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지인 12명, 지적장애 여성 성범죄 의혹…마을에선 무슨 일이

이가영 기자 2023. 4. 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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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의 한 농촌 마을에서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마을 주민 10여명이 고소당했다. 피의자들은 피해자의 남편과 아는 사이였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전남의 한 농촌 마을에서 남성 10여 명이 지적장애 여성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가운데 1명만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피해자 측이 경찰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건은 검찰에 넘겨졌다.

16일 전남경찰청에 따르면 장흥에 사는 지적장애 여성 A(50대)씨는 지난해 3월과 4월 같은 지역민 12명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2014년부터 최근까지 A씨에게 수시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A씨는 40대 때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후유증으로 지적장애를 갖게 됐다. 검사 결과 A씨의 IQ는 56, 정신연령은 8세 2개월 수준이었다.

◇마을 사람들 “딸이 맹랑해” “합의하자면서 돈 요구”

A씨의 피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딸이었다. 지난해 2월 간이식 수술 부작용으로 남편이 사망한 이후 A씨는 “남자들이 계속 찾아와서 집에서 살기가 무섭다”고 털어놨다. A씨의 딸은 “그전에는 아빠도 살아계시고, (엄마가) 무서워서 말을 못 했던 것 같다”고 했다. A씨가 가해자로 지목한 남성들은 남편의 친척이나 친구였고, 계모임이나 업무상 관계로 밀접하게 얽혀있던 이웃사촌들이었다.

피의자들은 혐의를 부인했다. 1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A씨가 새벽 4시에 집에 먼저 찾아왔다” “솔잎 따러 가는데 A씨가 따라와서는 먼저 (성관계를) 요구했다” “본인이 전화해서 만난 것뿐이다. 여자가 전화하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느냐”고 했다.

마을 사람들 역시 “딸이 맹랑하다. A씨가 딸한테 간 뒤로 사건이 만들어졌다” “딸이 합의하자면서 돈을 요구했다더라”며 외지인인 A씨의 딸이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범죄자로 몰아간 후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마을을 떠났다고 했다.

지난해 3~4월 지역민 12명을 성범죄 혐의로 고소한 지적장애 여성 A씨. /SBS '그것이 알고 싶다'

A씨의 주장은 달랐다. 그는 “집에 찾아오고, 안 만나주면 전화가 온다”며 “창피하니까 하기 싫은데, 자주 관계를 가지면 제가 아픈 것이 낫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A씨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결과 통화내역에는 A씨에게 전화가 걸려온 수신기록만 있었다. A씨는 “예전(아프기 전)에는 콩도 심고, 팥도 심고 열심히 살았다”며 “그때는 힘들어도 행복했는데 지금은 시궁창 같은 인생이 되어버렸다”고 눈물을 흘렸다.

A씨의 딸은 합의금 소문과 관련해 “합의 볼 생각도 없고, 돈도 필요 없다”며 “더러운 돈 받고 싶지 않다. 처벌하고 싶다”고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가운데 등유배달부 B(70대)씨만 혐의가 인정되어 검찰에 넘겨졌다. B씨는 지난해 2월 A씨의 집 보일러 기름을 넣어주려다 신체 일부를 만지고 성폭행한(장애인 준강간) 혐의를 받는다. B씨는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고, 검찰은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 후 B씨는 “왜 그런 행동했는지 모르겠다”며 “강제적으로 한 건 없다”고 주장했다. B씨는 다음달 선고 재판을 앞두고 있다.

◇10명의 피의자,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

마을주민들은 "피해자 모녀가 고소한 후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경찰은 검찰의 요청으로 한차례 보완 수사까지 진행했지만 지난 2월 피의자 10명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A씨의 진술 외에 증거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여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불송치 결정서에는 “피해자가 첫 번째 피해 사실에 대해 ‘화났다’고 하면서도 피의자와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가졌다. 그 과정에서 피의자의 폭행이나 협박은 전혀 없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남성의 불송치 이유로는 “피해자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또 다른 남성들과 성접촉을 하고도 아무에게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며 “피의자는 성관계 과정과 경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 진술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 “피해자 진술 신빙성 높다”

피해자의 장애인 증명서. 지적장애 정도가 '심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그러나 A씨의 진술 내용을 살펴본 전문가들은 “이게 송치가 안 된 게 오히려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현 전남경찰청 진술 전문분석가는 “A씨에 대한 총 6번의 진술 분석이 진행됐고, 심혈을 기울였다”며 “전체적으로 봤을 때 피해 진술이 일관된다고 봤다”고 했다.

이러한 진술 분석 결과를 전달했으나 경찰은 왜 불송치 결정을 내렸을까. 이미선 동양대 경찰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폭행‧협박이 없었고, 저항하지 않았기에 합의된 관계라는 게 주요 불송치 이유”라며 “지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적장애인 같은 경우는 저항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없다”며 “피고인들은 ‘딸기 우유 사 와서 한 번 하자’ 등 피해자가 지적장애가 없다면 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성적으로 착취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A씨 측은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이의 신청을 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더라도, 사건 관계인의 이의 신청이 있으면 사건을 곧바로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검찰은 나머지 피의자 10명에 대한 처분을 직접 내릴지,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할지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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