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20년 만에 ‘임용 취소’…허술한 채용 책임은?
재난사고 현장에서 신속한 인명구조를 위해 소방관 가운데 일부는 군 특수부대 출신들을 경력직으로 선발하고 있습니다.
1995년 시작된 119 구조대원 경력 채용입니다.
그런데 최근 특수부대 경력이 모자라 서류에서 떨어져야 할 사람이 합격해, 20년 동안 구조대원으로 근무한 사실이 KBS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 구조왕 '베테랑 소방관'… 임용 20년 만에 ‘합격 취소’
소방공무원 40대 A씨는 2003년 경력직으로 경남소방본부 119구조대원이 됐습니다. 특수부대인 SSU, 해군 해난구조대 경력을 인정받았습니다.
A씨는 이후 20년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 현장에서 인명 구조를 하며 활약했고, 한 소방관 대회에서 '구조왕'으로 뽑혀 1계급 특별 진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A씨 동료 소방관
"20년이나 근무를 해서 능력으로 보면 그 친구가 엄청 뛰어나거든요. 특진도 했고요."
그런데 지난달 10일, 소속 기관인 경남소방본부가 A씨에 대해 갑작스러운 통보를 합니다. A씨의 '20년 전 소방관 합격 사실'을 취소하겠다는 겁니다.
사유는 응시 자격 미달!
당시, 경남소방본부는 소방관 지원요건으로 특수부대 경력 3년 이상을 내걸었는데, A씨의 특수부대 경력은 2년 1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소방관 경력직으로 합격하기에는 실제 군 경력이 1년 가까이 부족했던 겁니다. 이 사실은 한 민원인의 신고로 드러났습니다.
창원소방본부 관계자
"국민신문고 민원으로 들어왔습니다. 인사 기록 카드하고 우리 쪽에 있으니까, (소방청에서) 이첩한거죠. 민원 내용에 상세히 적혀 있더라고요."
■ 부족한 경력, 서류 통과는 '어떻게'?…"병적증명서가 문제"
궁금증이 남습니다. 군 경력이 부족한 A씨는 서류 전형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을까요.
1998년 해군 일반부대 하사로 입대한 A씨는 이듬해 5월 '특수전 교육'을 받고 해군 특수부대로 자리를 옮긴 뒤 2002년 6월 전역했습니다.
전체 군 생활 4년, 특수부대 경력 2년 1개월이었지만, 당시 채용 담당자는 A씨가 특수부대 경력 기준인 3년에 못 미친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응시자 제출 서류인 '병적증명서'에는 임관일과 전역일, 그리고 최종 주특기 등이 기재됐을 뿐, 과거 근무 부대와 기간 등 상세 기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당시 채용담당자가 A씨의 전체 군 생활 기간 4년을 보고, 자격 요건에 충족한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창원소방본부 관계자
"병적증명서에 그렇게 돼 있으니까, (진짜인 줄) 알았던 거죠. 병적증명서에 해군은 어떻게 기록되는지를 알 수 없었던 거죠."
A씨는 "당시 공고문을 착각해 벌어진 일이라며, 병적증명서에 따라 자격이 될 줄 알았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고의로 경력을 부풀린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습니다.
■ '경력 채용 자격 미달' 사례 또 있나…소방청, 전수조사
이번 사태는 A씨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군 특수부대 출신을 대상으로 119구조대원 경력 채용이 시작된 것은 1995년.
이후 10년 동안 경남에서만 78명이 임용됐는데, 당시 소방당국은 경력 증빙서류로 '병적증명서'를 요구했습니다.
A씨와 유사한 이른바 '경력 채용 자격 미달' 사례가 더 있을 수 있는 겁니다.
실제로 KBS보도 이후 경남소방본부가 2003년 당시 경력 채용자 7명을 추가 조사한 결과, 또 다른 특수부대 출신 소방관 한 명이 추가 적발됐습니다.
결국 소방청은 지난 10일 전국 시·도 소방본부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경력 채용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조사 대상은 전국 시·도별 경력 채용이 진행된 1995년도부터 2020년도까지, 당시 채용공고와 자격요건, 제출 서류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소방청 관계자
"전국적으로 일단은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분석이 끝나고 나서, 그때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 “20년 베테랑 잃어”…허술한 채용 책임은 누가?
A씨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난 7일, 소방당국은 A씨에게 '임용 취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20년 전 합격이 취소됨에 따라, 임용이 무효 처리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창원소방본부 관계자
"(합격) 취소 통보에 따라서, 임용을 취소했고, 당사자 요청에 따라서 서면으로 (관련 내용을)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채용 담당자에게는 어떤 처분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A씨 경력사항을 꼼꼼히 심사하지 못한 업무 소홀은 인정되지만, 징계 시효 5년이 이미 지났다는 것입니다.
당시 응시자들에게 상세 경력 확인이 불가능한 자료를 증빙 서류로 요구하는 등 채용 과정도 허술했지만, 이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지원은 있고, 잘못된 채용은 없는 걸까요. 구조 현장에서는 채용 절차에 대한 책임 추궁 없이, 우수 인력만 잃게 됐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소방서 소방관
"20년이면 완전 베테랑이거든요. 이제 와서 임용 취소하면 국가적 손실이 크죠. 당사자 생계 문제도 있고요. 특수(부대) 경력이 아예 없지도 않은데…."
■ "추가 적발 다수일 경우, 소방 대책은?"
20년 만에 뒤늦게 적발된 경력직 소방관 '임용 취소' 사태.
소방청은 전국 소방본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들어갔지만,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당한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채용 과정이 허술하게 진행된 탓에 유사 사례가 예상보다 많이 확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조사 대상 상당수는 구조현장에서 오랜 기간 활약한 베테랑 소방관. 추가 적발로 이들에게 임용 취소 처분이 내려지면, 소방당국 입장에서는 인력 손실이 매우 큽니다.
긴 세월이 흐른 뒤에 응시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까닭에, '생계 유지 곤란' 등 개인이 부담하는 책임의 무게가 과도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 원인 가운데 하나는 허술한 채용 과정이었던 만큼, 공고문 착각 등 지원 과정에서 실수를 벌인 응시자 또한 임용 취소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소방당국 내부에서는 전수 조사 결과에 따라 별도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소방당국 관계자
"일단 전수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하고, 숫자가 많으면 (소방)청에서 구제 방안을 검토해서, 그 부분까지도 장기적으로 봐야할 것 같고요."
소방청은 이달 말까지 각 시·도별 현황 파악을 마무리하고, 그 결과에 따라 관련 조치를 결정할 방침입니다.
KBS는 소방청 전수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해당 채용과정에 대한 기관 입장과 향후 대책 등을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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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관 기자 (parol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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