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인데 괜찮을까?" 이쯤이면 LG의 행운인가… 잠실에 또 뱀이 풀렸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23년 신인드래프트 대상자 중 최고 사이드암 구도는 대구고 김정운(kt)과 라온고 박명근(LG)의 2파전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당초 두 선수 모두 1라운드 혹은 늦어도 2라운드에서는 지명이 예상된다는 의견이었다. 실제 김정운은 1라운드 전체 10순위에서 kt의 지명을 받았다.
그런데 박명근의 이름은 2라운드 중반이 지난 이후에도 나오지 않았다. 신인드래프트 당시 꽤 많은 구단들이 이를 두고 혼란스러워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명근은 사이드암이지만 최고 시속 150㎞에 이르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고 구종의 완성도나 커맨드도 제법인 선수였다. 여기에 고교 레벨을 넘어 프로 레벨에서도 최고 수준인 빠른 퀵모션도 가지고 있었다. 주자 견제가 된다는 건, 불펜으로 쓸 구상이 있는 팀에는 최고의 메리트였다.
KBO리그 9개 구단에 트래킹 데이터를 제공하는 ‘트랙맨’의 집계(2022년 목동구장에서 열린 전국고교야구대회 기준)에 따르면 박명근은 평균 143.8㎞의 패스트볼에 고교 최정상급인 약 2463회의 분당 회전수(RPM)를 기록했다. RPM은 프로에서도 충분히 상위권에 들 만한 수준이었다. 고교 시절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1~2라운드에서 박명근을 호명하는 팀은 없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스카우트 관계자는 ‘체격’ 때문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박명근의 프로필상 키는 174㎝다. 앞으로 더 클 여지는 있겠지만, 요즘 선수들의 평균에도 많이 못 미친다. 스카우트들과 구단의 성향에 따라 조금 다르기는 하나 ‘언더사이즈’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적잖이 있다. 그릇이 작으면 채울 것도 많지 않다는 논리다. 실제 체격이 작은 선수들은 고교 시절에 보여줬던 기량에서 정체된 사례가 제법 많다.
아이러니한 것은 10개 구단 거의 대부분이 ‘어떤 팀이든 박명근을 2라운드에서 지명하는 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점이다. 우리는 2라운드에서 뽑기 부담스러워도, 누군가는 생각을 달리 할 것이고, 그래서 3~4라운드까지 넘어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LG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LG 스카우트로 지명 사정을 잘 아는 김용의 스포타임 베이스볼 위원은 “박명근이 3라운드까지 남아 있었고, 지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언더사이즈든 뭐든 더 미루기는 아까운 인재였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박명근이 지난해 시즌 초반에는 150㎞까지 던졌다. 다만 여름이 지나고 가고 구속이 140㎞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신체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많이 나왔다”고 떠올렸다. 작은 체구가 결국은 한계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점이 많은 선수였다. 3라운드 전체 27번을 가지고 있었던 LG는 더 외면할 수 없었다.
김 위원은 27번까지 밀려 LG의 품에 안긴 것이 팀으로서는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김 위원은 “공의 무브먼트가 굉장히 좋고, 퀵모션이 빠르다. 박명근의 퀵모션이 1초가 채 안 되는데 도루를 하기가 어렵다. 중간투수가 도루 저지 능력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이점”이라면서 “중간투수로 나가면 1이닝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지명 당시 LG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런 박명근은 염경엽 LG 감독의 관심 속에 예상보다 빨리 리그 최강이라는 LG 마운드에 일원이 됐다. 시즌 개막부터 어쩌면 무모해 보일 정도로 중요한 순간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민호의 부상으로 선발진에 결원이 생겼을 때인 11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선발로 나가 3이닝을 던지기도 했다. 신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것 같기는 하지만, 염 감독은 확신이 있다. 올해 잘 적응하면 내년에는 선발로도 쓸 수 있다고 자신한다.
14일 잠실 두산전(13-4 LG 승)에서는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이 과정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6회 마운드에 올라 김재환을 삼진으로, 양의지를 유격수 땅볼로, 로하스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잠실의 LG 팬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김재환 양의지라는 리그 최정상급 타자에 외국인 타자까지 당차고 맹렬한 투구로 아웃카운트를 받아냈다. 두산의 마지막 추격 승부처도 박명근 앞에서 깨끗하게 지워졌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49㎞까지 나왔다. 그 149㎞도 육안으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움직임을 가진 이른바 ‘뱀직구’였다. 좌타자 몸쪽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마지막 순간 스트라이크존으로 꺾이며 꽉 찬 코스에 꽂히는 공은 일품이었다. 구속에 제구까지 동반된 공을 던질 수 있고, 배짱도 있음을 확인했다. LG의 행운은, 정우영에 이어 잠실에 또 하나의 뱀을 풀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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