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m 추락사인데… 중대재해법 첫 처벌이 집행유예라니
위험 환경 방치로 인한 ‘작업자 과실’, 감경사유여선 안 돼
날씨가 맑은 토요일 낮이었다. 2022년 5월14일 오후 1시46분께,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연세나을암요양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건설노동자 김아무개(48)씨는 5층 건물 안에서 공사에 필요한 철근 묶음이 전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층에 있는 동료가 바닥에 놓인 철근 묶음을 반자동 도르래로 연결해 5층 건물 위로 올려보내고 있었다. 거의 다 올라온 묶음을 김씨가 잡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철근이 줄에서 빠지며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무게 94.2㎏ 철근의 반동이 김씨 몸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김씨가 중심을 잃고 휘청였을 때 그 앞은 안전난간이 없는 낭떠러지였다. 바닥으로 추락한 그는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처벌 수위 이전 판단 못 벗어나”
2023년 4월6일 원·하청 책임자들이 1심 선고를 받은 이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첫 산업재해 사망사고 판결이다. 중대재해법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체제로는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리기도, 높은 형량을 부과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바꿔보려 2022년 1월 시행됐다. 1호 사건은 그 목표를 절반만 이뤘다. 원청 대표이사를 포함한 원·하청 책임자 4명이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전원 집행유예와 벌금형이었다. “경영책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은 점은 의미 있었지만 처벌 수위는 이전의 판단을 벗어나지 못한 판결”(중대재해전문가넷 4월7일 논평)이었다.
원·하청 책임자들이 유죄를 받은 까닭은 위험을 뻔히 보면서도 안전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 중량물 취급 작업을 시킬 때는 사업주가 작업의 위험요인을 미리 조사해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작업계획을 세워야 한다. 작업 때문에 불가피하게 안전난간을 해체해야 하면 추락을 방지하는 망(추락방호망)을 설치해야 하고, 그것마저 불가능하면 노동자가 쓸 안전대를 지급해야 했다. 김씨가 숨진 공사장에서 원·하청 관리자들은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원청의 대표이사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가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는지도 따로 평가하지 않았다.
평소 김씨와 동료들이 사용한 반자동 도르래는 회전 방지 기능이 없어 철근을 한 줄만 연결할 수밖에 없었다. 철근을 두 줄로 걸면 도르래 줄의 흔들림이 심해져 작업이 불가능해서였다. 한 줄만 연결하면 철근이 줄에서 이탈할 위험이 커지지만 안전관리자와 하청업체 현장소장은 도르래를 교체하거나 대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김동원 판사는 “피고인들이 업무상 의무의 일부만 이행했더라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원청 ‘온유파트너스’의 대표이사 정아무개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현장소장 김아무개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안전관리자 방아무개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청업체인 ‘아이콘이앤씨’의 현장소장 권아무개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원·하청 두 법인에 대해선 각각 벌금 3천만원형과 1천만원형이 선고됐다.
보험 가입·합의금 지급하면 감경?
의미와 한계가 뚜렷했다. 산안법 체제하에선 산재 사망사고가 나도 안전을 직접 관리·감독하는 자들만 책임지고 경영책임자들은 빠져나가곤 했다. 중대재해법은 예산과 인력을 짜는 경영책임자에게도 재해 예방 체계를 갖추라는 의무를 지웠다. 1호 사건은 이 법리를 적용한 첫 판결이다.
그러나 형량이 산안법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8~2020년 산안법 위반이 선고된 판결 1427건을 전수분석한 보고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한 법 적용상 문제점 및 개선방안 ’을 보면, 산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637명 중 95.3%가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집행유예 2년형이었다. 자연인 피고의 평균 벌금액도 423만원 수준이었다. 다만 법인 피고에 대한 벌금형은 산안법 위반시 평균 515만원이었으나 중대재해법 위반시 1천만~3천만원이었다. 법인에 대한 벌금은 높이되 개인에 대한 형량은 기존처럼 낮게 유지한 것이다.
피고인들의 형량을 깎은 이유로는 피해자 가족에게 합의금을 지급해 처벌불원서를 받았다는 점과 피해자 과실이 있다는 점, 근로자재해보험에 가입한 점 등이 꼽혔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늘 산재 사건 때마다 기업이 피해 가족에게 얼마를 지급했고 산재보험으로 얼마를 냈다고 (감경 사유로) 얘기한다. 가족이 당장 생활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합의금을 받고) 처벌불원서를 썼을 텐데 그걸로 감경하는 게 합당하냐”고 비판했다.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도 “피해자 처벌불원서는 감경 사유로 둘 것이 아니라 합의하지 않았을 때 가중 사유로 둬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난간 철거가 피해자 과실?
“법관들이 보기엔 (산재 사망사고가) 고의에 의한 살인이 아니기도 하고, 감경 사유를 어느 정도 인정해 줘야 가해자가 최소한의 피해 회복 노력이라도 하리라 보는 것이다. 그렇게 가중인자를 소극적으로 평가하고 감경인자는 적극적으로 찾아서 적용하다 보면 상식적인 기대 수준만큼 형량이 나오지 않는다.” 김한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사법부가 산안법 위반 사범의 형량을 지나치게 낮게 매긴다는 사회적 비판은 꾸준히 있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2년 이런 비판을 의식해 산안법 기본 형량을 기존보다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험 가입이나 피해자 합의 등을 감경 사유로 택하는 경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산안법 위반죄는 실수로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한 죄인 ‘업무상과실치사상 범죄’ 집단과 같은 분류로 묶인다. 산재 사고를 방치한 기업의 책임을 고의가 아닌 과실로 인식하기 쉬운 구조다.
특히 논란이 된 감경 사유는 ‘피해자 과실’이다. 김동원 판사는 “피해자를 비롯한 건설근로자 사이에서 만연하던 안전난간의 임의적 철거 관행도 일부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현장의 안전난간이 임의로 해체됐으니 숨진 김씨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김씨가 맡은 작업의 경우 안전난간을 그대로 둔 채 일하기 쉽지 않다. “100㎏에 육박하는 철근을 안정적으로 받으려면 되도록 자세를 낮춰 팔이나 손으로 받아야 하는데, 1m 높이의 안전난간이 있으면 제대로 받기 힘들다. 안전난간을 그대로 둔 채 작업했다가는 자칫 철근과 안전난간 사이에 몸이 끼거나 다칠 수도 있다.” 강한수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안전난간을 유지하려면 1회당 올리는 철근의 무게를 더 줄였어야 한다”며 “자신이 위험해질 걸 알면서 난간을 해체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작업 방식과 안전장치가 충돌할 때 이를 조정하는 것은 사업주의 몫이다. 사업주가 생산량만 정해놓고 작업 방식엔 관여하지 않으면 그 위험은 노동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손익찬 변호사는 “사업주가 작업자 과실을 주장하는 건 ‘위험한 환경을 방치했다는 자인’으로 봐야 한다. 실제 많은 판결에서 그렇게 판단해왔다”며 “안전관리 의무 위반은 실수가 아닌 기업범죄라는 점을 양형 사유에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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