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장'이라는데…외국계 IT기업 노조 설립 잇따르는 이유 [사이다IT]
기사내용 요약
'행복도 1위' 구글코리아도 노조 설립…"일방적 감원에 고용불안 느껴"
美빅테크 대규모 정리해고에 한국 직원들 노조로 결집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 외국계 정보기술(IT)기업 노조 설립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높은 연봉과 자유로운 직장 분위기, 긴 휴가로 '꿈의 직장'으로 불렸지만 본사에서 대규모 정리해고 바람이 불면서 고용불안을 느끼는 직원들이 결집에 나선 것입니다.
구글코리아 직원들은 지난 11일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구글코리아지부를 설립했습니다. 노조 설립 이유는 ‘고용불안’입니다. 김종섭 지부장은 “최근 미국 정보통신 (IT)업계를 휩쓸고 있는 추가 인원감축 바람이 계속 불고 있는 가운데 일방적인 감원 방식과 지속적인 고용불안을 느끼는 직원들이 불씨가 되어 지난 달부터 물밑 작업을 거쳐 노조 설립을 추진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구글코리아 직원의 고용안정, 근무환경 및 복지 향상을 통해 직원과 회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데 목적을 두고 있으며 구글의 다른 나라 노조와도 협력해 시너지를 높이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글코리아는 취업준비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한 곳입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플랫폼 블라인드가 발표한 직장인 행복도 조사 ‘블라인드 지수 2022’ 결과에 따르면 구글코리아의 행복도는 100점 만점 기준 75점으로 조사 대상 기업 가운데 1위를 차지했습니다. 4년 연속 최고 점수입니다.
그러나 지난달 초 구글코리아 직원들은 권고사직 수준의 직무폐지를 통보받으면서 분위기가 뒤바꼈습니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감원바람이 한국 지사에도 들이닥친 것입니다. 앞서 알파벳은 올해 1월 말 전체 인력의 약 6% 수준을 줄이겠다고 공지했습니다. 이는 약 1만2000명 규모입니다.
구글코리아도 동일한 비중의 감원이 예상되면서 직원들의 불안감이 팽배합니다. 구글코리아의 지난해 말 임직원수는 681명 기준으로 같은 비율을 적용할 경우 40명이 권고사직 대상이 됩니다.
구글코리아 노조는 "구글코리아는 최근 4년 연속 직장인 행복도 1위의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어 왔지만 같은 빅테크 기업인 트위터,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처럼 결국 직원들에게 감원의 칼날을 들이댔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애플코리아도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감원 무풍지대로 불렸던 애플도 최근 일부 팀을 감원한 영향으로 보여집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4일(현지시간)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기업 소매팀 내 일부 자리를 없애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소식통은 애플이 전 세계 소매점과 시설 건설 및 유지를 담당하는, '개발 보존 팀'이라 불리는 팀 내 자리를 줄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동안 외국계 기업 IT노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미 지난 2017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노동조합을 설립한 바 있습니다.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직원들에 대한 일방적 구조조정, 희망퇴직 강요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겠다는 목적입니다.
한국오라클은 지난 2017년 노조를 설립한지 반년 만에 전면 파업에 돌입한 바 있죠. 독일의 대표 소프트웨어(SW) 기업 SAP의 한국지사는 지난 2019년 노조가 설립됐습니다. 한국후지쯔는 1976년 노조가 설립돼 운영된지 무려 47년째 운영 중입니다. 2018년 네이버가 노조를 설립한 것을 감안하면 외국계 IT기업들이 더 노조 설립에 일찌감치 나섰던 것이죠.
이처럼 외국계 IT기업들이 노조 설립에 더 적극적인 이유는 제각각 구체적인 사정은 다르겠지만 그만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여집니다. 외국계 특성 상 사업구조 재편 때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이들 기업 대부분의 본사가 있는 미국에서 감원 칼바람이 불고 있어 고용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MS는 지난 2월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했으며 20여명이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MS 임직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475명입니다. MS는 전체 직원의 5%를 줄일 계획이라고 전해집니다.
트위터는 일론 머스크가 본사를 인수한 뒤 지난해 11월 절반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고, 직원 30여 명이 근무하는 트위터코리아도 전체 직원 중 25%가 정리해고됐습니다. 같은 달 메타도 직원 1만1000명을 감원하는 과정에서 메타코리아 직원들도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이처럼 비교적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 지사의 직원들도 쉽게 해고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노조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인데요.
다만 미국 본사의 결정이라 하더라도 한국 지사에서 채용한 직원들은 우리나라 노동법을 위반해서 해고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국내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를 쉽게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국내 근로기준법이 명시하는 정리해고 요건에 따르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하며, 대상자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선정해야 합니다.
특히 노조가 있다면 정리해고는 더욱 쉽지 않습니다.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의 기준 등을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대표에게 해고 실시로부터 50일 전에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30일 전에 해고 예고 통보를 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는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네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에 해당합니다. 미국 본사의 결정이라 해도 한국 지사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와 해고 회피 노력에 대해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거나, 근로자와 성실하게 협의하지 않으면 부당해고에 해당할 수 있단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위축 국면에서 해외 빅테크들의 감원이 국내에서도 이어지면서 이에 강력히 맞서기 위해 노조 설립은 지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비단 외국계 뿐만 아니라 국내 IT·게임업계에도 노조 설립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이 국내에도 이어지고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자 고용불안을 느낀 직원들의 단합력도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지난 10일 엔씨소프트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지회는 정식 출범을 발표하고 사측에 ▲투명한 평가와 공정한 보상 시스템 ▲고용안정 ▲수평적 조직문화 조성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국내 게임업계에서 넥슨, 스마일게이트, 엑스엘게임즈, 웹젠에 이은 다섯번째 노조입니다. 국내 빅테크 카카오의 노조 가입자도 최근 직원수 과반에 근접했으며 네이버는 본사 직원 40%가 가입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과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한국에서도 목표하는 구조조정을 이룰 수 있을까요.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달 알파벳과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은 유럽 일부 국가에서 노동단체와의 사전 협의 없이는 해고하지 못한다는 노동보호 규정으로 인해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도 노조가 늘어날 수록 실제 구조조정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scho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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