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밖 호실적에도…월가 리더들은 웃지 못했다[미국은 지금]
고금리·인플레 등 월가 수장들 여전히 경계감 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더 높은 금리가 오랜 기간 지속할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연방준비제도(Fed)가 50bp(1bp=0.01%포인트) 혹은 75bp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겁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미국 주요 금융기관들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의 반사이익을 누리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보였지만, 월가 수장들은 결코 웃지 못했다. 각 금융기관은 시스템으로 묶여 있는 만큼 추가 파산이 현실화할 경우 또 언제든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010년대와는 다른 ‘더 높은 금리’ ‘더 높은 물가’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번 깜짝 실적은 은행 위기 이후 처음 나온 금융기관 ‘성적표’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다만 실적 그 자체보다 월가 리더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이목이 더 모아졌다.
다이먼 “높은 금리의 영향 연구중”
선봉에 선 이는 ‘월가 황제’ 다이먼 회장이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를 2004년부터 20년째 이끌고 있는 베테랑인 그는 이번 SVB 사태 때 주요 은행들을 불러 모아 돈을 걷은 뒤 위기를 초기에 수습해 주목받았다.
JP모건은 유독 두드러진 깜짝 실적을 공개했다. 올해 1분기 4.10달러의 주당순이익(EPS)을 올리며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3.41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매출액은 383억5000만달러로 시장 전망치(361억3000만달러)를 상회했다. 특히 지난달 말 고객 예금은 지난해 12월 말보다 370억달러 급증한 2조3800억달러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이 중소형은행에서 돈을 빼 대형은행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은행 위기가 JP모건체이스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셈이다.
그러나 컨퍼런스콜에 나선 다이먼 회장의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6%에 가까운 기준금리가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며 “JP모건체이스의 모든 고객들에게 ‘당신의 기업과 당신의 비즈니스와 당신의 투자가 더 높아진 금리에 따른 과도한 위험에 처하지 말게 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중소형은행 불안은 결국 금리가 상승했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다이먼 회장은 “다른 지역은행들도 꽤 좋은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추가적인 은행 파산의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이먼 회장은 “소비자들은 계속 돈을 쓰고 있고 기업들은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지난 1년간 봤던 경제 먹구름은 여전히 남아 있고 은행권 혼란은 이런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은행권 불안 △매파적인 연준 △불확실한 대(對)중국 관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거론하며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들”이라고 했다.
핑크 “50bp 혹은 75bp 추가 인상”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큰 손’ 블랙록의 이끄는 핑크 회장 역시 금리 위험을 강조했다. 블랙록은 올해 1분기 7.93달러의 EPS를 기록하면서 월가 예상치(7.78달러)를 웃도는 호실적을 보였다.
핑크 회장은 CNBC와 만난 자리에서 “내년 초에는 경기 침체가 닥칠 수 있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다소 낙관론을 폈다. 그는 그러나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 침체 가능성은 연준이 벌이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달려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당분간 더 오래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연준이 50bp 혹은 75bp 금리를 더 올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4.75~5.00%에서 최고 5.50~5.75%까지 인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월가 컨센서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핑크 회장은 “금융시장은 이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고객들은 까다로운 경제 환경에 대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며 “그것이 지금 보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미국 3위 은행인 씨티그룹은 1분기 1.86달러의 EPS를 올리며 시장 전망치(1.69달러)를 넘는 호실적을 발표했다. 제인 프레이저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콜에 나와 “(최근 은행권 불안이) 올해 말 미국 경제의 얕은 침체를 유발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특히 1분기 내내 소비 지출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고 말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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