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탈핵할 결심’ 12년 만에 완성…“안심, 주변국 원전은 우려”

노지원 2023. 4. 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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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남은 원전 3기 가동 중단
15일(현지시각) 공식적으로 가동이 중단된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어베스트하임 2호기에서 수증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낮 12시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포도밭 한가운데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어베스트하임 2호기’에서는 수증기가 희미하게 피어올랐다. 이 발전소에서는 전날만 해도 거대한 수증기를 내뿜었다. 불씨가 사라진 재에서 마지막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연상됐다.

이날 0시를 기해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네카어베스트하임 2를 비롯한 마지막 가동 중이던 독일 원자력발전소 3기가 모두 멈춰 섰다.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를 계기로 독일 ‘탈핵’이 결정된 이후 12년 만에 독일 원전 가동이 모두 중단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네카어베스트하임 원전 주변에 500명 넘는 시민이 모였다. 축제에 가까운 시위가 열렸다. 환경단체가 설치한 무대에서는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돗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3남매를 데리고 슈투트가르트에서 온 수잔(42)은 “역사적인 날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며 “안심이 되긴 하지만 여전히 폴란드, 프랑스 등 주변 나라에서 새 원자로를 짓는 점이 우려스럽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른 활동가들은 원자력발전소에 연결돼 있던 모형 전기 코드를 뽑아, 아이들과 함께 코드를 태양광 패널로 옮겨 꽂는 퍼포먼스를 했다. ‘탈핵’을 기념하는 시위는 네카어베스트하임 원전과 함께 마지막 남은 원전이었던 북부 엠슬란트, 남서부 이자르 2호기 주변 그리고 수도 베를린에서도 열렸다. 이날 가동 중단된 원전 3기는 향후 해체될 예정이다.

독일의 탈핵 약속은 지난해 유럽을 덮친 에너지 위기 앞에서 한때 흔들렸으나, 독일은 결국 약속을 지켰다.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는 ‘에너지 위기’라는 태풍을 맞았고, 전쟁 전까지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 이상(55%)을 러시아에서 수입한 독일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의 유럽 가스 공급은 대부분 중단됐고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줄였던 석탄발전까지 늘리는 상황이었다. 독일 내에서 원전 가동 중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녹색당이 포함된 독일 집권 ‘신호등’ 연정은 고심 끝에 계획을 일부 변경해 원전 3곳을 이날까지 예비 전력원으로 남겨뒀다.

독일 내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1976년부터 약 50년 동안 반핵 운동을 해온 독일 최대 환경단체 분트(BUND) 활동가 고트프리트 마이슈튀르머는 “독일은 원전 없이도 충분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심지어 올해 석달 동안 풍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원전이 많은 나라 프랑스에 팔았다”고 말했다. 반면, 튀빙겐에서 온 율리안(24)은 “(네카어베스트하임 원전이) 46년 동안 CO₂ 배출이 없는 저렴한 전기를 제공해줘서 감사하다. 다른 나라는 우리를 비웃고 있다”며 “앞으로 10∼15년 동안 재생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자가 시민 100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2%가 마지막 남은 원전 3곳의 가동 중단이 “잘못됐다”고 답해 “옳다”는 응답 37%보다 15%포인트 많았다.

1969년 첫 상업용 원전 가동 이후 54년 만에 원전 가동이 중단됐지만 원전이 유산을 청산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원전 해체 작업을 안전히 마치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최종 저장소를 찾는 지난한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스테피 렘케 독일 연방 환경·자연보호·원자력 안전·소비자 보호부 장관은 13일 “탈원전은 우리나라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만, 원전이 남긴 유산을 없애는 수십 년의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라며 “핵 (폐기물) 저장 시설에 대한 해결책을 계속 연구하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라고 했다. 독일 내 원자로에서 2만7000㎥ 규모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했고, 콘라드 저장소에도 약 30만㎥ 규모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있다. 독일은 2030년까지 독일 내 사용 전력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할 계획이다.

네카어베스트하임/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축제 분위기가 났던 이날 시위에서 시민과 활동가들이 박수를 지며 환호하고 있다. 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한 활동가가 아이들과 함께 핵 발전소에 연결돼 있던 모형 전기코드를 뽑아 태양광 패널로 옮겨 꽂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주차장 곳곳에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핵 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록물이 전시됐고, 시민들은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 번 주의깊게 읽었다. 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날 시위 현장에는 어린이들이 공으로 핵 발전소를 넘어뜨리는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네카르베스트하임 2호기 원전 모형이 공에 맞은 뒤 쓰러지고 있다. 노지원 특파원
15일(현지시각) 오후 독일 남서부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네카어베스트하임 2호기 앞 주차장에서 원전 가동 중단을 기념하는 시위가 열렸다. 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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