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멘터리] 나이키, 에어 조던, 리더의 안목

이주형 기자 2023. 4. 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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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70
   집안 형편이 고만고만한 중학생들에게 나이키 신발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이키를 신고 죠다쉬 청바지를 입으면 그 이상 가는 ‘플렉스’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죠다쉬는 갔지만 나이키는 남았다. 지금 남녀노소 누구나 크게 어렵지 않게 나이키를 신을 수 있으므로 나이키의 희소성은 80년대와 비교하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키는 80년대보다 위상이 더 올라간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다.  그렇게 된 데는 1985년 출시한 '에어 조던'이 크게 한 몫 했다.
 
*

   1962년 어느 새벽. 십 년 뒤에 나이키를 창업하는 24살의 필 나이트는 다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필 나이트 자서전 “슈독” 중)

백과사전도 팔아보고, 채권 영업도 해봤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 일들이 싫었던 스탠포드 MBA 출신의 필 나이트는 거의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육상 선수 출신의 경영학도로서, 그는 캐논,니콘 같은 일본 카메라가 독일(라이카)이 지배하던 시장을 뒤흔든 걸 잘 알고 있었다. 필 나이트는 일본 러닝화가 유럽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똑같은 위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영화 "에어(AIR)"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벤 애플랙, 맷 데이먼 콤비의 영화 “에어”는 제목과 달리 마이클 조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나이키 이야기다. 야구를 다뤘지만 야구 영화는 아닌 "머니볼(2011)" 같은 비즈니스 영화다. 원작(책)도 좋고 영화도 재미있는 “머니볼”에는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이키의 언더독 시절을 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는 영화다.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와 계약하게 된 실제 뒷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는 가공됐다. 

   나이키 농구화사업부의 소니 바카로(맷 데이먼)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마이클 조던을 눈여겨보고 사장인 필 나이트에게 통 큰 투자를 요구한다. 그에게는 마이클 조던이 세상을 바꿀 거라는 ‘안목’이 있었다. 

1984년 당시 나이키는 농구화 시장에서 3등이었다. 컨버스가 매직 존슨 같은 NBA 톱스타들을 내세우며 5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고, 당시 세계 최고의 브랜드인 아디다스가 그 뒤를 이었다. 당시 아디다스는 나이키보다 쿨하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NBA에 입성하기 전의 마이클 조던조차도 아디다스를 선호했다.

그런데 바카로는 3명의 농구 유망주에게 투자할 돈을 몽땅 조던 한 명에게 쏟아붓자고 필 나이트를 설득한다. 필 나이트가 그건 너무 위험한(risky) 투자고 그렇게 하다가는 자신이 이사회에서 잘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도 바카로는 주장을 거두지 않는다. 외려 “사장님, 차 트렁크에 신발 싣고 팔러 다니던 때의 초심을 잃었습니까? 그때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였잖아요”하고 몰아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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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중반, 실제로 필 나이트는 고베를 근거지로 한 일본의 러닝화 ‘오니츠카 타이거’를 떼다가 미국에서 팔았다. 필 나이트가 일본에 갔던 건 거래선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60년대 미국 러너들은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아디다스를 신었다. 필 나이트는 가성비 좋은 오니츠카 타이거를 수입해 미국 시장에서 팔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일본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은 시절의 이야기다.

   "저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블루리본스포츠를 대표합니다" 

첫 일본 공장 방문 때였다. 오니츠카 타이거 간부가 “당신은 어느 회사에서 일하냐?”고 묻자 당황한 필 나이트가 한 대답이다. 하지만 당시에 블루리본스포츠는 없었다. 있었다면 필 나이트 집의 한구석에 있었다. 필 나이트가 그냥 그 자리에서 지어낸 말이라는 뜻이다.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도 없는데 배를 만들어 팔겠다며 영국 은행에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필 나이트는 운동화 팔기를 좋아했다. 그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마일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마도 그런 믿음이 “저스트 두 잇(Just Do It)”이라는 불세출의 슬로건으로 연결됐을 것이다. 

1988년 탄생한 나이키의 슬로건 "저스트 두 잇"

   영화 “에어”에서도 필 나이트는 수시로 달리기를 한다. 그는 러너다. 나이키는 러너의 신발이었다. 저스트 두 잇. 조던과 조던의 부모를 나이키 본사에 초청해 사장인 필 나이트와 함께 조던 패밀리를 설득하는 자리에서 바카로는 말한다.

“우리는 당신을 위대하게 만들겠지만 당신도 노력해야 해요. 하루도 빠짐없이. (…) 당신은 누구죠, 마이클? 이 질문이 당신 삶을 정의할 거예요 (…) 신발은 그냥 신발일 뿐이죠. 누군가 신기 전까진. 그래야 의미가 생겨요. 우린 그 위대함에 닿을 기회를 원할 뿐이죠. 당신이 우리 신발을 신으면 우리 삶에 의미를 줄 거예요.” 

