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0여 개국 외환위기 직면… 내 이웃 거지 만드는 美 고금리-강달러”

이한경 기자 2023. 4. 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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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예측한 최용식 소장 “주식시장 ‘더블딥’ 우려, 부동산은 장기침체 돌입”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조영철 기자]
"아무리 심각한 경제위기나 파국이 오더라도 적절한 정책을 신속하게 펼치면 차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 문제는 세계경제를 이끄는 미국이 국제적인 공조 체제 구축에 앞장서 이 위기를 넘겨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죠. 일단 미국부터 살겠다고 '내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고금리-강달러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현재 진행되는 세계 금융위기, 경제위기를 차단할 길이 없습니다."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시작으로 시그니처은행 파산, 크레디트스위스(CS) 매각, 퍼스트리퍼블릭은행 파산 위기까지 잇달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원로 경제학자인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이 올해 초 펴낸 경제 예측서 '경제파국으로 치닫는 금융위기'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책에서 "이미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며, 지금 막지 못한다면 대공황급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광풍에서 시작된 한국 금융위기

1952년생으로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독학으로 경제 전문가가 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정책 멘토로, 참여정부 시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로 활약했다. 나이 70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경제위기의 발생, 전개, 결말 등에 관한 일반 경제 원리를 구축해 경제병리학을 창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기도 했다.

이미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라고 진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지난해 10월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선 레고랜드의 채무 2000억 원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건설업계 전반이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곧바로 다른 산업계도 유동성 부족에 시달렸다. 2000억 원은 한국 본원통화(한국은행이 지폐·동전 등 화폐 발행의 독점적 권한을 통해 공급한 통화)의 0.07%밖에 안 되는 금액인데 경제 전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얘기는 물밑에서 신용파괴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연율 기준 1분기 2.6%, 2분기 3%였던 경제성장률이 3분기 1.3%로 반토막이 나고 급기야 4분기에는 –1.5%(한국은행이 발표한 4분기 경제성장률 –0.4%를 미국 통계 기준에 맞춰 전기비 연율 기준으로 다시 산출한 값) 성장을 기록했다.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하면 생산 및 소비가 줄고, 소득이 줄면 설비가 감소하며, 이는 또다시 생산이 줄어드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모든 경제위기는 금융위기를 경유하고,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출발점이 되며, 신용파괴원리 작동에 의해 진행된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적용되나.

"한국 주식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평가돼 있다. 1989년 4월 코스피가 1004포인트까지 올라가며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울 당시 미국 다우지수는 2600포인트였다. 그런 다우지수가 지난해 1월 3만6000포인트 이상 오르는 동안 코스피는 2021년 6월 3300포인트 근처까지 올랐다 내려왔다. 지수 차이가 약 2.5배에서 11배가 됐다. 한국 금융위기 출발점은 부동산시장이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왜 금융위기의 출발점이 되나.

"주식과 부동산은 재산형 재화로, 소득이 상당 기간 축적돼야 수요가 발생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수요가 일어나지 않을 때는 가격이 멈춰 있다가 수요가 본격적으로 일어나면 그동안 상승한 물가를 따라잡아야 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오른다. 부동산의 경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2~3년 더 저축해 집을 사야 하는 사람도 저축액이 집값 상승분을 못 따라갈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대출받아 시기를 앞당겨 집을 산다. 그렇게 미래 수요가 현재로 넘어와 수요가 배가되면 집값이 폭등하고 투기 광풍이 일어난다. 하지만 수요의 시간 이동은 곧 수요 공동화를 불러오고, 더는 집을 사는 수요가 없어지면서 공포가 시장 전반에 확산돼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고 거래가 줄어든다. 이렇게 해서 유동성이 위축되고 신용파괴원리가 작동하면 화폐 발행액의 50배에 달하던 총유동성 신용승수가 역으로 50분의 1로 줄어드는 압력을 받는다."

미국은 어떤 상황인가.

"미국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모두 심각하다. 먼저 주식시장은 다우지수가 3만6000포인트에서 3만3000포인트까지 떨어지면서 거래량이 줄고 유동성이 위축된 상황이다. 또 부동산은 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저당증권(CMBS)을 많이 갖고 있는데,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금리인상으로 국채 가격과 함께 CMBS 가격이 폭락하면서 은행들의 경영수지가 악화되고 있다. 은행이 망할 확률은 0.1% 정도다. 그런데 3월 8일 암호화폐 전문은행 실버게이트를 시작으로 SVB,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이렇게 일어나기 힘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신용파괴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어떤 정책도 쓰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미국의 고금리-강달러 정책의 부작용

[뉴시스]
미국의 고금리-강달러 정책에 대해 부정적 입장인데.

