨범 홍보 콘텐츠에서 UFC 언급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