‘에어 조던’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었다. 프로 스포츠맨에게, 아마추어에게, 일반인에게. 그리고 “슬램덩크”의 강백호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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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 나이트는 오니츠카 타이거를 수입해서 미국에서 잘 팔았다. 매해 매출을 두 배씩 늘려갔지만 나이트가 회계사로 투잡을 뛰어야 할 만큼 회사는 불안정했다. 자기 자본 없이 은행 대출을 받아 신발을 들여오고 그 신발을 팔아서 대출금을 갚는 상황의 반복이라 회사는 종종 파산 위기에 몰렸다.

게다가 오니츠카 타이거는 미국에서 자신들의 운동화가 잘 팔리자 블루리본스포츠의 지분 51%를 넘기라고 하는가 하면 필 나이트 몰래 계약 파기도 추진한다. 더 많은 돈을 벌어 줄 수 있는 미국 수입업자와 계약하려고 한 것이다.

결국 필 나이트는 1972년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 스포츠용품협회 전시회에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 가운데 하나인 스우시를 붙인 나이키를 출품하고 직원 30명으로 나이키를 시작한다. (나이키사 공식 설립은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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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이 1998년 NBA 파이널 2차전에서 신었던 나이키 에어조던 13이 유명 경매회사 소더비 경매에서 220만 달러(약 29억1600만 원)에 팔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조선일보 4월13일 자)

결국 ‘에어 조던’은 대성공을 거둔다. 나이키는 에어 조던 출시로 4년 내 300만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예상했는데, 에어 조던은 출시 1년 만에 1억 2600만 달러를 벌었다. 나이키는 단숨에 농구화 시장 1위로 올라선다.  ‘에어 조던’은 스포츠 브랜드 사상 최고의 캠페인이 됐다.

영화 “에어”에서 필 나이트는 소니 바카로를 중용하고, 그의 안목을 믿었다. 바카로의 설득으로 계약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조던의 어머니가 에어 조던 판매 수익을 분배하라는 파격적인 요구했을 때에도 바카로의 예상과 달리 흔쾌히 받아들였다. 모델이 모델료 외에 회사와 판매 수익까지 나눠 갖는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필 나이트는 ‘에어 조던’이라는 브랜드명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차차 좋아지겠지"라며 별 말 없이 수용하는 안목을 보여준다. 필 나이트 자서전 “슈독(Shoe Dog)” 한 챕터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규정을 깬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필 나이트 자서전 "슈독" 표지

   “슈독”을 보면 ‘오니츠카 타이거’의 오니츠카 기하치로 회장이 언젠가는 세상 사람 모두가 항상 운동화를 신는 날이 올 거라고 필 나이트에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실제로 그런 세상이 되었다. 요즘 거리를 다니다 보면 캐주얼 차림에도, 정장에도 운동화를 매치해 신는다. 아이들도 신고 어른들도 신는다. 남자도 신고 여자도 힐 대신 운동화를 신는다. 나도 일상생활에서 90%는 운동화 또는 스니커즈를 신는다. (운동할 때는 동양인 족형에 맞는 아식스나 미즈노, 평소에는 주로 뉴발란스를 신는다) 

1949년 전후 고베에서 시작한 오니츠카 타이거는 ‘맨발의 아베베’로 유명한 아베베 비킬라를 후원하는 등 특히 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성가를 높이다 타 회사와 합병해 현재의 아식스가 되었다. 

   ‘21세기의 베이브 루스’급으로 올라선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이자 일본의 국민 영웅인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 수 년 간 신던 아식스를 떠나 올해부터 뉴발란스로 갈아탔다.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듯이, 오타니가 뉴발란스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돈이었을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뉴발란스의 누군가가 “에어”의 바카로처럼 열정적인 스피치로 오타니의 마음을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올해부터 뉴발란스 야구화를 신는 오타니 (AP)

이미 스티브 잡스라는 전설적인 (비공식) 모델을 보유한 뉴발란스는 캐주얼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넘어서 본격 스포츠 브랜드로 발돋움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는 "에어(Air)"가 아니라 "이도류(Two Way)"라는 이름의 비즈니스 영화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비즈니스는 용인(用人)이다. 용인은 안목이다. “머니볼”이고 “에어”고 결국은 사람과 세계를 보는 안목에 대한 이야기다. 안목은 교양이고 용기이며 확신이다. 안목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부단한 노력으로 길러지는 것이다. 리더의 안목은 적어도 뽑아 쓰려는 인재의 수준에 다다르든지 그 이상이어야 한다. 안목이 없는 용기나 확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그것은 안목이 아니라 만용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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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기자jool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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