"미국은 지난해부터 고금리 정책을 펴면서 인플레이션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지난해 6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9.1%까지 상승했으니 잡아야겠지만, 물가를 잡는 것이 목표라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통화량을 축소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미국이 고금리 정책을 쓰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전략'이라고 본다. 2020년 GDP(국내총생산)의 2.9%였던 미국 경상수지 적자는 2021년 3.6%로 급증했다. 만약 이 상황을 정책 당국이 방치한다면 경상수지 적자분만큼 미국 달러가 국제시장에 뿌려져 달러 가치가 떨어진다. 그 경우 미국에 투자된 국제 금융자본은 환차손을 피해 미국을 이탈하게 되고, 유동성이 급격히 축소되면 금융위기가 진행될 수 있다. 고금리-강달러는 '내 이웃을 거지로 만드는 정책'이다. 국제 금융자본을 미국으로 빨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은 살고 외국 자본이 빠져나간 나라는 외환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세계 50개 넘는 국가가 외환위기를 겪고 있거나 직면해 있다."

그럼 미국은 고금리-강달러 정책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있나.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앞서 얘기했던 미국 국채와 CMBS는 유동성이 좋고 현금과 마찬가지여서 자기자본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하면 2개 가격이 계속 떨어져 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을 지키려고 대출금이나 투자금 회수에 나서, 그럼 유동성이 위축돼 금융위기에 직면할 위험이 크다. 반대로 금리를 내리면 고금리를 찾아 미국으로 옮겨왔던 국제자본이 빠져나갈 위험이 있다."

연준은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베이비스텝을 선택했다.

"은행이 잇달아 파산하는 가운데 FOMC가 열리면서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한 전문가가 50%를 넘었지만 나는 절대 아니라고 봤다. 만약 금리를 동결하거나 낮추면 국제금융자본이 빠져나가 금융위기가 단기간에 확산되지만, 금리를 올리면 국채나 CMBS 가격이 떨어져 금융위기로 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뭔가 방법을 찾을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8년 3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파산을 시작으로 리먼브라더스, 워싱턴뮤추얼, 와코비아, AIG,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이 줄줄이 무너지자 12월 미국은 G20 회원국의 정부 수반,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등을 모아 금융위기 타개를 위한 국제 공조를 부탁했다. 그리고 미국의 본원통화를 2배로 늘리고, 기준금리를 0.25%까지 낮춰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나만 살겠다고 하는 상황이니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 경기가 급하강하자 연준이 무리하게 경기부양을 한 것이 지금 와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뛰어난 사람일 테지만, 금융위기가 경제 외적인 사건으로 터졌을 때는 예상과 달리 급속히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 예를 들어 2000년 미국 나스닥 붕괴, 다우지수 폭락이 일어난 상태에서 2001년 9·11 테러, 2002년 회계부정 사건(엔론, 월드컴, 타이코인터내셔널, 글로벌크로싱, 아델피아 등 미국 대기업의 잇단 회계부정 스캔들)이 연이어 터졌는데 금융위기가 예상과 달리 서서히 진행됐다. 경제 주체들이 경각심을 가지면서 신용파괴원리도 느리게 작동한 것이다. 2020년 역시 경제 외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기에 동일한 상황이 전개됐을 텐데, 미리 금리를 대폭 낮추고 통화량을 증가시킴으로써 빠른 경기 회복에는 성공했으나 경상수지 적자의 급속한 증가라는 부작용을 낳게 됐다."

한국 기준금리 올리고 환율 내려야

한국 역시 부동산 침체가 심화되고 경제 전망도 밝지 않다.

"미·중 갈등으로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일단 우리부터 살려면 기준금리를 미국보다는 적어도 1%p 이상 높여야 한다. 그래야 미국으로 갔던 국내 저축들이 돌아온다. 또 환율이 1100원대까지는 떨어져야 한다. 한국은 무역수지가 적자여도 경상수지는 흑자라 그만큼 외환시장에 달러가 투입되면 환율이 떨어져야 하는데, 정책 당국자들이 '환율이 올라야 수출이 증가하고 수출이 증가해야 경기가 호전되면서 소득 증가에도 기여한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져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렸다. 이는 현장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환율이 오르면 해외 바이어는 당장 수출 가격을 깎아달라 요구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익이 늘었으니 당연히 더 많이 팔기 위해 깎아준다. 그래서 오히려 수출 물량은 똑같은데 달러는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한다. 만약 환율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기업은 망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혁신을 한다. 2001년부터 2006년 말까지 그런 이유로 한국 수출이 2.7배 증가했다."

개인들은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지금 한국은 강도는 약해도 이미 금융위기의 타격을 입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의한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덮쳐온다면 주식시장은 거품이 없어도 더블딥(회복 후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부동산 전문가는 아니지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부동산은 '투자 광풍 3년, 패닉 반년에서 1년, 장기정체 5년' 사이클을 반복한다. 지금 부동산시장은 급매물이 다 소화돼 이제 장기침체에 돌입하는 상황이다. 지금 같은 때는 신중하게 수비적으로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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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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